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71% “先 복귀 後 대화해야”
정부 업무개시명령 압박도 주효
주도권 쥔 정부, 노동개혁 ‘고삐’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원점 재검토
화물연대, 국가적 피해 책임져야”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에 결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백기를 들었다. 안전운임제 확대 시행 등을 요구하며 집단 운송 거부에 돌입했던 화물연대는 9일 조합원 투표를 거쳐 총파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파업 철회에 반대하는 조합원은 전체 조합원의 5% 수준에 불과했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완패로 끝나면서, 당분간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노동 개혁에 고강도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화물연대가 총파업 철회 여부를 두고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율은 13.7%(3575명)에 그쳤다. 16일간 이어진 총파업에 상당수 조합원이 지치면서 현장을 이탈하는 등 파업 참여 열기가 낮아진 탓으로 분석된다. 투표 참여자 중에서도 파업 종료에 찬성한 이들이 61.8%(2211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같은 투표 결과는 총파업에 대한 국민 여론 악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유가·고금리·고물가 등 ‘3고(高)’ 상황에서 운송 거부로 인한 산업계 피해가 가중되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화물연대에 냉담한 시선을 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 6∼8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우선 업무 복귀 후 협상해야 한다’고 응답한 이는 전체의 71%로 조사됐다.
정부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일관되게 강경 대응 방침을 유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윤석열정부는 지난달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에 대해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등 ‘선 복귀 후 대화’ 원칙을 분명히 했다. 화물연대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인 이날 오전에도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내외 여건이 엄중한 상황에서 국가 경제와 민생을 볼모로 하는 운송 거부를 철회하는 데는 어떠한 전제 조건도 용납될 수 없다”며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불사할 정도로 화물연대를 강하게 압박했는데, 화물연대 지도부조차도 이 같은 강경 대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야당 주도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통과되자 퇴각의 명분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향후 정부는 주도권을 쥐고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민주노총과의 정면 승부 끝에 승리했기 때문에 당분간 불법 파업이나 원칙 없는 일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앞으로 5년간 한국 노·정 관계의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운임제에 대한 정부와 화물연대의 입장 차가 큰 만큼 정부와 노조 사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제안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장기간 이어진 파업으로 국가 경제에 피해가 발생한 만큼 파업 전 정부 제안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으며, 화물연대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파업으로 인한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자동차 등 5대 업종의 출하 차질 규모는 3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시멘트 출하량이 줄면서 건설 공사가 곳곳에서 중단되고, 주유소에서는 휘발유·경유 품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은 지난달 22일 정부·여당이 집단 운송 거부로 인한 국가적 피해를 막기 위해 제안한 것인데, 화물연대가 이를 거부하고 지난달 24일 집단 운송 거부에 돌입해 엄청난 국가적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시멘트 분야 운송사 33개와 화물차주 787명에게 업무개시명령서를 발부한 상태다. 업무개시명령서를 받고도 운송을 재개하지 않은 화물차주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조사 과정에서 이날까지 총 24명이 명령에 불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지난 7일 미복귀 화물차주 1명을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이날 1명을 추가로 고발했다. 화물차 기사가 업무개시명령에 1차 불응하면 자격정지 30일, 2차 불응하면 자격 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더해 형사처벌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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