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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억’ 대전 스카이로드, 운영비만 年 11억… 50억 들인 체험존은 하루 18명 찾아 [심층기획-지자체 ‘혈세 먹는 흉물’ 논란]

, 세계뉴스룸

입력 : 2023-07-03 06:00:00 수정 : 2023-07-04 14: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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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먹는 흉물’ 된 지자체 공공시설물

2021년 23조 들여 전국 526개
사업성보다 ‘치적 쌓기’식 건립
운영비 등 적자만 7695억 ‘허덕’

울주군, 50가구 마을에 영화기념관
100억 들인 ‘불고기팜’ 볼거리 없어
홍천 초가 숙박시설은 2년 반 ‘휴관’

‘기네스북’ 노리고 가마솥 만든 괴산
제작에 5억 썼지만 애물단지로 전락

전국 공공조형물 1만5000여점 달해
평균 제작비 2억 육박… 잇따라 철거

전문가들이 본 ‘세금 낭비’ 원인은

단체장들, 과시 욕구에 관광산업 사활
중앙부처 협력해 타당성 심의 거쳐야

‘내가 낸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앞다퉈 조성한 공공시설과 조형물, 관광성 공간도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세금 낭비엔 비판과 지적이 이어지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인기몰이 성향’의 시설 조성을 비판했던 이들마저 자신이 단체장이나 기관장이 되면 전임자의 잘못을 따라할 정도다. 비판은 한시적이고, 단체장이 바뀌면 반복적으로 어처구니없는 시설이 또 조성된다. 혈세를 이용해 만들어 놓고 활용성이 떨어지다 보니 뜯지도 못하고 다시 돈을 들여 개선하는 황당한 상황마저 발생한다.

사진=대전시 제공

2일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 통합 공개사이트 ‘지방재정365’엔 이 같은 혈세 오남용의 사례가 여실히 드러난다. 세계일보가 지방재정 365의 ‘공공시설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21년 기준 전국 526개의 공공시설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23조5226억원에 달했다. 시설당 평균 447억원이 투입됐다.

문제는 이들 시설 대부분이 해마다 큰 적자를 기록하거나 지역 주민에게조차 외면받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 지자체 공공시설 적자규모는 7695억원. 시설 한 곳당 14억6300만원씩 적자를 냈다. 이러한 적자규모는 2014년 4849억원(599곳), 2016년 6874억원(684곳), 2018년 8410억원(793곳), 2020년 1조1618억원(893개)으로 증가했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공공시설 운영비용을 감당하느라 허덕일 수밖에 없다. 건립비는 국비 등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시설운영비는 고스란히 지자체 몫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투입해 만드는 공공조형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20년 기준 국내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의 수는 1만5000여점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작품 1점당 평균 제작비는 1억7900만원. 현재까지 설치된 작품의 비용을 모두 더하면 1조1254억원가량의 세금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동엽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사무국장은 “허점투성이 공공시설물 및 조형물 건립과 사후관리 문제는 감사원의 단골 적발 메뉴”라며 “건립 후 관리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시민이 얼마나 올지 면밀한 사업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했다가 벌어지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말 찾은 울산 울주군 삼동면 ‘보삼영화마을기념관(280여㎡)’. 50여가구가 사는 보삼마을 입구에 세워졌다. 기념관 입구엔 ‘영화의 고향’이라는 비석에 영화 ‘씨받이’ 포스터가 각인돼 있었다.

 

1층에는 360여장의 DVD와 이를 볼 수 있는 영화관 등이 있었다. 뽀로로부터 한국 대표 성인영화까지 갖췄다. 2층은 부루마블, 루미큐브 등 30여 가지 보드게임과 만화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기념관은 2014년 울주군이 8억70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보삼마을에서 영화 씨받이와 변강쇠, 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성인영화 7편이 촬영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람객의 발길이 줄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볼거리가 부족한 때문이다. 하루에 10명이 채 찾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울주군은 2020년 말 4000여만원을 더 들여 문화와 놀이공간을 추가했다. ‘뽀로로’와 ‘뽕’이 공존하는 기묘한 공공시설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산 중턱 초가체험촌, 쩍 갈라둔 소 조형물

 

이런 황당한 시설은 곳곳에 산재한다. 몸통이 절반으로 뚝 갈린 소 모형과 정육 모형, 어린이 물놀이시설이 함께 있는 울주군 상북면 ‘불고기팜 농어촌테마공원’이다. 공원은 2018년 울주군 상북면 못안저수지 옆 1만7300㎡ 부지에 만들어졌다. 잔디밭 등 공원과 산책로, 주차장(50면), 1층짜리 한우테마관(면적 399㎡)을 짓는 데 100억여원이 쓰였다. 전시관 안에는 한우 품종 등에 대한 소개글과 한우 부위에 대한 소개글 등이 있다. 볼거리가 없다 보니 2019년 2만8000여명이던 방문객은 2021년 7100여명이 됐다. 세금 낭비 지적이 이어졌다. 울주군은 14억원을 더 들여 물놀이장을 만들었다. 공원 관리인은 “테마관 전시실을 둘러보는 사람은 적지만, 물놀이장이 개장하면 주말에 350명 정도 찾는다”고 말했다.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별다른 시설이 없는 산 중턱에 지었다가 2년6개월 동안 운영도 못 해본 시설도 있다. 강원 홍천군 두촌면 바회마을에 있는 ‘초가체험촌’ 이야기다. 홍천군이 2018년 9월 19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건물 외부를 초가집처럼 꾸민 숙박동 5개와 체험동 1개, 관리동 1개로 돼 있다. 외부는 초가이지만, 내부는 일반적인 숙박시설이다. 조성 후 체험촌은 1년 넘게 ‘개점’조차 못했다. 홍천군이 이 시설을 민간업체에 위탁했는데, 업체 내부 사정으로 체험촌 운영을 하지 못해서다. 2019년 말엔 코로나19 유행으로 문을 닫았다. 마을 주민들이 맡기로 하면서 2021년에야 겨우 운영이 시작됐다. 운영기간은 1년에 7개월로 짧다. 기온이 떨어지는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휴관한다. 올해는 수도관이 동파돼 5월 말부터 겨우 운영을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체험촌을 찾은 방문객은 적다. 2021년엔 250명, 지난해엔 299명이다.

◆‘계륵’ 같은 조형물…철거 위기 상존

 

이용이 없거나 흉물처럼 방치됐지만, 뜯어내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조형물도 있다. 충북 괴산군의 43.5t짜리 ‘가마솥’이다. 둘레 17.85m, 지름 5.68m, 높이 2.2m, 두께 5㎝ 크기다. 2005년 제작됐다. 군민 성금 2억3000만원과 군비 2억7000만원 등 5억원이 쓰였다. 이 가마솥은 ‘기네스북’ 등재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호주 질그릇에 밀렸다. 밥 짓기나 팥죽 끓이기, 옥수수·감자 삶기 등의 행사에 쓰려 했지만, 솥 바닥이 두꺼워 조리가 잘 되지 않았다. 2007년부턴 이런 행사마저 중단되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줄었다. 15년 넘게 기름칠 등 관리유지만 하며 흉물처럼 방치됐다.

대전 ‘스카이로드’도 대표적인 ‘애물단지’ 중 하나다. 스카이로드는 2013년 165억원의 비용으로 대전시 중구 은행동 으능정이거리에 조성됐다. 길이 214m, 너비 13.3m, 높이 20m 크기의 초대형 LED 영상 아케이드 구조물이다. 그러나 개장 이후 지속적으로 ‘도심 속 흉물’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밤에는 영상쇼를 송출하지만, 낮엔 거대 철골 구조물 그늘막 역할에 불과해서다. 빈약한 영상 콘텐츠, 빛·소음 공해 문제도 제기됐다. 막대한 건립예산 외에도 매년 세금은 쏟아부어진다. 연간 운영비는 10억7000만원. 유지·보수비로도 매년 8000만원씩 쓰인다.

뜯어낼 위기에 처한 시설도 있다. 경남 통영시가 미래형 관광시설이라며 야심차게 선보인 ‘삼도수군통제영 실감콘텐츠 체험존’. 일명 ‘통영VR존’이다. 2020년 문을 연 이 체험존 조성에 든 세금은 50억원. 옛 통영시향토역사관(지상 3층 규모)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그러나 하루 평균 이용객은 17.8명(평일 15명, 주말 25명)에 불과하다. 운영비와 시설유지비는 매년 늘고 있다. 2021년엔 1억3800여만원, 지난해 1억3900만원의 적자를 냈다.

 

3억원을 들여 설치한 경북 포항시의 공공조형물 ‘은빛풍어’는 고철값 1426만원에 매각, 철거됐다.

(왼쪽부터)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연합 사무처장.

◆“책임지는 이 없고 견제장치 작동 안돼”

 

공공시설과 조형물 등을 가리지 않고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 자성의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단체장들의 과시적 욕구와 무리한 관광 콘텐츠 개발, 책임지는 이가 없는 구조가 빚어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과)와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 등 3명의 전문가에게 원인과 대안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이런 문제가 생기나.

 

김지훈 “단체장들은 재임기간 무엇이든 남기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지방자치단체, 특히 기초지자체는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하다. 단체장의 의사에 따라 면밀한 검토 없이 사업이 진행되곤 한다. 심의위원회가 있지만, 단체장 입김에 따라 의사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 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우철 “수도권에서 멀수록, 광역시에서 소외된 지역일수록 고용 창출 수단이 없다. 일자리가 없으면 청년층이 떠나고, 결국 지역이 소멸된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는 관광산업에 사활을 건다. 필사적인 관광산업 의존, 무리하고 인위적인 관광 콘텐츠 개발에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본다.”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광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시설을 하나 짓고 단체장이 떠나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절차적, 법률적 문제가 없다면 그 일을 수행한 공무원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 미디어 등의 비판과 지적이 있어도 그때뿐이다. 주민들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체장이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김지훈 “지방자치 30년의 딜레마다. 견제할 제도는 만들어지는데,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은 위원회 심의를 받게 하지만, 형식적이다. 의회도 단체장과 같은 정당이 다수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견제가 되지 않는다. 단체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도 이뤄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세금낭비를 줄일 수 있나.

 

김우철 “중앙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타당성 심의를 하는 것이 맞는다. 얼마나 수요가 있을 것인지 설문조사라도 한 뒤에 추진하라는 것이다. 이왕 공공 자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라면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등 중앙 부처가 협력해 분야별로 위원회 같은 별도 기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자체마다 이런 위원회를 꾸리긴 어려워서다. 제대로 된 전문가를 불러 모으기도 힘들다. 이런 기구를 통해 컨설팅 내지 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문성과 투명성 등이 담보될 거다.”

 

조광현 “결국 시민이 중요하다.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추상적일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시민 10명 정도만 해당 지자체에 의견을 표현해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울산·홍천=이보람·배상철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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