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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강 흐르는 공주 고마나루 솔숲 바람에 실어오는 봄 내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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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18 20:17:31 수정 : 2023-03-18 2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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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나루 솔숲사이로 봄바람 살랑살랑/공주 옛 지명 ‘웅진’ 유래엔 암곰의 애틋한 설화 담겨/공산성 성곽길 오르니 웅진백제 찬란한 역사 가득/마곡사 솔바람길에선 백범 김구 선생 자취 만나

 

고마나루 솔숲

 

 

울창한 소나무숲을 걷는다. 오랜 세월의 무게에도 쓰러지지 않고 이리저리 휘어지며 운치 있게 자란 고고한 자태. 거북 등처럼 갈라진 피부는 평생 새벽에 나가 늦은 밤까지 일손을 놓지 않던 아버지의 굳은살 박인 손바닥을 닮았다. 오솔길 따라 쌓이고 쌓인 솔잎은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고. 그렇게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숲길 천천히 걸어 비단강물이 흐르는 고마나루에 섰다. 간밤에 비 오더니 강나루 긴 언덕 따라 풀빛이 더 짙어지고 연미산 자락 타고 불어오는 바람도 봄소식처럼 훈훈하다.

 

고마나루 솔숲
고마나루 솔숲

 

◆고마나루 명승길 따라 봄 오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쑥쑥 오르더니 한낮에 20도를 웃돈다. 지난주 전국 곳곳에서 관측 이래 3월 최고기온을 기록했을 정도. 갑자기 겨울에서 봄으로 선명하게 바뀌니 어리둥절하다. 한두 차례 꽃샘추위가 있겠지만 오는 계절 어찌 막으랴. 봄기운 완연한 충남 공주시 백마고을길 고마나루로 봄 맞으러 나선다.

 

고마나루 솔숲

백제의 숨결 살아 숨 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공주의 옛 지명은 고마나루. 한자는 웅진(熊津)으로 쓴다.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21대 개로왕이 전사하자 백제는 500년 역사 한성백제시대를 마감하고 공주로 수도를 옮겼는데 바로 웅진백제(475∼538년)다. 고마는 곰이란 뜻. 왜 공주는 곰을 상징으로 삼았을까. 인간을 사랑한 암곰의 애틋한 설화가 담긴 고마나루 명승길에서 그 해답을 만난다. 고마나루∼한옥마을∼국립공주박물관∼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황새바위천주교성지∼제민천 생태탐방로∼산성시장∼공산성∼공산성 성벽길∼웅진탑공원∼금강철교∼정안천생태공원∼정안천보행교∼연미산 전망대 왕복∼공주보로 이어지는 총연장 23㎞로 6시간30분이 걸린다. 한꺼번에 다 걸을 수 없으니 차로 이동하면서 원하는 곳만 들러보면 된다.

 

곰 조각

 

고마나루 솔숲

 

출발지인 고마나루로 들어서자 울창한 소나무숲이 여행자를 반긴다. ‘만화로 보는 공주 고마나루’ 안내판에 고마나루의 설화가 재미있게 담겨 아이들이 좋아한다. 고마나루 금강 너머 연미산에 살며 늘 자신의 짝을 찾던 커다란 암곰은 지나던 나그네를 동굴로 납치해 함께 살았고 반은 인간, 반은 곰의 모습인 자식 둘을 낳았다. 자식까지 생긴 마당에 나그네가 떠나지 않을 것으로 여긴 암곰은 동굴 문을 열어놓고 외출했고 늘 고향에 돌아갈 꿈을 꾸던 나그네는 이 틈을 타 달아났다. 암곰은 어린 자식을 들어 보이며 돌아오라고 애타게 요청했지만 나그네는 냉정하게 떠났다. 슬픔에 빠진 암곰은 아이들을 강 속에 던지고 자신도 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 강에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암곰과 새끼 곰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단다.

 

웅신단

 

웅신단비

한적한 오솔길 곳곳에 어미곰이 아기곰을 품고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세워져 설화가 사실처럼 다가온다.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에 보이는 건물은 제사를 지내던 곰사당인 웅신단(熊神壇). 백제와 조선시대 이곳에서 국가의 수신제가 열렸고 지금도 매년 봄에 제사가 진행된다. 마당에 설화가 빼곡하게 적힌 웅신단비가 있고 사당 안은 돌곰상이 차지하고 있다. 1972년 백제 유물로 추정되는 돌곰상이 웅진동에서 출토됐는데 화강암으로 만든 원본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이곳의 돌곰상은 복제품. 돌곰상의 정확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신앙적인 의미가 담긴 소품으로 해석한다. 또 사비백제시대 수도인 부여군 구아리 건물터에서 흙으로 만든 곰상이 발견됐는데 크기와 재료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모양이 비슷해 무덤에 넣는 부장품인 ‘진묘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돌곰상

 

고마나루

피톤치드로 샤워하며 솔숲 끝까지 가면 고마나루가 펼쳐진다. 공산성에서 서해 방면으로 멋지게 휘돌아 나가는 강물은 햇살을 받아 봄기운이 가득하니 겨우내 쌓인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강 건너 연미산과 고운 모래사장까지 어우러진 고마나루는 명승 제21호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했지만 공주보가 건설된 뒤 모래사장이 유실되면서 예전만은 못해 다소 안타깝다. 전망대에 쌍안경이 설치돼 있는데 자세히 찾아보면 강 건너에 나그네를 애타게 기다리는 곰 조각상이 서 있다. 고마나루는 과거 이 지역 최대의 나루터로 금강 물길의 요충지인 공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서해 해산물이 군산에서 금강을 거슬러 공주로 이동됐고 백제는 해로와 연결되는 금강을 통해 중국, 일본과 활발한 해상무역을 펼쳤다.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금서루

 

◆웅진백제 역사 가득한 공산성 거닐다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송산리고분군을 거쳐 황새바위성지, 제민천, 산성시장을 지나면 공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백제와 조선시대를 거친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공산성을 만난다. 웅진백제를 대표하는 고대 성곽으로, 비단결 같은 금강이 넉넉하게 감싸 흐르는 고풍스러운 성곽길 따라 걷다 보면 1500년 전 찬란했던 고대왕국 백제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백제시대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금강을 천연 해자로 활용하면서 해발고도 110m 산의 능선과 계곡을 둘러싸는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한 천혜의 요새다. 백제 때 토성으로 쌓았지만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해 동쪽의 735m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금의 석성 형태로 보존돼 있다.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 있었고 1993년 동문 영동루와 서문 금서루를 복원했다.

 

공산성 전경

 

금강을 낀 공주를 한눈에 조망하는 트레킹 코스이자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산책로다. 정문 격인 금서루에서 공산성 여행이 시작된다. 금서루∼쌍수정∼왕궁지∼진남루∼영동루∼광복루∼만하루와 연지∼영은사∼공북루∼공산정을 거치는 완주코스인 1코스는 1시간이 걸린다. 2코스 금서루∼쌍수정∼왕궁지∼영은사∼공북루∼금서루 구간과 3코스 금서루∼공산정∼공북루∼만하루와 연지∼영은사∼금서루 구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공산성

 

공산정 성곽길

 

판관, 관찰사, 목사 등 조선시대 공주를 거쳐 간 관리들의 선정비를 지나 금서루 성곽에 오르는 길에선 매화 향기가 비강으로 파고든다. 단 한 그루 나무가 이토록 강렬한 향기를 사방에 내뿜다니 놀랍다. 금서루 동쪽 가파른 성곽 맨 위에 오르자 금서루를 지나 공산정으로 이어지는 총길이 2.6㎞의 성곽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3월 말이나 4월 초 성곽을 따라 화사한 벚꽃이 흐드러지니 그때가 공산성 여행하기 가장 좋을 것 같다. 쌍수정은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내려와 머물렀던 곳으로 난이 진압되자 바로 앞 두 그루 나무에 통훈대부 벼슬을 내렸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만하루 연지도 독특하고 공북루를 거쳐 공산정으로 오르는 성곽에서 유유히 흐르는 그림 같은 금강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마곡사 해탈문

 

마곡사 ‘일탑쌍금당’ 배치 

 

◆마곡사 솔바람길에서 만난 백범 김구 선생 자취

 

공주에는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진다. 봄에는 마곡사가 가장 아름답고 가을에는 갑사가 으뜸이라는 뜻. 그만큼 사곡면 마곡사로 가는 봄 풍경은 황벚꽃, 산수유, 자목련으로 꾸며져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고풍스러운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봄기운을 싣고 흐르는 마곡천 다리 너머로 마곡사 전경이 펼쳐진다. 오층석탑 뒤로 대광보전이 자리하고 그 뒤 높은 축대 위에 다시 대웅보전을 지었다. 이런 배치를 ‘일탑쌍금당’으로 부르며, 매우 희귀한 사례로 평가된다. 신라 자장율사가 640년(선덕여왕 9년) 창건한 마곡사는 100여개 사찰과 암자를 관할하는 충남불교 대본산으로 한때 승려가 1000명을 넘을 정도로 번성했다.

 

 

 

백범당

 

김구 선생 기념비와 향나무

 

백범당도 만난다. 김구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 중좌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다 탈옥한 뒤 마곡사로 피신, 법명 ‘원종’으로 잠시 출가해 수도했다. 1898년 마곡사를 떠난 김구 선생은 광복 직후인 1946년 마곡사를 다시 찾아 향나무를 심었는데 응진전 옆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마곡사를 품은 태화산 자락에 솔바람길이 조성돼 봄에 많은 이가 찾는다. 가볍게 산책하는 1코스 백범명상길은 3㎞로 50분, 트레킹을 하는 2코스 백범길은 5㎞로 1시간30분, 등산하는 3코스 송림숲길은 11㎞로 3시간30분이 걸린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솔바람길을 걸으며 조용하게 봄을 맞을 수 있다. 고요한 백범길을 따라 걷는다. 울창한 천연송림욕장을 뚫고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 지저귀는 새소리, 나뭇가지로 연주하는 바람소리 따라 싱그러운 봄세상이 펼쳐지니 마음이 평화롭다. 


공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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