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공법 前 정부서 이뤄져
법 위반 적발 땐 엄정 처리를”
국토부, 불법하도급 집중 단속
윤석열 대통령이 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철근 누락’이 무더기로 확인된 정부 조사 결과의 원인으로 지난 정부 시절 이뤄진 ‘건설 이권 카르텔’을 지목하고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과 합동으로 8월 한 달간 불법하도급 집중 단속에 나선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최근 국토교통부가 LH 발주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에 대한 전면적인 안전점검에 들어간 결과로 드러난 무량판 공사의 부실시공에 관해 많은 국민들께서 크게 우려하고 계신다”며 “관계 기관은 무량판 공법으로 시공한 우리나라 모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대해 전수조사를 조속히 추진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문제의 무량판 시공이 문재인정부 첫해인 2017년 무렵부터 보편화됐다는 정부 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전 정부를 정조준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현재 (LH 아파트) 입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며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이 지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달 31일 ‘LH 무량판 구조 조사 결과’에서 2017년 이후 ‘무량판’으로 발주해 시공사를 선정한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기둥 주변 보강철근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주 과정의 특혜 등 건설업계 부패 카르텔로 인해 부실시공이 초래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 5월23일부터 지난달 21일까지 불법하도급 의심 현장 292곳을 단속한 결과 108곳(37%)에서 183건의 불법사례가 적발됐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라며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을 혁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개혁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혁신과 개혁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제가 누누이 얘기한 바 있다. 기득권 카르텔과 싸우지 않고는 혁신과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계 부처는 고질적인 건설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아울러 법령에 위반한 사항에 대해서는 엄정한 행정 및 사법적 제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공공분야 아파트의 설계·시공·감리 전반에 대한 업무시스템을 점검하고 건설 이권 카르텔의 비정상 관행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전관 특혜의 실태도 확인해 비위행위에 대해 조치하고 제도적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불량자재 납품, 불법하도급 등 건설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해 안전하고 질 좋은 주거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당정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100일 집중 단속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설사가 있다면 큰 오산”이라며 “불법하도급은 반드시 임기 내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건설업계, 부랴부랴 ‘자체조사’ 착수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로 불거진 ‘철근 누락’ 사태로 건설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 적용 단지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정부가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번 사태의 충격파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된 형국이다.
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건설사 상당수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현장을 파악한 뒤 자체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한 관계자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되지 않았더라도 최근 공사를 마쳤거나 진행 중인 현장에 대해서 인원을 투입해 안전 확인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번에 문제가 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공사 외에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 전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전수조사에서 철근 누락 등 부실이 드러날 경우 시공사와 설계사 등에는 상당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수조사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지하주차장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부실 업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주거동까지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4월 붕괴사고가 발생한 검단 아파트 단지의 시공사인 GS건설은 입주민을 비롯한 고객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전면 재시공을 결정했다. 이에 따른 5500억원의 추가 비용은 물론, 주가가 폭락하면서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대형 건설사보다 중소 건설사와 설계사의 피해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는 인력과 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규모가 작은 건설사는 설계나 시공상 문제를 찬찬히 살필 여력이 없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15개 단지의 시공사와 설계사도 거의 중소 규모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중소 건설사의 경우 최근 공사비 부담이 커지면서 안전 관리에 신경을 쓰기 더욱 어려운 환경에 몰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상반기 1당 541달러였던 철근 가격은 올해 상반기에는 1031달러로 2배 가까이 뛰었다. 2년 전 1당 7만5000원대였던 시멘트값도 최근에는 12만원 안팎으로 올랐다.
중소 건설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철근을 빼먹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원가 절감을 위해 인력을 줄이고 공사 기간을 촉박하게 잡는 과정에서 부실 공사 위험성이 커진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적한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에 대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철저한 진상조사와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택을 짓는 문제는 집값이나 관련 정책, 지역의 이권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주택은 집값 상승, 하락기에 따라 공급량이 조절되는데 특정 지역에서 급하게 많이 지어야 할 때는 해당 지역에 투입되는 콘크리트 품질이 낮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서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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