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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이책만은꼭] 우리 시대의 갈릴레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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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09 23:22:24 수정 : 2022-05-09 2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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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갇혀 시민과 동떨어진 지식인들
쉬운 말로 세계에 헌신하는 지성인 절실

“젊은 지식인들은 어디 있는가?”

‘마지막 지식인’(교유서가 펴냄)에서 러셀 저코비 UCLA 명예교수는 도발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 책은 1987년 출간돼 미국 지성계에 파문을 일으킨 ‘지성사의 고전’이다. 출간 30년이 넘은 책인 만큼, 저자가 말하는 젊은 지식인은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0대에 반항과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68세대’를 뜻한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나 생생한 현재성을 담고 있다.

“도시의 거리와 카페에서 성장한 마지막 지식인 세대는 교양 독자를 상대로 집필 활동을 했다. 그들은 첨단기술 지식인과 컨설턴트와 교수로 교체됐다. 그들은 캠퍼스 안에서만 생활하고, 프로페셔널한 동료들만 상대한다. 이것이 위험이자 위협이다.”

젊은 교수는 있어도 젊은 지식인은 보기 힘든 한국 지식 사회의 현실을 옮겨 놓은 듯하다. 그 결과는 공공의 삶을 살찌우는 교양의 증발이고 지성의 소실이며 공론의 몰락이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멀리, 널리, 깊이 들여다보면서 말하는 목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지식인이 어디에 속해, 누구에게 말하느냐는 중요하다. 갈릴레오는 라틴어를 버리고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글을 썼다. 그는 학자들 사회의 배타적 일원이 되기보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갈릴레오가 없다. 지식인이 좁디좁은 대학에 갇혔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의 엄청난 성공, 교외의 확대, 도시의 쇠퇴, 대학의 비대화 등”이 보편 지식인을 전문 직업인으로 변질시켰다. 안정된 밥벌이에 유혹당한 지식인들은 대부분 짐을 꾸려 대학으로 들어갔다. 단행본이나 언론 기고에서 논문과 강의로 지식 생산의 규칙이 변화하면서 교양 시민을 향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발언함으로써 공론장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힘을 잃었다. 학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젊은 학자들은 예외 없이 퇴출당하고, 정년 교수직을 얻기 위한 대학 내부 정치가 그들을 움켜쥐었다.

“경력 초반에는 건전한 견해를 밝히는 등 전문 능력에서 튀지 않는 자질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신직을 얻으면 대담한 언행이 가능해진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듣는 말이다. ‘튀면 죽는다.’ 그러나 대학의 감옥에 갇혀 시민의 삶과 떨어진 지식 문화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신랄하다. “필요한 지위와 안정을 획득했을 때 대담한 사유를 위한 재능도 시든다.” 종신계약의 노예로 전락해 세미나용 논문 발표로 시간을 보내는 건 강단 좌파들도 다를 게 없다. “세상은 핵 재앙과 전 지구적 오염과 기아를 향해 미끄러지는데,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는 밝게 웃으면서 다른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에 대해 글을 쓴다.”

학술 엘리트의 언어 대신 공중의 언어로 말하면서 공적 세계에 헌신하는 비판적 지성인이 드물어지자, 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미디어를 다루고 조작해서 사익을 취하는 ‘어용 지식인’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찬가에 침이 마르고, 현실 권력의 찬양에 몸이 달며, 문화적 비즈니스에 정신이 나가 있다. 비통한 일이다.

대학이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지성의 위기를 헤쳐나올 힘이 없을 때, 대학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 지구적 위기를 통찰하면서 새로운 미래로 인류를 이끌어 줄 공공 지성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거리에서, 카페에서 교양 시민을 상대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갈릴레오가 필요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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