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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용후핵연료 문제, 법으로 지역주민들과 약속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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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17 00:24:23 수정 : 2023-03-17 00: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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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경북 경주에서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5대째 살고 있으며, 4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어머니다. 2020년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 추가 건설을 위한 공론화 과정에서 지역사회 갈등 현장을 직접 경험한 바 있다.

 

맥스터 추가 건설을 위한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는 우리 지역 문제를 더 이상 외부 사람들의 손에 맡기지 말고 우리가 해결하고, 반대든 찬성이든 시작이라도 해 보자는 의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기도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다. 위원 선정에서부터 반대단체들의 외압과 본질을 흐리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출범이 늦어졌을 뿐만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재난과 맞물려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보다 회의를 위한 회의만을 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에 발목이 잡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했다.

김경희 월성원전·방폐장 민간환경감시기구 원전소위원장

눈만 뜨면 찬성과 반대가 아우성을 치고 대형 스피커를 실은 반대단체의 차량 시위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하늘과 땅만 빼고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깊어질 대로 깊어진 주민들 간의 갈등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십 년간 동고동락해온 주민들 간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고, 비과학적 루머는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하지만,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던 시민들은 교육과정이 반복될수록 맥스터에 대한 이해와 찬성으로 돌아서기 시작했고, 결국 ‘찬성 81.4%’라는 결과를 냈다. 지역 현안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시민의식, 그리고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교육과 홍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교훈을 남긴 사례가 됐다.

이후 맥스터는 추가 건설됐고, 월성원전은 가동 중단의 위기를 모면했으나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최근 원전의 건식저장시설 설치와 관련해 다시 우리 지역주민들에게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2020년의 악몽과 같은 지역주민 갈등이 재연될까 두렵다. 현재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 3개가 국회 상임위에 발의돼 계류 중이다.

지난 1월 공청회를 거쳤으나 아직 여당과 야당의 협의가 원활하지는 않다고 한다. 지역주민의 입장에서는 건식저장시설을 언제까지 원전 부지 내에 둘 것인지, 지역주민의 의견수렴 범위, 절차, 지역 지원방안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벌써 걱정이다.

과연 지역주민을 위한 길은 무엇인가? 답은 명백하다. 가능한 한 빨리 국가 차원의 고준위 처분장을 건립해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를 옮기면 된다. 그리고 건식저장시설 운영기한과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특별법에 담으면 될 것이다. 지난 맥스터 증설 때와 같은 주민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지역주민들에게 법으로서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책임감 있게 이를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난제를 내 아이들에게 대물림하는 비겁한 어른으로 남을 것인지, 진심 어린 고민과 결정을 해야 한다.


김경희 월성원전·방폐장 민간환경감시기구 원전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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