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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야 빛 본 ‘천재 여류 사진작가’ 불굴의 삶

입력 : 2022-08-06 01:00:00 수정 : 2022-08-05 17: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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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쌓인 14만장 사진 발견되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진가 반열
비비안의 베일에 감춰진 삶 추적

보모 일하며 평생 거리의 표정 담아
세상과 담쌓은 불운한 천재 아닌
삶의 의지 가득했던 본모습 보여줘

비비안 마이어/앤 마크스/김소정 옮김/북하우스/3만2000원

 

벼락처럼 쏟아진 사진작품 14만점.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거리 사진가로서 탁월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지만 생전 단 하나도 공개하지 않은 비비안 마이어(1926∼2009). 유모를 생업 삼아 사진을 찍으면서 평생 홀로 살다가 한 푼의 재산도, 유족도, 유언도 없이 세상을 떠난 이 사진작가는 대신 많은 물음표를 남겼다. 죽은 후 단숨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녀가 남긴 기록은 단출하다. “프랑스 출신으로 시카고에서 50년 넘게 산 비비안 마이어가 지난 월요일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존과 레인, 매슈에겐 제2의 엄마였다”로 시작하는 지역 신문(시카고 트리뷴 2009.4.23.) 단출한 부고가 전부다.

그래서 지금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진가 중 한 명이 된 비비안은 그 삶 자체가 신비하다. 50년 이상 미국 여러 도시에서 일상 속 사람과 거리 풍경, 부자와 걸인의 희로애락 등 시대의 풍미가 담긴 사진을 찍었다. 공개된 적 없던 비비안의 필름과 사진은 상자에 담겨 유료 창고에 보관되다가 2007년 창고 임대료가 밀려 경매에 부쳐졌다. 작품에 매료된 경매 낙찰자들이 수소문 끝에 원주인을 찾아냈지만, 마이어는 저소득층 임대 아파트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지 수일 후였다. “연속적으로 일어나야 했던 필연적인 일들을 생각해보면 비비안의 탁월한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될 확률은 무한소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단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비비안의 작품은 거대한 철제 쓰레기통에 던져져 영원히 잊혔을 것이다.”

앤 마크스/김소정 옮김/북하우스/3만2000원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비비안 이야기인데 ‘최초의 공인전기’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신간 ‘비비안 마이어’는 그 후 이야기를 담는다. 우연한 기회에 비비안의 삶을 추적하게 된 저자는 두툼한 기록과 사진 자료를 근거로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이며,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파고든다.

 

창고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던 잡동사니에서 비비안 흔적을 쫓을 수 있는 단서를 찾고, 프랑스 시골 마을과 뉴욕 문서 보관소를 뒤져 어쩌면 비비안이 평생 숨기고 싶었을 마이어 가계도를 완성한다. 혼외자로 태어난 할머니, 그리고 불행한 결혼생활과 성격이상으로 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모친, 약물 남용과 폭력, 정신질환으로 점철된 삶을 산 오빠 등 복잡한 가족의 굴레에서 자라난 비비안은 그들과 절연을 선택한다. 비밀스러운 삶을 유지했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는 보모 일을 감수했다. 그러면서 이모할머니가 남기고 간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간 프랑스에서 40여년간 지속할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엄청난 에너지와 호기심으로 오트잘프의 날카로운 봉우리, 깊은 계곡, 거친 시골 풍경, 무엇보다 독실한 가톨릭 전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지역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사진을 찍었다. 

시카고의 한 창고에서 발견된 사진으로 비비안 마이어는 순식간에 ‘20세기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20세기 거리 사진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작가이자 은둔과 역설의 상징이자 불가해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로서 그가 남긴 사진은 위트, 사랑, 빈곤, 우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고,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인물의 다양한 표정이 살아 있다. 세상의 상냥함과 비극이 동시에 존재한다. 계급과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찰나의 시간이 그대로 담겼다.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 사진과 작품들. 북하우스 제공

이후 저자는 14만 장에 이르는 비비안 사진 자료에 접근할 유일한 권한을 허락받은 이로서 작품을 기반으로 이 기구한 예술가 삶을 그려낸다. 비비안은 처음부터 부지런히 사진 기술을 익혔고, 촬영 대상과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시카고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비비안은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순수한 것, 뒤틀린 것 모두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했고, 도시와 시골의 풍경에서 고유의 대칭과 패턴과 질감을 발견했으며, ‘셀카의 원조’로 만든 자화상 사진들을 통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 없는 증거로 세상에 보여주었다.

 

비비안도 한때는 진지한 사진작가를 꿈꾸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료 사진작가와 교류하고, 사진엽서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등의 노력과 시도는 어느 시점부터 사라지고, 평생 찍은 사진 대부분을 현상도 하지 않은 채, 상자 속에 던져넣고 창고에 봉인해버린다. 저자는 ‘세상과 담을 쌓은 불운한 천재’라는 식의 평이한 추정을 거부한다. 대신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비비안을 옭아매온 ‘저장 장애’와 편집증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비비안에게 사진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감정을 드러내고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작가가 세상에 대한 자신의 깊은 이해를 드러내고 그 세상에 참여하는 방법이었다.

사후에야 작품세계를 인정받은 삶은 얼핏 불행했던 화가 고흐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히 부정한다. “처음부터 사람들은 비비안에게 그들 각자의 가치와 기대를 투영했다. 비비안에 관한 가장 강력한 신화는 그녀가 소외됐고 불행했고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픈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비비안은 끝내 살아남은 생존자였고 엉망이 된 가족과 과감히 절연하고 자기 삶의 질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린 불굴의 의지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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