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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처럼 함양 화림동 계곡 거닐며 가을 풍경 즐겨볼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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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22 14:51:15 수정 : 2022-10-22 14: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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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선비문화탐방로에 가을 풍경 가득/인기 드라마 ‘환혼’ 배경 농월정 묵객 풍류 가득·동호정에선 국악 공연도 즐겨/자연과 한몸된 거연정도 절경 선사/1100여년전 조성된 상림공원에 ‘천사의 얼굴’ 안젤로니아 활짝

 

농월정.

계곡을 덮은 수많은 너럭바위와 기암괴석. 그 위로, 옆으로 쉴 새 없이 맑은 물이 흐른다. 그리고 바위에 선 고풍스러운 정자와 그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선 울창한 나무들까지. 옛 선비들도 이런 풍경에 홀딱 마음을 빼앗겼나 보다. 바위 곳곳에 수많은 묵객이 한자로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을 보니. 밤이 맑은 날, 하늘에 뜬 달과 연못에 비치는 달을 희롱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낭만이 넘쳐나던 곳, 농월정에는 지금도 풍류가 계곡의 옥류처럼 흐른다.

 

 

 

여행1면

◆선비처럼 화림동계곡 풍류 즐겨볼까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화림동계곡.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이다. 해발 1508m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의 상류 금천은 계곡을 따라 흐르며 곳곳에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어 놓았다. 옛 선비들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수화처럼 펼쳐지는 무릉도원에 반해 너럭바위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여덟 개의 못과 여덟 개의 정자가 있어 ‘팔담팔정(八潭八亭)’으로 불리는 화림동계곡의 비경을 엮은 길이 선비문화탐방로다. 거연정∼군자정∼영귀정∼다곡교∼동호정∼호성마을∼경모정∼람천정∼황암사∼농월정으로 이어지는 길은 약 6.2㎞로 걸어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농월정 너럭바위.

‘정자 문화의 보고’답게 자연과 다양한 정자가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풍경이 여행자들을 기다리며 가장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농월정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농월교에 서자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절경이 펼쳐져 여행자들이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왼쪽으로 계곡을 빼곡하게 채운 바위들이, 오른쪽엔 수직절벽을 따라 옥류가 흐른다. 

 

농월정 너럭바위 글씨.

10여분 걸어 터널처럼 울창한 오솔길을 빠져나가자 감탄이 쏟아진다. 계곡에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시원하게 펼쳐졌고 옥빛 물살은 요리조리 굽이치며 장쾌하게 바위 사이로 흐른다. 솜씨 좋은 조각가가 한껏 실력을 발휘한 듯, 물살은 암반 곳곳을 깎고 부드럽게 다듬어 기묘한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곳곳에 새겨진 한자들이 선비들이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며 유유자적하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바위에 새긴 글자들은 대부분 이름으로 요즘 낙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산이 수차례 바뀌면서 낙서가 작품이 됐으니 세월의 아이러니다. 

 

드라마 '환혼'에 나오는 농월정.

 

 

농월정.

그런데 너럭바위에 들어앉은 농월정 풍경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폭풍 검색을 해보니 지난 8월 종영된 인기 드라마 ‘환혼’에 등장했던 우리나라의 여러 멋진 풍경 중 한 곳이다. 드라마 3화에서 여자 주인공 무덕이(정소민 분) 몸으로 환혼한 ‘살수’ 낙수가 어릴 때 기문이 막혀 술법을 배우지 못한 남자 주인공 장욱(이재욱 분)에게 최고의 술사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집수·유수·치수’ 단계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농월정이 등장한다. 정자와 계곡을 에워싼 숲이 온통 울긋불긋한 걸 보니 지난해 단풍이 절정일 때 촬영한 듯하다. 10월 말이나 11월 초쯤 농월정을 찾으면 드라마처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겠다.

 

농월정 묵객 글씨.

정자 이름 농월(弄月)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 정자 앞 너럭바위는 달이 연못에 비치는 바위 ‘월연암(月淵岩)’으로 이름에도 옛 선비들의 풍류가 잘 담겼다. 따뜻한 가을 햇살과 바람을 즐기며 너럭바위에 잠시 누워본다. 높고 푸른 하늘을 즐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연을 벗 삼아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예조참판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진주대첩에서 전사한 함양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며 세월을 낚던 곳. 그는 병자호란 때 굴욕적인 강화가 맺어지자 벼슬에서 물러나 이곳에 은거하며 정자를 지었다. 원래 정자는 2003년 방화로 소실돼 옛 모습이 사라졌다니 매우 안타깝다. 10년 동안 방치됐다 2015년 기록사진과 도면을 토대로 정자가 복원됐다.

 

동호정.
동호정.
동호정 진막순 선생 국악공연.
 

 

◆자연과 하나 된 거연정·국악 즐기는 동호정

 

농월정을 나서 동호정으로 향한다. 정자에 도착하니 국악 연주가 운치를 더한다. 노란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국국악협회 함양지부장 진막순 선생이 멋진 가야금 연주를 선보이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참석자들은 선생의 연주에 맞춰 ‘아리랑’과 ‘너영나영’을 함께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오솔길을 걷다 징검다리를 건너 도착하는 동호정은 농월정과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선명하게 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은 계곡물에 동호정이 드리워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동호정 앞 거대한 너럭바위는 해를 가릴 정도로 넓은 바위여서 ‘차일암(遮日岩)’으로 불린다. 그런데 바위가 좀 독특하다. 곳곳에 움푹 팬 웅덩이가 많은데 옛 선비들이 술통으로 사용했단다. 봄날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띄워 술을 마시는 풍경이 그려진다. 동호정은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 동호 장만리 공을 추모해 1890년쯤 후손이 건립한 정자.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등에 업고 의주에서 신의주까지 피란시킨 인물이다.

 

거연정.
거연정.

 

거연정 계곡.

동호정을 뒤로하고 1㎞ 정도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선비문화탐방로의 마지막 여정, 거연정(居然亭)이 등장한다. 절벽의 암석과 정자가 하나로 붙어버린 신비한 풍경이라니.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과 정자가 한 몸으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놓았다. 거연정을 잇는 다리와 그 밑으로 흐르는 물빛이 어우러져 탄성이 쏟아진다. 이름처럼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어 한 선비들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거연정은 1613년에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했다. 거연정을 잇는 다리 위에 서자 기암괴석과 검푸른 소,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어우러지는 가을 풍경이 가슴속으로 쑥 들어와 깊게 박힌다.

 

여행2면
남계서원.
남계서원 입구 2층 누각.

 

◆꽃천지 상림공원엔 가을 낭만 가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계서원에 들어서자 선비들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정면 강당을 중심으로 양쪽에 유생들이 기거하며 글공부하는 동재와 서재가 배치된 전형적인 서원의 모습이다. 입구 누각의 2층 마루에 오르면 서원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다리 쭉 펴고 가을바람을 즐기며 쉬어가기 좋다. 서원에선 제례와 예절체험이 진행된다. 보통 서원은 봄·가을 두 차례 제례를 지내는데 전통의상을 입고 직접 제례 순서를 배울 수 있다.

 

남계서원 제례 체험.

저녁 6∼9시 남계서원은 또 다른 세상으로 변신한다. 지난달 30일 시작해 이달 말까지 선보이는 ‘빛의 노래, 서원을 밝히다’ 미디어아트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서원 건물과 담벼락을 스크린 삼아 화려하면서 몽환적인 디지털매핑과 레이저아트쇼가 진행된다.

 

남계서원 미디어아트.
최치원 역사공원 ‘약동의 공간’.

1100여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 상림공원은 함양 여행의 필수 코스. 함양태수로 부임한 신라 최고의 문필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위천이 범람하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인근 가야산의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 오랜 세월 지나 상림공원은 온대 낙엽활엽수 120여종 2만여그루가 자라는 울창한 숲이 돼 여행자들에게 풍요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상림공원 연못.
상림공원 연못.

넓은 잔디 마당이 펼쳐진 최치원 역사공원을 지나면 독특한 조형물이 기다린다. 함양 산삼 어린싹이 하늘을 향해 움트는 모습을 담은 ‘약동의 공간’. 사진 한 장 찍고 왼쪽 상림공원으로 접어들자 온통 꽃세상이다. 900m가량 길게 펼쳐진 꽃단지엔 빨갛고 노란 백일홍에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어우러져 가을 여행의 낭만이 가득하다. 농도가 조금씩 다른 보라꽃 안젤로니아도 활짝 피었다. 꽃말은 ‘천사의 얼굴’. 연못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잎을 지닌 아마존 빅토리아수련 등으로 꾸며져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돌다리를 건너다 서로 예쁜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는 연인들의 얼굴은 꽃보다, 천사보다 더 예쁘다. 


함양=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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