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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내 안에 있는 것”… 유영국의 색면 추상세계

입력 : 2022-06-23 20:29:09 수정 : 2022-06-23 21: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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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20주기 ‘컬러스 오브 유영국’전

서울 국제갤러리 K1, K2, K3 전관에 걸쳐
회화 68점 포함 드로잉·아카이브 등 선봬

점·선·면·형·색 등 기본적 조형요소 토대
색채·구도 완급 통해 자기만의 세계 구축

1960∼1970년대 작품 기하학적 추상 절정기
초록·파랑·군청색 계열 집중적으로 전시
전시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바라볼 때마다 변하는 것이 산이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산을 주요 모티프로 창발적인 색면 추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한국 근대 추상미술의 거장 유영국이 올해 작고 20주기를 맞았다. 이를 계기로 열린 회고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서 한창이다. 유영국이 사용한 색채의 경이로움에 주목하며 ‘컬러스 오브 유영국(Colors of Yoo Youngkuk)’이란 제목으로 선보이고 있다. 국제갤러리 K1, K2, K3 전관에 걸쳐 대표적 회화작품 68점과 드로잉 21점, 아카이브 자료 등을 모아 마치 미술관 같은 전시로 꾸려졌다. 이용우 홍콩중문대학교 문화연구학과 교수가 초빙 큐레이터로 참여해 전시를 꾸몄다.

이번 전시는 전시 공간 모두를 활용하면서 공간별로 유영국 작품 세계의 핵심 요소를 꼽아, 공간별로 또렷하게 개성을 드러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화사하고 쨍한 원색의 색감, 고루 균형잡힌 색채 감각, 주요 모티프인 산의 푸른 색감과 형태가 남아있는 작품, 캔버스 표면에 두꺼운 마티에르를 드러내며 물성을 표현한 작품 등 추상화 선구자로서 여러 면모를 하나씩 차근차근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서울 삼청동 거리가 창밖으로 보이는 K1 1층 방은 작가 대표작 및 초기작을 중심으로 유영국 세계관 압축판을 보여주면서 관람객에게 유영국을 소개하는 안내서가 된다. 이어 K1 안쪽에 위치한 전시장에는 고유의 색채와 추상 구도를 통해 독자적 미학과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한 1950∼1960년대 초중반 작품을 모았다. 두꺼운 마티에르가 인상적인, 유화의 물성을 강조하는 작품들이다.

유영국. 국제갤러리 제공

K2에서는 1970∼1990년대까지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집요하게 천착해온 점, 선, 면, 형, 색이라는 기본적인 조형 요소를 토대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한 모습을 보여준다. 색채와 구도의 완급을 통해 자연의 원형적 색감을 심상으로 환기시키는 추상화들로, 강렬하고, 원초적이면서도 완벽한 균형의 에너지로 채워진다. 1층에서는 여린 노란색을 칠한 배경에 붉은 계열 대표작을 걸고, 2층에는 에메랄드빛 벽에 초록색과 파란색이 유영국 특유의 색채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표작을 걸었다. 이런 섬세한 작품 배치 덕에 3개 관을 돌며 수십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이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K3에서는 기하학적 추상과 조형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후반 및 1970년대 작품이 전시를 마무리짓는다. 생전 “내 작품은 내가 죽은 뒤에야 팔릴 것”이라고 말했으면서도, 말년에 전업작가로서 드디어 자신감을 채우고 작품에 가장 온전히 집중했던 시기 작품들이다. 특히 초록, 파랑, 군청색 계열의 추상화들로 전시장이 채워졌는데, 전시장에 들어서는 그간의 흥분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뜨거운 열정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차분하게 집중했던 시기 작가 태도가 전시 공간에 담긴 듯하다.

‘작품(work)’(1961) 국제갤러리 제공

이용우 초빙 큐레이터는 “제작 연도로는 후대 작품들이지만, 유영국의 화업에서 가장 ‘젊은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곳의 1960∼1970년대 작품들을 꼽고 싶다”며 “유영국이 작가로서 가장 의기가 넘쳤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유영국의 대표작을 풍부하게 선보이는 것은 물론 알찬 아카이브가 조화돼 관람객이 전시장 곳곳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작품(work)’(1962) 국제갤러리 제공

가령, 유영국만의 ‘색면’에 익숙한 관람객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선’을 발견하는 새로운 기쁨을 맛볼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 작품 덕이다. 유영국의 1940년대 사진 작품들은 그간 만나볼 기회가 거의 없던 작품들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드문 관람 기회다. 그런데 K2에서 사진 작품들은 색면추상 회화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면서 특별한 영감을 준다. 유영국 작품에서 두꺼운 마티에르 위에 성글고 뻑뻑하게 그어진 선들이 사진작품들 속 돌부처를 보고 나니 달리 보인다. 두껍고 단단한 마티에르, 그 위에 성글게 그어진 물감의 질감들이 바로 이 오돌토돌한 돌의 표면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돼서다. 그간 색면에 가려져 관심을 덜 받았던 요소인데, 사진과 함께 보니 유영국이 직접 열심히 사진기에 담은 돌의 질감이 눈에 들어오면서 작품의 선처리도 한층 흥미롭게 보인다.

‘경주 남산 불두’(1942) 김예진 기자

작가가 실제로 돌의 표면 질감을 작품에 들여오려 한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게 갤러리와 큐레이터 설명이지만, 전시는 이처럼 관람객이 작가와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새로운 점을 알아채거나 상상하도록, 그러면서 작가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도록 이끈다.

유영국은 올해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전시,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장품 전시 등 여러 한국근현대 미술을 다루는 인기있는 전시들에서 수차례 관람객과 만난 바 있다. 이 때문에 자칫 익숙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을 법한 전시였는데, 섬세하고 다양한 아카이브 덕에 유영국의 세계에 새로운 공기를 돌게 한다. K2에서 작은 크기의 소품들을 모아 볼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기회다. 그간 미술관의 여러 단체전에서는 주로 대작 위주로 선보여왔기 때문이다. 갤러리 관계자는 “소품전은 1980년대 한 화랑에서 열렸던 전시 이후로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8월 21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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