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기준 공표 땐 즉각 반영
선진국 틀에 맞춰 탄생한 기준
IFRS 조기 도입때도 피해 막대
세계 경제의 질적인 성장과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체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수십년에 걸쳐 ESG와 관련한 규제방식이 마련·논의됐고 도입을 앞두고 있지만, 한국과 같은 후발그룹과 개발도상국들은 이에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ESG와 관련한 국제 표준을 준수하고, 글로벌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에만 열중해 산업 현장의 비명에는 귀를 닫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29일)까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 ESG 공시의 국제 표준인 ‘국제회계기준(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에 대한 한국의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ISSB는 각국의 의견을 검토·반영한 뒤 올해 말 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의 최종안을 공표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2025년 코스피 상장사 중 자산 2조원 이상인 기업에 대해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에는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배구조(Governance) 항목은 2019년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적용한 이후 2026년 전체 상장사로 확대될 계획이다. 이처럼 ESG 공시 시점은 결정됐지만, 그 기준 및 방식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었다.
학계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올해 말 공표될 IFRS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전면 도입해 기준으로 삼을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만약 이 계획이 현실화하면 선진국들이 수십년간 도출한 ‘신기후체제 룰’을 바탕으로 탄생한 기준을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100% 도입하는 셈이다.
학계와 산업현장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과거 회계 분야에서 산업계와 심도 있는 논의 없이 국제 표준을 도입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봤는데 현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는 2009년 국제회계기준(IFRS)의 조기 도입을 허용한 데 이어 2011년 전면 도입했다.
당시 정부는 △전 세계적인 회계기준 단일화 추세에 대응하고 △회계투명성을 제고하며 △글로벌 기업의 회계장부 이중 작성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명분으로 IFRS를 제정한 유럽연합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이를 받아들였다.
비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 중심의 회계기준을 전면 도입하면서 당시 산업 현장에서는 타격이 속출했다. 회계기준 변경으로 부채비율이 급등한 조선사들은 해외 선박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건설업계를 비롯해 리스를 많이 이용하는 항공이나 해운 등의 업종도 직격탄을 맞았다.
내년 도입을 앞둔 새 국제회계기준(IFRS 17)도 한때 국내 보험사들을 존폐의 기로로 내몰기도 했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글로벌 차원의 ESG 통합기준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전략은 ESG 통합기준을 유일한 의무 기준으로 법률화해 과거 IFRS 도입의 과오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기업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금융감독당국뿐 아니라 다양한 관계부처와 민간이 힘을 합쳐 ESG 통합기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 국내 기준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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