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고도 1330m. 아래에서 보면 까마득하게 높아만 보인다. 언제 저기까지 등산할까. 걱정이 앞서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로 단숨에 오를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에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 태백 만항재에 섰다. 낮에는 야생화 만발하고 밤엔 별이 지천으로 피어나 은하수가 돼 흐르는 곳, 태고의 신비 가득한 백두대간을 타박타박 걷는다.
◆야생화 천국 만항재 트레킹
범꼬리, 동자꽃, 요강나물, 할미밀망, 산꿩의다리, 좀꿩의다리. 만항재 하늘숲길공원으로 들어서자 처음 들어보는 작고 예쁜 꽃들 수줍게 미소지으며 어서 오라고 반긴다. 오솔길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라는 야생화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태백시에서 구불구불 산길을 25분만 달리면 이리 예쁜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다니. 과연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이라 불릴 만하다. 장마 끝난 하늘은 전형적인 여름 뭉게구름이 피어 화원을 더욱 예쁘게 꾸미니 숲길을 걷는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 날렵하다.
만항재는 강원도 태백시 혈동, 정선군 고한읍, 영월군 상동읍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고개. 414번 지방도로 태백에서 정선으로 이동할 때 만항재를 넘어가게 된다. 사계절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고, 겨울이면 눈꽃과 서리꽃 상고대가 만발해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주인은 야생화. 수많은 꽃들이 돌아가면서 피고 지어 늘 여행자를 반긴다.
만항재 정상에선 함백산과 운탄고도가 지척이다. 함백산은 둥글둥글한 산세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지만 만항재와 고도차가 240여m에 불과해 정상까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함백산이 만항재 드라이브와 연계할 수 있는 산행 코스라면 운탄고도는 만항재와 연계해 걷기 좋은 길이다. 운탄고도는 ‘석탄을 나르던 옛길’이란 뜻과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고원 길’이란 뜻이 모두 담겼다. 석탄 트럭이 오가던 길이라 비교적 넓고 완만해 걷기 좋다. 전체 구간은 함백역에서 만항재까지 40㎞다. 하늘마중길, 바람꽃길, 낙엽송길 등 난도가 다른 10여개 코스가 있다.
작정하고 야생화 트레킹을 하고 싶다면 두문동재에서 시작해 금대봉(1418m), 분주령(1080m), 대덕산(1307m)을 거쳐 한강발원지인 검룡소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면 된다. 우리나라 최고의 야생화 군락지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태백12경 가운데 금대화해(金臺花海)는 바로 금대봉을 말한다. 특히 대덕산은 여름이면 여리여리한 핑크색 범꼬리로 완전히 뒤덮여 여름 야생화 군락의 제왕으로 꼽힌다. 야생화 트레킹은 두문동재∼금대봉∼분주령∼대덕산∼검룡소 코스(4시간30분)와 그 반대로 검룡소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두문동재로 이어지는 코스, 검룡소에서 수아밭령∼금대봉∼분주령∼대덕산을 거쳐 검룡소로 다시 내려오는 원점회귀코스(6시간)가 있다. 체력소모가 큰 여름에는 검룡소에서 출발해 대덕산에 올랐다가 분주령을 거쳐 검룡소로 내려오는 짧은 코스(3시간)를 추천한다.
태백 12경 중 하나인 검룡소에도 비경이 기다린다. ‘검룡’이 내뿜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물줄기가 흐르면서 깊이 약 1~1.5m, 너비 약 1~2m에 이르는 암반이 구불구불 파여 물이 흐르는 풍경이 마치 용이 트림을 하는 것 같다. 검룡소의 물은 사계절 섭씨 9도로 일정하고 주변 암반 곳곳에 이끼가 자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한 태고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 여름 야생화 트레킹에는 개병풍, 노루오줌, 눈개승마, 딱지꽃, 물양지꽃, 터리풀, 짚신나물, 조록싸리, 벌노랑이, 짚신나물, 쥐털이슬, 돌바늘꽃, 개구릿대, 큰까치수염, 두메갈퀴, 석잠풀, 마타리, 초롱꽃, 여우오줌, 두산솜방망이, 솔나리, 하늘나리, 산제비난, 타래난초 등등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거의 모든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또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 참매, 대륙목도리담비, 오소리, 고라니, 청설모, 방패벌레, 그림날개나방, 꽃등에, 맵시벌 등 다양한 동물들도 이곳의 식구다. 국립공원공단 예약통합시스템을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 검룡소 구간(주차장~검룡소)과 백두대간 구간(두문동재~금대봉~매봉산)은 사전예약 없이 탐방가능하다.
◆태백 은하수 보러 갈까
만항재는 새벽, 낮, 밤이 모두 기다려지는 여행지다. 고도가 높은 만항재는 이른 아침에 안개가 자주 몰려오기 때문에 새벽에 찾으면 몽환적인 풍경에 푹 빠진다.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강물이 되어 흐르는 은하수를 또렷하게 볼 수 있다. 태백은 평균 해발고도 900m, 낮은 빛 공해 지수, 열대야 없는 기후 등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육안으로도 충분히 은하수를 즐길 수 있다. 망원경을 이용하면 손에 닿을 듯 쏟아져 내리는 별과 은하수에 깜짝 놀라게 된다.
특히 여름은 은하수를 보기 가장 좋은 계절로 태백시에서 추천하는 은하수 명소를 찾아가면 된다. 모두 7곳으로 함백산 은하수길(1312m), 오투리조트(996m), 스포츠파크(812m), 오로라파크(686m), 탄탄파크(742m), 구문소(540m), 태백산(당골광장·865m)이다. 특히 함백산 은하수길에는 오투전망대를 비롯하여 5개의 은하수 보기 좋은 곳이 몰려 있어 인기다. 설악산, 오대산을 거쳐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자리 잡은 함백산(1573m)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남쪽으로 태백산, 북쪽으로 금대봉과 매봉산, 서쪽으로 백운산, 두위봉, 장산 등 대부분 1400m 이상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세가 거대하고 웅장한 백두대간의 위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정상에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의 고원지역에는 참나물, 누리대, 취나물 등 산나물이 풍성하다.
빛 공해 지수 ‘0.87’의 함백산 은하수 감상 장소는 태백선수촌에서 함백산 가는 도로변에 있어 높은 산이나 험한 곳에 땀 흘리며 오르지 않고도 낭만 가득한 여름밤의 은하수를 만날 수 있다. 이달 11∼12일 이틀 동안 태백선수촌 운동장에서 태백은하수축제가 열린다. 사진작가 전제훈과 함께하는 은하수여행, 견우별·직녀별 찾기, 은하수배에 누워 은하수 감상하기,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 놓기, 은하수사진전시회 등 별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800명을 모집하는 사전신청은 마감됐지만 자유롭게 은하수명소를 방문하거나 함백산 은하수길에서 은하수를 감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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