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은 체포 직후에도 “말다툼하다 우발적으로 범행”, “다른 사람이 시켰다”는 등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 초기 수사에 혼선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긴급체포 직후에는 “배가 아프다”고 호소해 응급실에 갔지만 ‘꾀병’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정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한 건 긴급체포된 이후 닷새 만이었다.
그는 범행 하루 만인 지난달 27일 새벽 긴급체포됐고, 계속 허위 진술을 해가며 범행을 부인하다 같은 달 31일 “살인해보고 싶어서 그랬다”라고 자백했다.
특히 긴급체포 당시에는 배가 아프다고 호소해 병원 응급실로 향했으나 결국 꾀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범행 동기를 묻는 수사당국에 “이미 모르는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고, 나에게 시신을 유기하라고 시켰다”라고 둘러댔다.
또한 “피해자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진술해 이 말이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이 마저도 계획 범행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 등으로 파악한 동선에는 정유정 외에 이번 범행과 관련된 제3의 인물은 없었다.
경찰은 정씨가 범행을 자백한 경위에 관해 “거짓말로 버티다가 경찰이 제시한 관련 증거와 가족의 설득 등으로 인해 심경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2일 오전 살인 및 사체 유기 등 혐의로 정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정씨는 지난달 24일 과외 중개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을 ‘중학생 학부모’인 것처럼 속여 피해자 A씨(20대)에게 접근했다.
그리고는 이틀 후인 같은 달 26일 오후 5시40분쯤 ‘영어 과외 시범수업’을 받겠다며 부산 금정구 소재 A씨의 집을 찾아가 흉기로 그를 살해했다. 이때 정씨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교복을 입고 중학생 행세까지 했다.
범행 직후 정씨는 마트에서 흉기와 락스, 비닐봉지 등을 구입한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대형 여행용 가방(캐리어)을 챙긴 뒤 A씨 거주지로 돌아가 시신을 훼손했다. 시신 일부는 가방에 보관했다.
다음날인 27일 오전 0시50분쯤 정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시신 일부가 담긴 여행용 가방을 택시에 싣고 평소 산책하러 자주 가던 경남 양산의 낙동강 변 풀숲에 버렸다.
당시 정씨를 태운 택시기사가 새벽에 여성 혼자 혈흔 묻은 가방을 끌고 풀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고 범행이 발각됐다.
경찰이 정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한 결과, 그는 범행 세 달 전부터 인터넷에 ‘살인’, ‘시체없는 살인’ 등과 같은 단어를 집중적으로 검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가 도서관에서 다수의 범죄 관련 소설을 빌렸는가 하면, 평소 범죄 수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잔혹범죄를 학습해온 정황도 포착됐다.
정씨는 범행 자백 이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라며 후회하는 모습도 보였다.
범죄 전문가들은 정씨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가 오랜 시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왔다는 점도 드러났다.
정씨는 고교 졸업 후 별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 없이 5년간 취업 준비에만 매달렸고, 그의 휴대전화에선 친구·지인의 연락처나 다른 사람과 연락을 주고 받은 내역이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 대상이었던 또래 피해 여성이 ‘명문대 출신 인기 과외강사’인 점에 비춰 그의 ‘영어 콤플렉스’가 범행 동기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는 경찰에 자신의 영어 실력이 딱 중3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정씨가) 피해자의 신분 탈취를 위해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3일 YTN 인터뷰에선 “정유정의 핸디캡이 5년간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을 못하다 보니 아마 영어를 못해서 내가 사회생활을 못한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면서 “결국 과외 앱에서 피해자가 아주 유능한 영어 선생님, 그러니까 일류대를 나온 영어 선생님을 목표로 삼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살인 후 정씨의 ‘발랄한 발걸음’도 화제가 됐다. 앞서 KBS가 지난 2일 부산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지난달 26일 피해자 A씨(20대)의 집에서 A씨를 살해한 정씨가 자신의 집에서 시신을 담을 여행용 가방(캐리어)을 가져오는 장면이 담겼다.
그런데 해당 영상 속 정씨는 가벼워 보이는 캐리어를 한 손으로 끌며 아무렇지 않다는 등 태연하게 인도를 성큼성큼 걷는다. 그 어떤 불안감이나 심적 동요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기분이 좋아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중학생 교복을 입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갔던 정씨는 범행 후 피해자의 옷으로 갈아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씨에 대해 “범행 수준이 아주 정교하지 않고 얼치기 수준”이라며 “살인 이후 여러 증거를 흘리는 점 등을 비춰봤을 때 자신의 환상을 한 번 실행해 본 정도”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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