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부터 한국 외환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어제 발표한 ‘외환시장 구조개편방안’에서 내년 7월부터 외국금융기관의 외환시장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외환시장 마감도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날 오전 2시로 연장하고 추후 시장 여건을 봐가며 24시간 개장도 추진한다. 정부 수립 이후 70여년간 유지돼 온 외환시장의 빗장이 확 풀리는 것이다. 외환 자유화는 세계화 추세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지만 외풍에 취약한 한국경제·금융을 망가트리는 치명적 악재로 돌변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크다.
한국의 경제규모와 무역액이 각각 세계 10위, 6위로 커진 상황에서 폐쇄적인 외환시장 체제가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시장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국내 외환거래 제한 탓에 역외 차액결제 선물환(NDF)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해 2010년부터는 현물환을 추월했다. 지난해 NDF 거래가 하루 평균 498억달러로 현물환(351억달러)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기재부는 “(이번 조치는)수십 년 된 낡은 2차선의 비포장도로를 4차선의 포장도로로 확장하는 것”이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글로벌 금융허브 도약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회가 크면 그만큼 위험도 커지는 법이다. 첨단금융 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자본의 영향력이 커지고 국제 환투기도 극성을 부릴 게 뻔하다. 국내 외환시장이 ‘외국인의 놀이터’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경제여건도 좋지 않다. 지난달 무역적자는 11개월째 적자를 이어가며 그 규모가 무려 127억달러에 달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연간 적자액이 무려 1500억달러를 웃돈다. 국가위기의 안전판인 외환보유액(1월 말 기준 4300억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달러 가뭄에 시장불안은 증폭되고 국가신인도마저 추락할 게 분명하다. 이런 마당에 섣부른 개방이 다시 경제·금융 위기의 도화선으로 작용하지 말란 법이 없다.
외환시장은 한번 문을 열면 되돌리기 힘들다. 정부는 국내외 경제여건과 자본시장 및 금융산업 상황 등을 꼼꼼히 따져 개방 시기와 그 폭을 신중히 설계해야 한다. 외환보유액 확충과 한·미, 한·일 통화스와프(맞교환) 체결과 같은 안전장치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금융업계도 눈앞에 다가온 개방시대에서 생존을 넘어 약진할 수 있는 실력과 역량을 서둘러 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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