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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행동교정 없이… 대책없는 ‘강제전학’ [심층기획 - 강제전학제도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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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12 06:00:00 수정 : 2022-07-11 21: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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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간 학교서도 ‘문제학생’ 낙인… “교정·심리치료 강화”

초·중학생에게는 가장 센 징계
새학교 적응 못해 ‘악순환’ 반복

학폭 가해자 전학조치 매년 수천건
2차 피해 막기 위해 분리시키지만
전학 조치된 학교 학부모 반발 거세
근본 해결책은 가해 학생 변화 도모

“강제전학(전학조치) 가도 나중에 다시 찾아와 보복하겠다.”

 

최근 전북 익산시의 한 초등학교를 발칵 뒤집었던 5학년 A군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A군은 학교에서 ‘무법자’였다. 학교폭력 전력으로 지난 5월 이 학교에 강제전학 온 A군은 반 친구들에게 폭언, 폭행을 하고 반에서 기르던 햄스터를 다른 학생의 물통에 넣어 죽게 만드는 등 등교 일주일 만에 각종 소란을 일으켰다. 교사에게 “흉기로 찌르겠다”고 협박하고, 교사는 물론 현장에 출동한 경찰까지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하기도 했다. 학교는 등교정지 조치를 내렸으나 A군이 아랑곳하지 않고 등교를 시도하자 같은 반 학생들은 A군을 피해 현장체험학습을 떠났다. 교육청 홈페이지에는 “학교가 쑥대밭이 됐다”며 A군을 전학 보내란 학부모의 글이 줄을 이었고,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학교로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강제전학을 간 학교에서 재차 문제를 일으켜 또다시 전학 이야기가 나온 A군의 사례는 강제전학 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강제전학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 중 높은 수위에 속하지만, 문제 근본 원인을 개선하지 않고 학생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란 지적도 많다.

 

◆순번 정해 강제전학 받는 학교들

 

11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학생·부모 동의 없이 전학조치가 가능하다. 전학은 학교폭력 처분 중 퇴학 다음으로 높은 수위로,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생에게는 가장 센 징계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 전학조치는 2017학년도 1959건에서 2018학년도 2073건, 2019학년도 2127건으로 늘었다. 2020학년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전체 학교폭력 건수가 줄어 전학조치도 667건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다시 1001건으로 늘었다.

2021학년도 전학조치는 중학생이 540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생 360건, 초등학생 92건, 기타(특수 학교 등) 9건 순이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등교일이 늘어나 전체 학교폭력 건수와 전학조치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강제전학의 취지는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의 환경을 바꿔 학교폭력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현장에서는 난감한 제도다. 가해 학생을 받는 학교 입장에서는 기존에 없던 문제 학생이 생기는 것이어서 학생·학부모·교사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 전학조치 제도 도입 직후인 2013년에는 경남 양산시의 한 중학생이 전학조치된 학교 학부모들이 시위를 열고 반발해 전학이 철회되기도 했다.

 

제도 도입 10년이 지났지만 거부감은 여전하다. 2020년에는 ‘인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 학생(당시 중2) 2명이 전학조치 되자 인근 학교 학부모들이 “전학 보내지 말고 처벌과 교정이 가능한 제도를 만들어달라”며 전학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다. 가해 학생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반발은 일단락됐지만,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해결되지 않았다. 당시 가해 학생들이 전학 갈 예정이었던 학교는 이들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제전학의 구체적인 사유는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인천 지역의 한 학부모는 “해당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진 건데,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가해 학생은 학부모들 모르게 조용히 전학을 오가는 것 아니냐”며 “전학 간 학교에서 또 문제가 터지면 누가 책임지나. 폭력 정도가 심각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분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들의 거부감이 크다 보니 각 교육청은 지역 내에서 순번을 정하거나 강제전학으로 학생이 나간 학교에 한 명을 다시 채워 넣는 식으로 배정하고 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전학조치된 아이를 받고 싶어하는 학교는 없어서 배정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폭탄 돌리기’론 문제 행동 교정 못해

 

전학조치의 가장 큰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점이다. 전학조치된 학생 중 일부는 옮겨간 학교에서도 또 문제를 저질러 수차례 학교를 옮기기도 한다. 실제 인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 학생 중 한 명도 다른 사건으로 강제전학 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 3학년 B군이 동급생의 등에 뜨거운 물을 부어 중증 화상을 입혀 전학조치된 사건이 알려졌는데, B군 역시 이전에 다른 학교에서 강제전학 온 상태에서 이런 행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학조치가 학교폭력을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폭력을 다른 학교로 확산시킨 것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강제전학 온 학생이 몇 달도 안돼 다른 학교로 가는 일이 종종 있다. 전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다”며 “전학은 문제 학생 행동 교정에 수반되는 부수적인 조치여야 하는데, 현재 제도는 전학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식”이라고 말했다.

 

교육 당국도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학교폭력 가해 학생 중 전학조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2019학년도 3∼3.1%였으나 2020학년도 2.8%, 2021학년도 2.4%로 소폭 줄었다. 코로나19로 수위 높은 학교폭력이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가해 학생에 대한 심의 업무가 2020년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 것도 무관치 않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심의할 땐 가해 학생을 다른 학교로 보내려는 의지가 컸지만, 교육청에선 전학조치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어서 전학조치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징계의 목적이 ‘문제 행동 교정’인 만큼 교정 프로그램·심리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서면사과(1호)와 퇴학(9호)을 제외한 조치를 받은 경우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를 받도록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익산 초등생은 언론에 보도된 뒤 논란이 커지자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는 위(Wee)센터 입소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일각에선 이슈가 되지 않았다면 전학조치에 그쳤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전북교사노조는 익산 초등생 사건 후 성명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과 전문적인 치료를 통해 가해 학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라며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학생에 대한 신상필벌이 아니라 교화를 통한 민주시민 양성에 있다”고 꼬집었다.

 

학교폭력 전문교사인 박정현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은 “강제전학은 학교폭력 징계로서는 가장 무거운 조치이지만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학교를 옮겨도 또 가해 행동이 나타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원청별로 위센터 등 행동 교정 기관이 있지만 이런 과정 없이 전학만 보내다 보니 익산 초등생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징계가 효과를 거두려면 문제 행동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전학조치를 받은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위탁형 대안학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큰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박 부소장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 등을 모은 공립위탁교육기관에서 집중 관리를 한다면 일반 학교의 부담을 덜어주고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효과가 있지만 이런 곳은 거의 없다”며 “강제전학을 보냈다고 손을 놓지 말고, 전학조치를 가해 학생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요소 중 하나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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