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대응 강화에도 사건 잇따라
정신질환 범죄 최근 급격히 증가
강제 입원 등 예방 시스템 시급
헌재 “본인 동의 없는 입원은 위헌”
위험 성향 있어도 강제입원 어려워
지자체장에 ‘행정입원’ 권한 있지만
소송 등 우려 실제 사례 많지 않아
전문가 “잠재적 범죄자 치부 안 돼
적절한 치료받을 시스템 강구해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일대 흉기 난동 사건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의 ‘칼부림 테러’ 등 주요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이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관련 진단을 받았다는 점에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 및 관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1년 기준 중증 정신질환자는 65만여명. 3년 전인 2018년의 50만명보다 약 13% 증가했다. 이렇듯 국가 관리가 필요한 중증 정신 질환자는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치료와 관리는 턱없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 같은 엄정 대응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이들 중증 정신질환자를 지속 관리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묻지마 범죄’ 예방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6일 법의학계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서현역 일대에서 발생한 최모(22)씨의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 사건은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흉기난동 사건, 이른바 ‘안인득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서현역 사건 피의자 최씨는 2015년 정신과에서 조현성 인격 장애 진단을 받고 2020년까지 치료를 받았지만, 3년 전부터 치료를 스스로 중단했다. 안인득 역시 조현병으로 수십 차례 치료를 받다가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뒤 4년 전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다.
안인득의 방화 및 살인 사건은 2019년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안인득의 범죄 행각은 당시가 처음은 아니다. 2010년 행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재판에 넘겨진 전력이 있었고, 2011년부터 정신병원에서 조현병으로 68차례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2016년 7월을 끝으로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다. 방화·살인 사건을 저지르기 전에는 이웃과 수차례 시비가 붙고 폭력을 행사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과 보건 당국은 안인득을 추적·관리하지 못했고, 결국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안인득 사건 이후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인력을 충원하고 24시간 응급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대체로 실효성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후에도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한 비슷한 강력범죄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르고 도주한 20대 남성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입원 치료를 권유했지만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올해 1월에는 광주에서 피해망상 증세가 있던 40대가 “어머니가 괴물로 보였다”며 둔기로 살해했고, 3월 부산에서는 조현병 약을 끊은 60대가 경찰관을 흉기로 찌른 일도 있었다.
◆안인득 사건 이후 변한 게 없다.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갈수록 느는 추세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강력범죄(흉악·폭력) 등 형법 관련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는 9058명이다. 2018년 7304명보다 무려 24.4%나 늘었다. 2016년 8343명에서 2017년 9089명으로 증가하던 형법 위반 정신질환자는 2018년 7304명, 2019년 7818명으로 감소했으나 2020년 다시 급격히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반사회성·충동성 등 위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와 복지부가 서현역 사건 직후 검토에 들어간 사법입원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사법입원제는 범죄 예방을 위해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관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으로 안인득 사건 이후에도 재발 방지책으로 거론됐던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묻지마식 흉악 범죄’ 등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 및 격리 제도가 적법 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무 부처인 복지부와 협의해 도입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은 사실상 쉽지 않다. 2016년 본인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결하고 이후 2017년부터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다. 기존에는 보호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가 있으면 환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입원을 할 수 있었다. 환자 인권 침해 문제가 대두됐고, 가족 간 갈등에 강제입원이 악용되기도 했다. 개정된 법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을 하기 위해서는 2명 이상의 보호의무자가 신청하고 2명 이상의 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필요하다. 법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강제입원을 신청할 수 있는 ‘행정입원’도 있지만 소송 등의 우려로 실제 시행은 제한적이다.
조현병과 망상장애 등 중증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복지부가 올해 1월 내놓은 ‘국가 정신건강 현황 보고서 2021’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의 중증 정신질환자는 65만1813명이다. 2018년(50만9056명)보다 8만1857명(13.6%) 늘었다. 이 중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18만9878명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의 28%이다. 다만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조현병 환자는 4만8049명에 그치고 있다. 복지부는 사법입원제 도입과 함께 정신질환자의 외래치료 지원 제도 전반을 개선해 치료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전문가들은 강제입원 절차를 강화하더라도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非)자의’ 입원과 치료를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를 단순히 본인과 가족들에게 짐을 지우기보다는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사회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는 “현행법에서는 정신질환자가 어떤 자해나 타해의 가능성이 있어도 병원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다”며 “현재 지금 병원으로 이송되는 고위험 정신질환자의 60%는 가족들이 데려오고 있고, 20%가 경찰, 20%는 자의 방문”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에 따르면 영국과 호주는 신체적 구속을 할 수 있는 비자의 입원·치료에 대한 결정을 복지부 산하 정신건강심판원이라는 준사법행정기관, 즉 국가기관이 맡는다. 대만은 국민이 자해·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신고하면 경찰이 근처 의료 기관에 호송해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공무원의 권한을 부여해 직접 집을 방문해 진단하고, 경찰·소방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입원 조치할 수 있게 돼 있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문제 때문에 이송 등에서 경찰 등 관계 당국이 소극적인 상황”이라며 “환자의 인권뿐 아니라 타인의 인권도 고려해야 하고, 폭력이나 공격성이 있다면 응급입원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응급입원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의료진과 시설에서 케어를 해 준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자들이 스스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강화하고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을 때 국가에서 비용 부담을 크게 덜어 주고, 치료를 받았을 때 복지와 연계해서 환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과 같은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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