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물가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심각한 경제위기, 이른바 ‘퍼펙트 스톰’을 막기 위한 고육책의 측면이지만,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일수록 더 큰 충격에 노출된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분주한 모습이다. 우리나라 또한 청년층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에 나서는 한편, 종합부동산세 등 제도 개선이 예고됐다. 보다 긴밀한 대응을 위해 각국의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의 움직임도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20·30대에 금리 인상 직격탄
정부는 14일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계‧기업대출 및 취약부채 현황과 최근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민생 영향에 대한 분석 결과도 공개했다. 정부는 금융지원이 필요한 계층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대출이 급증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외에도 이례적으로 주식·가상자산·주택 등에 투자한 20·30세대를 꼽았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청년층이 등을 돌리자 정부 차원의 맞춤형 대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대응과정에서 가계와 기업의 민간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기준금리가 빠르게 상승한 결과, 가계부채의 대출이자와 기업부채의 상환능력 악화가 주요 위험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 규모는 1860조원, 기업부채 규모는 2355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런 금융환경 변화가 민생에 끼치는 영향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 금융애로 현실화 가능성 △주거 관련 가계차주의 금융부담 증가 △주식, 가상자산 등 청년 자산투자자의 투자 손실 확대 △서민 등 취약차주 부실 및 금융접근성 약화 우려를 꼽았다.
정부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경우 연체율이 아직은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의 5월 말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이 한 달 전보다 0.01%포인트 오른 0.24%로 전월 대비 보합 수준이라고 14일 발표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중 매출 부진을 추가대출로 충당하면서 채무부담이 누적되고 있고, 자영업자 등은 변동금리·일시상환·단기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 리스크에 취약해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언제든지 부실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다. 2017년 말 554조5000원이었던 개인사업자 보유대출은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967조7000원으로 불어났다. 여러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소상공인 다중채무자 역시 2017년 말에는 5만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3월 말에는 30만명에 달하는 실정이다.
주거와 관련해서는 금리 상승에 따라 상환부담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0년 말부터 주택가격 급등기에 소득에 비해 많은 대출을 받는 ‘영끌’로 주택을 구입한 20·30세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20·30 청년의 주택거래비중(수도권)은 2019∼2020년 상반기까지는 25.2%였지만,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까지는 30.2%에 달한다. 주택구입 시 대출 등 타인자금 사용 비중도 청년외 계층은 36.4% 정도이지만, 20·30 청년은 56.7%에 이른다. 여기에 만약 금리 상승으로 20‧30세대 주택구입이 감소해도 이제는 전세수요가 증가해 전세 부담이 가중될 소지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20‧30세대의 경우에는 주식, 가상자산 등 투자손실 확대에 따른 금융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정부는 우려했다. 저금리 시기에 청년들이 재산 형성 수단으로 저축 대신 돈을 빌려 주식‧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는데, 금리 상승 여파로 자산가격이 급속히 조정되면서 상당수 자산투자자가 투자 실패 등으로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20·30 청년의 신용융자(주요 10개 증권사)는 2020년 6월 말에 1조9000억원대였으나 1년 후에는 3조60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부는 여기에 전통적인 서민 등 취약차주의 부실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정부는 가계대출 중 약 5.0%인 93조원이 금리 상승에 따른 상환능력 악화가 우려되는 부실위험 대출로 추산했다. 정부는 특히 2021년 7월 최고금리 인하(20%)가 시장대출 금리 상승과 맞물리면서 대부업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29세 이하 청년층의 2금융권 가계대출 총액은 26조5587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7.5% 급증하는 등 청년층의 경우 상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금융 위험에 대한 인식 및 대책과 별개로 정부는 금융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만기 연장과 상환유예 조치를 금융사에서 자율적으로 90%대까지 해주면 사실상 금융지원 연장과 다름없다는 지적에 대해 “금융사가 책임을 지고 고객인 차주의 신용 상태를 파악하고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고 도와줄 수 없는 건 빨리 신용회복위원회로 넘기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며 “차주 중에 정부 대책에 들어가지 않는 애매한 분야가 있을 수있다. 이것은 금융사가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종부세 대폭 개편… 주택수→가액 기준, 과세표준 구간 조정
주택 수가 많으면 세금을 더 부과하는 내용으로 설계된 현행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대폭 개편될 전망이다. 그간 전체 자산 가치가 아니라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세금을 과도하게 다르게 부과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아울러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해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을 낮추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춰 기업의 투자와 고용창출을 유도할 방침이다.
1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오는 21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우선 종부세 과세 체계를 주택 수 기준에서 가액 기준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주택자에 대해 부여하는 종부세 중과세율을 폐지하고 각자 보유한 자산 규모에 따라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보유 주택 호수(에 따른) 차등과세를 가액기준 과세로 전환하는 것은 조세 원칙과 세 부담 적정화 차원에서 필요하다”면서 종부세 개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다주택자(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3주택 이상)는 1주택 기본 세율(0.6∼3.0%)보다 높은 1.2∼6.0% 중과세율로 세금을 낸다. 당초 종부세율은 보유 주택 수에 상관없이 0.5~2.0%였지만 문재인정부가 실시한 9·13 대책을 계기로 2019년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율이 도입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세율이 오르면서 다주택자 중과세율 부담은 더욱 커졌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시가격 30억원(고령자·장기보유 세액공제 50% 가정) 주택을 가진 1세대 1주택자는 종부세를 1005만원을 낸 반면, 조정대상지역에 공시가격 합산 15억원 상당의 주택 2채를 보유한 사람의 경우 1487만원을 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 강남 등 고가 지역을 중심으로 ‘똘똘한 한 채’를 찾는 수요가 늘어났고, 세 부담이 왜곡됐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사실상 폐지하는 방향으로 세법 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다주택자 일괄 폐지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단계적으로 과세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주택자의 세율 자체를 큰 폭으로 인하해 사실상 가액 기준 과세를 도입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세표준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1주택자에 1.0%, 조정지역 2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1.2%의 세율을 매긴다면 각종 공제 혜택을 제외한 세액 자체는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 기재부는 “종부세 개편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는 중·저소득층의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개편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물가상승이 반영되지 않은 명목소득이 증가했다는 이유로 중산층의 소득세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예를 들어 소득세 과세표준 4500만원인 근로자 임금이 3.0% 늘어 과세표준이 4635만원으로 늘어난 경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소득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과세표준은 ‘4600만원 이하 15%’ 구간 대신 ‘8800만원 이하 24%’ 구간을 적용받아 세율이 올라가게 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 25%에서 22%로 3%포인트 낮추고, 퇴직소득공제 확대 및 교육비 공제 대상 확대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원활한 가업승계를 촉진하기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상속인이 양도·상속·증여하는 시점까지 상속세를 납부 유예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제도도 도입될 예정이다.
◆인플레이션 단속 위해 각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물가 폭등과 금리 인상 등 글로벌 이슈에 따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시장의 지나친 쏠림현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섰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26∼2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시 한 번 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경우 한·미 간 금리 역전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 이상 치솟으면서 연준이 금리를 1%포인트 인상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가 15일부터 인도네시아 발리에 모여 해법 찾기에 나선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회의에 참석해 에너지·식량 안보 위협과 인플레이션 등 세계 경제 불안요인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14일 기재부·한은 등에 따르면 이번 회의는 세계경제 전망과 인플레이션 상황, 세계보건 이슈, 국제금융 체제의 복원력 제고 및 취약국 지원, 암호자산 규제 등 금융 부문 이슈, 녹색경제 전환을 위한 지속가능금융, 지속가능 인프라 투자 확대, 새로운 국제조세 체계 이행 등 7개 세션으로 구성된다.
특히 인플레이션 상황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 방안 논의가 주목된다. 전날 발표된 미국의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9.1%로 1981년 12월 이후 가장 높았다. 유로존과 우리나라의 6월 소비자 물가도 각각 1년 전보다 8.6%, 6.0% 올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식 의제는 아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 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경우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도 국내 금융시장 안정에 힘을 쏟고 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서울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지나친 시장 쏠림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한편, 시장별 컨틴전시 플랜에 따른 추가 조치도 필요하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방 차관은 전날 한국은행의 사상 첫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과 관련해 “어느 정도 시장 기대가 선반영돼 있었고 금리 인상 폭과 향후 인상 속도 관련 메시지가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었다’며 “이에 따라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우리 금융시장은 오히려 안정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6.29포인트 하락한 2322.32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는 전날 저녁 발표된 미국 CPI가 역대 최고치인 9.1을 기록했다는 소식에 한때 2310선이 무너지기도 했으나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낙폭을 줄였다. 환율은 전일 대비 5.2원 상승한 1312.1원으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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