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권 향상 논의·대책에 유치원 교사는 소외된 모양새
“학부모가 유치원 교사를 교사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 많아”
전문가들 “유아교육법에 생활지도법 포함돼야” 한목소리
“학부모가 유치원을 찾아와 약 3만원 상당의 동전을 던졌어요.”
서울 한 국공립유치원에서 학부모가 100원짜리 동전이 300여개 든 봉투를 상담실에 던졌다. 왜 그랬을까.
앞서 유치원은 한 원생이 15일 이상 연락없이 결석하자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학부모는 아이의 퇴원을 희망했다. 유치원은 학부모에게 등원한 날짜를 계산한 학부모 부담금이 발생함을 알렸다. 몇 달이 지나도 학부모가 입금하지 않자 유치원은 학부모 주소로 독촉장을 보냈다. 그러자 학부모는 “가만두지 않겠다”, “내일 찾아가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치원을 찾아온 학부모는 원장을 상담실로 불러냈다. 그러고선, 미납금인 2만7700원 상당의 100원짜리를 던진 것이다. 학부모는 “x발x아!”, “xx아”라고 폭언도 함께 퍼붓고 자리를 떴다. 이를 지켜보던 유치원 교사들은 충격을 받았고, 상담실에 떨어진 동전을 쪼그리고 앉아 주웠다고 한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으로 각급 교육기관 선생님들이 그동안 느낀 어려움과 응어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7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한 결과 ‘학부모 갑질’에 시달리는 건 초중고 교사들만이 아니라 유치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에 만연한 악성 민원과 부당행위가 묵인되는 탓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이 그대로 초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폭언과 갑질, 아동학대 신고에 숨죽인 유치원 선생님들
경북 포항시 국공립유치원 A교사는 학부모 폭언과 갑질에 고통받았다. A교사는 물감을 사용하는 교육을 했고 원아 옷에 물감이 묻었다. 학부모는 물감이 묻어 옷을 버렸다는 이유로 분노해 유치원을 찾아왔다. 학부모는 “옷이 얼마인지 아냐”, “당장 물어내라” 등의 폭언을 하며 유치원 현관에 옷을 던졌다.
아이들 다툼을 말렸다가 학부모에게 폭언을 듣는 것도 일상이다. A교사는 교육활동 중 아이들 싸움을 제지했다. 그러자 일과 후 학부모는 A교사에게 전화를 했고 “경력이 몇 년이냐”, “애가 성격이 잘못되는 것은 다 교사 잘못이다”, “유치원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교사 자질이 없어서다” 등의 폭언을 내뱉었다.
입학 상담 중에도 학부모 갑질은 계속됐다. A교사는 정원 초과로 입학이 불가함을 학부모에게 알렸다. 그러자 학부모는 “내가 누구와 친한지 아냐”, “당장 그만두게 해줄까”라면서 협박성 발언을 했다. A교사는 “현재 초등학교의 교권추락은 유치원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며 “갈수록 늘어가는 학부모의 폭언과 갑질에 유치원 교사는 가만히 숨죽이고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잘못해도 지도받지 못하고 초등학교로 올라간다”면서 “교육청과 학교, 이해관계자는 모두 원아 모집에 피해가 갈까 봐 교사에게 참으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하남시 국공립유치원 B교사는 “동료 교사처럼 아동학대로 신고 될까 봐 두려워 학부모에게 사과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B교사는 “동료 교사가 아이의 학부모에게 조언했다가 아동학대로 고발당했다”면서 “‘무릎 꿇고 사과해라’, ‘교사 옷 벗겨버리겠다’ 등의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동료 교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B교사는 “현재 아동학대 중 정서적 학대 등의 모호성으로 쉽게 학부모가 교사를 고발할 수 있는 체제다”면서 “교사가 고발당할 때 교육청 전담반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민원을 따로 처리하는 부서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천시 국공립유치원 C교사는 아역 배우를 둔 학부모의 협박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C교사는 “아이들끼리 놀다가 얼굴을 맞았는데, 외상이 없어서 해당 사실을 미처 부모에게 말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며 “이후 해당 부모가 아이 인스타그램과 맘카페에 허위사실을 섞어서 글을 올리고, ‘내가 너 가만히 두지 않겠다’ ‘내가 방송국 드나드는 사람인데 그런 건 안 무서우냐’ ‘애가 없어서 그러는 거냐’ ‘교육청에 찔러도 문 안 닫겠지만 경찰에 신고하고 언론에 제보하겠다’ 등의 협박을 했다”고 말했다.
C교사는 “(학부모가)또 아이의 심리치료 비용을 달라며 협박했는데 교육청 변호사에게 자문한 결과 ‘지속 사과했고 더는 응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받았다”며 “이후에도 ‘선생님 끝까지 괴롭히겠다’ ‘아동학대 처벌을 받지 않겠지만 신고할 것’이라고 말하며 아동학대 방임으로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C교사는 조사 후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4개월여 조사 과정 동안 큰 고통을 받았다. 그는 현재 심리치료 5개월, 약물치료 7개월 차며 체중은 7㎏이나 감소했다. 게다가 현장에 있는 게 무서운 나머지 파견 신청으로 현장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다.
지난해 5월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은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 1084명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의심 관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응답자 중 18.6%인 202명이 아동학대 의심으로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이 중 피해사례로는 아동학대를 의심하며 폭언과 욕설, 뺨을 때리고 무릎을 꿇리는 등의 폭행, 온라인 매체를 통한 명예훼손, 부모 직업을 이용한 협박, 강제 해고 등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를 본 18.6% 교사 중 상급 기관 지원을 받은 경우는 9명으로 전체 0.8%에 불과했다.
◆“유치원 교사도 교사…유아교육법에 생활지도법 포함돼야”
당정에서 쏟아내는 논의·대책이 초중고 교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유치원 선생님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26일 중대한 교권 침해 행위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안, 교사의 생활 지도에 아동학대 면책권을 부여하는 초·중등교육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등 교권 회복을 위한 법 통과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진보 교육감들 주도로 7개 시·도교육청에서 도입된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지혜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유치원은 사립유치원, 국공립유치원 등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돼 있으며 같은 연령의 유아를 보육하는 사회복지시설인 어린이집도 있다”며 “모두를 포괄해서 개정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국회에서는 계속 유아교육법 개정에 대해서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국회에서 개정을 추진 중인 교육지위법이 유아교육법보다 상위법이기 때문에 교원에 포함되는 유치원 교사도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유아교육법에 생활지도법이 포함돼야 유치원 교사가 생활지도법을 근거로 정당한 교육활동을 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유치원 교사들의 교권 또한 초중고 교사와 마찬가지로 법률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손혜숙 한국전문대유아교육과교수협의회장은 “유아교육법상에 생활지도법이 포함되어 유치원 교사도 교권을 보호받아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생활지도법이 악용돼 유아교육 과정에서 아동학대 등의 과잉된 지도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의 생활 지도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면서 아이들의 인권과 권리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균형 잡힌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미래교육연구팀 연구위원은 “학부모가 유치원 교사를 교사로 인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교권침해 사건이 많다”면서 “가령 유아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기존 수업방식을 비판하면서 한글과 숫자 위주의 교육을 바라는 등 유치원 교사를 가르치는 사례가 그렇다”고 꼬집었다. 그는 “유아교육법에 생활지도법이 포함돼 유치원 교사의 교권이 보호되었으면 한다”며 “어쩌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교권이라고 칭하며 교사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아울러 “(교육지위법이 개정되면) 유치원 교사도 교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겠지만, 유아교육법이 개정되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유치원 교사의 교권 회복이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