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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쇠매질 지옥경험… 구순에 빨갱이 누명 벗었다”

입력 : 2023-01-29 17:03:19 수정 : 2023-01-29 21: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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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恨 푼 국가유공자 박종원씨

1963년 자재 빼돌린 직원 나무라자
앙심 품고 반공법 위반으로 신고해
검·경서 모진 고문… 징역 1년형
재심 신청 1년 10개월 만에 ‘무죄’

“평생 빨갱이 누명을 쓰고 살았습니다.”

 

56년 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살이를 한 박종원씨는 구순이 되어서야 누명을 벗었다.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박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6·25전쟁에 참전, 총을 들고 나라를 지켜낸 국가유공자이기도 하다.

재심 끝 56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은 박종원 씨가 그간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

박씨는 2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1965년 12월9일 저녁,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갔다”며 “내 혐의가 반공법 위반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50여년 전 아픈 상처를 끄집어냈다.

 

1930년대 당시 전남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박씨는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1963년 강원 삼척시에 위치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 입사했다. 성실하게 근무했던 그는 일부 직원이 내부 자재를 빼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자재를 빼돌리면 안 된다’며 동료들을 제지했다. 몇 달 뒤 그는 반공법 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내부 자재를 빼돌리던 동료 직원의 지인이 박씨를 반공법 위반으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사건 기록에 따르면 검찰은 박씨가 ‘북한괴뢰집단 및 공산계열 국가를 찬양했다’며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피고인은 대한민국 정부 시책에 불만을 표시하고 북한괴뢰집단 및 공산계열의 국가를 찬양했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박씨는 항소했지만 기각, 1966년 6월3일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그의 나이 33살 때다.

 

이로부터 56년 뒤인 2022년 12월8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은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1년 2월15일 해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지 1년10개월이 다 된 때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박씨가 북한 찬양 발언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취지에서다.

박종원 씨가 반공법 위반으로 수감될 당시 찍은 사진.

◆“경찰은 철근으로 매질, 검사는 구둣발로 짓밟아”

 

반공법 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힌 1965년 12월9일부터 박씨는 지옥과도 같은 일을 겪었다. 그는 “경찰이 혐의를 인정하라며 철근으로 허리와 다리 등 온몸을 때렸다”며 “정신없이 맞다 보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수사기관의 고문은 검찰에서도 이어졌다. 박씨는 “아직도 그 검사 이름을 기억한다”며 “그 검사가 발로 내 옆구리를 차 정신을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가족들 역시 “교도소에서 나온 아버지는 허리를 아파 하셨다”며 “일상생활은 하셨지만 힘든 일은 하지 못해 엄마가 가장 노릇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박씨는 수십년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왔다. 재심 과정에서 가족들은 수사기관의 고문행위를 증명하려 했지만, 박씨를 고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과 검사 모두 사망한 뒤였다.

 

박씨는 “정말 무서웠던 시절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벌벌 떨릴 만큼 무섭다”며 “평생 이유도 모르고 고통받아온 가족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사과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나같이 고통받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2년간 박씨의 재심사건을 맡은 강동필 변호사는 “구순이 된 피고인이 휠체어에 앉아 끊어질 듯 작은 목소리로 평생의 한을 풀어달라며 최후진술을 이어갔다”며 “박씨의 누명을 벗길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춘천·용인=박명원 기자 03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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