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근로자 사망 계기로 발의
농어업분야 주거·근무환경 실태조사
기숙사건립·숙박시설 지정 등 추진도
지난해 비전문취업(E-9) 비자로 국내에 들어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A(34)씨는 불과 1년 만에 일자리를 두 차례나 옮겼다.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고향의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한파에 칼바람이 몰아치는 컨테이너 숙소에선 밤마다 새우잠을 청하기 일쑤다. 올겨울에만 두 차례 ‘독한’ 감기를 앓은 그는 숙소 옆 공장의 야간작업 소음에 불면증까지 얻었다. A씨는 “예전 이주노동 선배들이 크고 작은 공장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던 것과 달리 요즘은 비닐하우스 등에서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상황이 더 나빠진 것 같다”고 전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가 거주하는 경기도가 열악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 입법활동에 나섰다.
15일 경기도의회에 따르면 도의회는 전날 오후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 인권 및 지원 조례안’을 의결했다. 농어업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인권 조례 제정은 경기도의회가 처음이다.
이번 조례안은 2020년 12월 포천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던 캄보디아 근로자 속헹씨가 강추위에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발의됐다. 도지사가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보장과 안정적 근로·주거환경 조성을 위해 인권 및 지원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했다. 아울러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성폭력·성추행 등 성범죄, 주거·근로환경, 생활·정착 등에 관한 실태조사를 하도록 강제했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관련해선 기숙사 건립과 개선, 지역 숙박시설 지정, 숙소 임대료 지정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경기도에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 같은 도의회의 움직임은 관내 농어촌에 이주노동자들이 몰려드는 최근 실태를 반영했다. 일부 지역에선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는 관내 외국인 노동자는 수백명에 불과하다”며 “농가 숙소 등에서 무리 지어 거주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수천명일 것으로 추산한다”고 전했다.
앞서 경기도는 2021년 6월 한국행정연구원에 의뢰해 ‘외국인 노동자 고용·노동 실태조사’에 착수했지만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 연구는 도내 외국인 노동자와 고용주를 대상으로 노동과 산업, 인권이 조화롭게 고려되는 도 차원의 인력정책을 모색하는 데 목적을 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