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적 홍보 경쟁으로 길 주변 난립
안전확보 위해 선거구별 4개 제한
행안부 대법 제소… 법령 논란 여전
“답답했던 시야가 뻥 뚫린 것 같아요. 정말로 속 시원하네요.”
인천시가 자체 조례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당현수막 첫 철거에 나선 12일 연수구 동춘동 일원. 시와 연수구 직원들이 사면에 매달린 끈을 잘라 내자 시민들은 저마다 ‘미관을 해치던 흉물이 사라졌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현수막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치적은 홍보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는 대표적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공해 논란’을 야기했다. 신호등, 전봇대, 폐쇄회로(CC)TV, 가로수 등 세워진 구조물만 있으면 앞다퉈 내걸어 시민 불편을 초래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정당현수막은 허가나 신고 없이, 장소·시간·형태의 제약 없이 설치가 가능하다. 그러면서 안전사고, 도시 환경 저해 등 시민의 불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난립 과제를 풀려고 지역 정치권에 협조를 구하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지자체 조례를 고쳐 강제로 제한하는 것은 인천이 처음이다.
앞서 시는 정당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걸고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까지만 설치토록 한 조례를 개정해 지난달 8일 전국 최초로 시행에 들어갔다. 이후 계도·홍보 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일제 정비에 돌입했다. 공무원들이 칼날이 달린 긴 막대기를 움직일 때마다 바람에 어지럽게 휘날리던 천 조각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졌다.
일정에 동참한 이재호 인천 군수·구청장협의회장(연수구청장)은 “현행 법령은 서민들의 일반 현수막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는 지자체의 소신 행정이자 특혜 조항을 철회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시는 앞으로 주요 사거리와 어린이 보호구역 등 교통 흐름과 시민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장소에 대해 중점적으로 바로잡을 방침이다. 그간 현수막 전담 팀 회의에서 여러 차례 개선안을 논의하고 이어 군수·구청장 협의회가 공동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주요 정당에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면서 적극적으로 실천해 달라고 촉구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평등권·행복추구권 같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해치는 정당현수막에 대한 규제는 정상적인 자치 활동”이라며 “각 정당, 민간단체 등에 자발적인 동참을 요청하는 한편 정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정당 관계자들이 “왜 우리 지역에서 철거를 진행하냐”면서 고성을 질러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담당자를 고소·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는 해당 조례가 최대 허용 개수 등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이 위임하지 않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어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제소한 상황이다. 이에 법령을 완전히 손질하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시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 전까지는 현재 공포된 시 조례가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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