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광역의회 평균 2억5200만원
1인당 매달 200만~300만원 쓸 수 있어
선거철 식사 제공 등 부정사용 속출
단체장도 휴일에 쓸 수 없지만 사용
공적인 일에 쓰라고 세금으로 내준 돈
단체장·지방의원 ‘입맛대로 사용’ 많아
해외서 명품 넥타이 구입 후 거짓 신고
들통나자 ‘자진 환수’ 택해 반납하기도
분기별 1회 집행내역 공개하고 있지만
모니터링·감시 제대로 안 돼 ‘사각지대’
집행 규정 모호하고 처벌도 ‘솜방망이’
“직업윤리 의식 제고·규정 현실화 필요”
이재경 대전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은 최근 업무추진비 114만원을 반납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와 스위스 등을 찾은 해외 출장에서 명품 넥타이와 식초 구입에 사용한 비용이었다. 애초 의회 직원들을 위한 선물용 구입이었다는 ‘거짓 신고’가 들통나자 자진 환수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대전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위원장이 공직선거법을 위반(기부행위)했다고 판단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에 송치된 단체장도 있다. 김성 전남 장흥군수는 업무추진비로 전·현직 군의원에게 식사대접을 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최근 검찰에 송치됐다. 김 군수는 지난해 9월 장흥군 의정회 회원 15명에게 28만5000원 상당의 점심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에 넘겨진 지방의원도 있다. 경북 영주시의회의 한 의원은 2021년 유권자 60여명에게 식사와 떡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의회의 또 다른 의원도 업무추진비로 공무원 등 50여명에게 피자·치킨 등 37만원 상당의 음식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는 공적인 일을 하라고 세금으로 지원하는 업무추진비 오·남용 실태가 드러난 사례들이다. 이외에도 많은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쌈짓돈처럼 사용했다. 업무추진비를 자택 근처에서 사용하거나 직원 생일 선물·명절 선물세트 구매에 활용한 경우도 많았다.
김홍태 대전 대덕구의회 의장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간헐적으로 직원 격려와 현안사항 논의 등의 명목으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문제는 간담회 가운데 23차례는 신탄진에 있는 그의 자택 근처 식당에서 열었다는 점이다. 자택 근처 식당에서 사용된 업무추진비만 349만원이었다. 자택 근처 업무추진비 사용은 대전에서도 수차례 적발됐다. 대전 기초의회의 한 의원은 자신의 집 인근 치킨가게에서 업무추진비를 곧잘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기초의회 의원은 레슬링선수단 격려와 조례안 관련 논의 등을 모두 자택 근처에서 했다.
대전의 한 기초의회는 지난해 ‘근무자 격려 및 불우소외계층 지원’ 목적으로 199만8000원을 4번에 나눠 결제했다. 훈령에 따르면 50만원 이상 사용하면 사용 대상의 소속이나 주소·성명 등 증빙서류를 내야 하는데, 이 규정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공개청구를 통해 발견했다. 대구 기초의회에선 업무추진비로 적십자회비를 납부하는 관행이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규칙에 부합한다지만, 주민의 세금으로 생색을 낸다는 지적이 붙는다.
지방의회뿐 아니라 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 부적정 사용도 다수 포착됐다.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는 직원 생일선물과 상품권 등을 업무추진비로 구입했다. 다른 기초단체는 2020년 명절 선물로 8600여만원어치의 상품권과 선물세트를 구입했다. 민선 7기 전 용산구청장은 업무추진비를 휴일에 사용할 수 없는데도 모두 19차례 휴일에 썼다. 전 강북구청장과 전 서대문구청장도 각각 13차례, 12차례 확인됐다. 경기지역 기초단체는 지난해 업무추진비로 명절이나 선물 등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지급했다가 감사에 걸렸다.
2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광역의회 업무추진비는 평균 2억5200만원, 기초의회는 평균 7400만원이다. 1인당 매달 평균 200만∼300만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 목적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거나 사적으로 유용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훈령 기준 모호… 감시 사각지대
지방의원들이 업무추진비를 내 돈처럼 사용하는 배경에는 업무추진비가 사실상 감사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 꼽힌다. 업무추진비의 투명성과 신뢰성 장치가 있기는 하다. 정부는 최소 분기에 1회씩 집행 내역 등을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가 끝이다. 집행 내역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감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형식만 갖추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행정안전부 업무추진비 훈령에 따르면 집행 목적과 일시, 장소, 대상 등을 적은 증빙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집행내역을 한 달에 1회, 최소 분기에 1회 올려놓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부서마다 공개 형식이 다른 데다 사용내역 공개 여부도 임의로 하게 돼 있어 업무추진비가 취지에 맞게 사용됐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지방의회 업무추진비를 감사하는 지자체도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과 광주, 대전, 세종 등 8개 시·도에 불과하다. 주먹구구 방식으로 공개되는 시스템도 도마 위에 오른다.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은 의회 사무처 직원들이 의원들에게 영수증을 받아 손글씨로 작성한다. 영수증 등 증빙 서류 첨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 업무추진비 집행 목적이 대부분 ‘의정관련 간담회’ 등으로만 공개되고, 구체적인 목적이나 대상을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8년엔 관악구의회 의장단이 업무추진비로 1400만원 상당의 지역 특산품, 700만원 상당의 등산복을 구입해 동료 의원 및 사무국 직원에게 선물로 제공했던 사례가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지방의회 업무추진비 집행 규정의 모호성도 집행 투명성 강화를 발목 잡는 요인이다. 업무추진비 사용 목적 등을 규정한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회계관리에 관한 훈령’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를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 사용자의 자택 근처 등에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자택 근처로 봐야 하냐는 논란이 지속 일고 있다.
업무추진비 부적정 사용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2019년 감사원이 공개한 대통령비서실 등 11개 기관에 대한 업무추진비 감사 결과, 점검대상 1만9679건 중 10%에 이르는 1764건이 부적정 집행으로 집계됐지만, 대부분 주의요구로 마무리됐다.
◆직업윤리의식 제고·처벌 강화해야
지방의회 업무추진비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 제기되는 것은 공개 방식의 느슨함에서 기인한다. 집행 내역에 대한 오류가 발견되면 실수라고 다시 고치는 상황이 빈번하면서 업무추진비에 대한 집행기준과 관리방안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강성국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2005년 스웨덴의 유력한 총리후보는 업무추진비로 백화점에서 초콜릿과 기저귀를 샀다가 사퇴한 적이 있다”며 “국내에서도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공개하게 돼 있는데, 요즘은 카드로 사용하기 때문에 영수증 증빙이 훨씬 더 쉽고 정확하다”며 “카드사용 전자전표를 통째로 공개하면 사용할 때마다 다 보이게 되니, 경각심이 올라갈 수 있고 행정적으로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업무추진비를 쓰는 지방의회 의원들의 직업적 윤리 의식을 높이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집행 기준을 보다 구체화하는 현실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업무추진비 규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며 “시행령이나 행정규칙상으로 구체화할 부분이 있다면 현실화하는 게 맞고, 이것이 어렵다면 규칙에 따라서 쓰겠다는 다짐의 ‘선서’를 하는 등 보다 직업적 윤리를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무추진비 무용론도 제기된다. 지방의회에서는 의원경비 과목을 총액으로 묶어 배분하는데 여기에 업무추진비를 비롯, 의정운영공통경비, 지방의원국외여비, 의원역량개발비 등이 포함된다. 대전지역시민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과거엔 의원들이 무보수로 활동하면서 업무추진비가 필요했을지 몰라도 현재는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을 받고, 의정운영공통경비 등으로도 충분히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근본적으로 업무추진비 예산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팀장 “공개된 집행내역, 자료 부실 많아 답답”
“업무추진비는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사용하려면 당연히 합법적이어야 하지요.”
설재균(32)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2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은 물론, 대전을 포함한 지역의 지방의원이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시민들의 직접 감시가 가능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설 팀장은 직원들과 함께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전 광역·기초 의회 업무추진비를 분석했다. 그는 “대전의 경우 그동안 업무추진비와 관련해 시민단체가 이를 면밀히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며 “꼬박 9개월 동안 살펴봤더니, 문제점이 부지기수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공개 내역 자료의 부실이었다. 행정안전부 훈령에는 업무추진비를 집행할 때 집행 목적과 일시, 장소, 대상 등을 증빙 서류에 기재해야 하는데, 대전시의 경우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을 봤을 때 이를 지킨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설 팀장은 “가령 식사를 했다면 누구랑 했는지를 기입해야 하는데 그게 안 나왔다”며 “집행 목적엔 현안 사안 논의라고 돼 있는데, 유관 기관으로만 명시된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원들이 동네 주민이나 유권자들과 자리를 같이했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훈령 기준이 모호해 대전참여연대가 임의로 분석해 위반 의혹 여부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역풍도 있었다. 설 팀장은 “지방의회가 훈령에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위반 소지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는데 의회가 그런 대응 뒤에 숨는다면 곤란하다”며 “그러면 의회는 필요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지방의회가 조례 제정·개정·폐지 권한을 지녔는데, 훈령 기준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업무 태만이라는 지적이다.
규정대로만 하면 의정 활동이 제한된다는 일각의 지적도 잘못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규정에 맞추다 보면 의정 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주장에 그 반대의 질문을 해보자”며 “그렇다면 제한이 없었을 때는 얼마나 의정 활동을 잘했는지 따져보자”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의정 활동 투명성과 신뢰성 회복을 위해선 보다 구체적인 범위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참여연대는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사용 대상 ‘유관 기관’에 대한 해석을 요청했다.
그는 “들키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인데, 사실 이게 가장 무서운 것”이라며 “시민을 위한 봉사자라는 무게감이 크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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