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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전세’ 경매 처분까지 2년… “창살 없는 감옥 살았다”

입력 : 2023-01-12 19:22:38 수정 : 2023-01-12 21: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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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자 파산 터전 잃은 세입자
보증금 돌려받기 위한 강제경매
2022년 12월 6049건… 두달 새 25%↑

“이러다 ‘정말 오갈 데 없이 쫓겨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경매를 결심했습니다.”

2020년 3월 경남 진주시에 1억10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한 허모(28)씨에게 악몽이 시작된 건 입주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갑자기 인터넷이 끊겨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니 집에 압류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허씨는 그날부터 지난해 7월 경매 낙찰을 받기까지 2년2개월을 ‘2년짜리 감옥에 다녀온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허씨는 “직접 경매를 진행할 땐 작성에서 실수할까봐 며칠 전부터 법원에 가 입찰표를 받아 와서 작성을 연습했다”며 “신용불량자가 돼 평생 빚을 갚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빌라 밀집 지역. 뉴스1

저금리 시기 횡행하던 무자본 갭투자가 경기 불황기에 부메랑이 되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대책 없이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만으로 주택 수십·수백채를 사들인 갭투자자들이 파산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12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강제경매 개시결정은 6049건으로 지난해 10월(4822건) 대비 25.4% 증가했다. 전달(5905건)에 비해서도 2.4% 증가한 수치다. 경매는 강제경매와 임의경매로 나뉜다. 강제경매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때 채권자가 채무자의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고, 임의경매는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담보로 제공받은 부동산의 담보권을 실행하는 것이다. 경매의 성격상 강제경매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임의경매는 은행 등 금융 기관이 주로 한다.

지난 4일 방문한 서울남부지법 경매법정에서도 강제경매 매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입찰이 진행된 78건의 부동산 매물 중 10건을 제외한 68건(87%)이 강제경매였다. 이처럼 강제경매의 비중이 높은 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강제경매 절차가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강제경매를 시작하려면 세입자는 우선 법원에 전세보증금 반환소송을 제기해 집행권원(청구 권리와 강제 집행 권한을 명시한 공문서)을 확보해야 한다. 소송 과정에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내다 실패하면 결국 공시송달을 법원에 신청한다. 이 과정만 몇 달이 소요된다. 승소하더라도 경매 절차에서 여러 번의 유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세계약 만료 이후 경매 절차까지 끝나는 데 통상 2년여가 걸린다.

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전세금 반환을 위해 직접 경매를 공부하는 건 무분별한 갭투자가 빚어낸 현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1년 넘는 기간 동안 전세금 반환을 위해 싸워온 박모(37)씨는 “변호사나 법무사에게 경매를 맡기기엔 비용이 너무 부담됐다”며 “(그래서) 민사소송을 도와주는 네이버 카페를 적극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접 준비하다 보니 이게 맞는지 불안감이 항상 들었다”고 부연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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