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29건 줄어 400건 달해
고용부 56건 입건, 檢 송치 21건뿐
정부, SPC 계열사 안전감독 착수
“땜질식 단속으론 사고 반복” 비판
‘샤니’ 근로자 작업 중 손가락 절단
회장 사과한 SPC 계열사 또 사고
“피 묻은 빵 그만” 불매운동 확산세
안성 추락사고 시공사 대표 입건
SPC그룹 계열사인 SPL 제빵공장 근로자 사망사고를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 커지면서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올해 1~8월에만 400여명의 근로자가 숨지는 등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SPL 사고 후 8일 만에 SPC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 샤니 제빵공장에서도 부상 사고가 발생하면서 SPC 불매운동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조짐이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432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명 적지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중대재해 사고 건수도 올해 1~9월 400건 발생해 전년 동기에 비해 29건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에 당국은 24일부터 전국 13만5000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식품 혼합기 등의 기계·장비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단속할 계획이다.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식품 혼합기에 끼여 사망하자 뒤늦게 유사사고 재발 방지에 나선 것이다.
SPC 그룹에 대해서는 이번 주 안에 식품·원료 계열사를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 기획감독에 착수할 예정이다. SPC 계열사의 약 70%가 식품·원료 회사로 SPC삼립, 파리크라상, BR코리아, 샤니, 호남샤니, 에스팜, 설목장, 샌드팜, 호진지리산보천, 오션뷰팜, SPL, SPC팩(Pack) 등이 있다. 고용부는 합동수사전담팀(15명)도 편성했다.
그러나 노동계 안팎에서는 땜질식 단속만으로는 중대재해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고용부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매월 2차례 전국 고위험 사업장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의 날’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장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워서다. 사업주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했으나, 정부의 소극 행정으로 의미가 퇴색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달 19일 기준 고용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사건은 56건, 압수수색 횟수는 23건에 불과하다.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도 21건뿐이다.
법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SPL 제빵공장의 끼임 사고와 같은 ‘후진국형 인재(人災)’는 그치지 않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10분쯤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근로자 A씨가 빵 상자를 옮기는 기계에 손가락이 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샤니는 SPC그룹의 뿌리기업이다. A씨는 컨베이어벨트로 올라가는 빵 제품 중 불량품이 발생하자 이를 빼내려다가 기계에 손가락이 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은 지난 21일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해 안전시스템을 보강하겠다는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는데, 사과 이틀 만에 또다시 사고가 발생해 안전관리 약속이 무색해졌다.
또 안성 저온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는 지난 21일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중 붕괴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졌다. 고용부는 시공사인 SGC이테크건설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하청업체인 삼마건설, 제일테크노스의 현장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SPC 불매운동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경기 고양의 자영업자 이모(43)씨는 “(공장에서 숨진 고인의) 장례식장에 파리바게트 빵을 보냈다는 기사 등을 접한 뒤 ‘이건 정말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불매운동에 동참하게 됐다”며 “직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구체적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등 SPC가 직원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불매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가의 불매운동은 더 거세다.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피 묻은 빵을 만들어온 죽음의 기계, 이제는 함께 멈춥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캠퍼스 곳곳에 붙였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서는 불매운동을 장려하며 SPC 계열사를 정리한 표가 공유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불매운동에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애꿎은 가맹점주”라며 소상공인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SPC 계열사에 대한 불매가 본사는 물론 가맹점주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협의회는 전날 낸 입장문에서 “이런 분노가 생업을 이어가는 일반 가맹점들에게는 큰 고통”이라고 호소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