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의 어느 토요일 경기 여주시에서 ‘2022 공감과 체험의 다문화’ 행사가 열렸다. 동국대 문화학술원 HK+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에서 주관했는데 세종대왕의 영릉이 있는 여주가 무대인 만큼 주제도 ‘세종 시대의 문화 지평과 조선의 리더십’이었다. 서울교육청과 경기교육청 소속으로 유치원 및 초·중·고교에서 다문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언어강사 24명이 참여했다. ‘세종과의 하루’ 저자이자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박현모 여주대 교수가 해설을 맡았다. 엄청난 지식과 재치가 넘치는 입담으로 세종 시대 정사(正史)를 소개한 것은 물론 흥미진진한 야사(野史)에 퀴즈까지 긴장과 재미를 더했다.
세종대왕릉으로 가기 전 먼저 효종의 영릉(寧陵)에 들렀다. 그곳의 재실(齋室)에서 한글 창제 원리인 둥근 하늘 ‘천’(天)과 네모난 땅 ‘지’(地)를 상징하는 우물에 깃든 이야기를 들었다. 한글에서 초성은 하늘, 즉 지도자이고 종성은 땅이라고 한다. 그 사이 중성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람 ‘인’(人)의 역할이라고 하였다.
세종대왕릉은 효종의 능과 발음이 같은 영릉(英陵)이다. 뛰어날 ‘영’자를 쓴 것은 세종 시대에 인재가 많았고 또 그들의 재능이 만개한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에는 조선국(朝鮮國)이란 국호가 적혀 있었다. 해설자가 나라 ‘국’자에서 안의 작은 입 ‘구’(口)자는 백성의 생존에 필수적인 밥(경제), 창을 뜻하는 ‘과’(戈)자는 나라의 안보를 각각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종 시대의 대표적 인재가 바로 장영실이다. 그는 노비 출신이고 아버지는 중국인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장영실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그를 중용했다. 이는 해시계와 혼천의, 자격루 등 다양한 과학 기구들이 세종 시대에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 활약한 인물들 중 박연이 있다. 원래 네덜란드 사람인 그는 1627년 최초로 조선에 귀화한 외국인이다. 박연은 무과에 응시해 당당히 장원 급제 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외국 출신인 그에게 신식 무기 개발을 위한 훈련도감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1653년에는 역시 네덜란드인인 하멜이 항해 도중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그는 번(빵) 만들기 기술을 조선에 전수한 것은 물론 조선에 관한 ‘하멜 표류기’라는 책도 남겼다. 이는 유럽에 조선이란 나라의 존재를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어디 이들뿐인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중국 여진족 퉁두란(훗날 ‘이지란’으로 개명)도 있다. 조선 건국 후 그는 개국공신이 되었고 아들들도 관직을 받아 대를 이어 조선에 충성했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270여만명의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600여년 전의 세종대왕을 비롯해 조선 정부의 포용 정책과 리더십을 오늘의 위정자들도 귀감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을 둘러보고 여주 옆 이천에서 과거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쌀로 지은 나랏님 밥상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도자기 예술마을도 둘러보았다. 참가자들은 “세종대왕의 업적과 리더십을 가슴에 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귀경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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