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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상추 먹을 엄두도 못내”… 내수타격에 경제 위축 우려 [밥상 물가 다시 들썩]

입력 : 2023-08-14 06:00:00 수정 : 2023-08-13 21: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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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160%↑… 채소·과일값 급등세
‘카눈’ 여파 반영 땐 상승폭 더 커질듯
국제유가 오름세·교통료 줄줄이 인상
2%대 물가 추석 앞두고 다시 들썩

태풍 ‘카눈’ 피해 면적 여의도의 5.4배
공급 악화에 추석 수요 몰리면 더 올라

유가 5주째 상승, 휘발유 ℓ당 1700원
오펙플러스 감산 속 유가 상승 지속세

서울 버스 기본료 8년 만에 300원 올려
경기·부산 등도 대중교통 요금 줄인상

전문가 “고금리서 물가 뛰면 소비 줄여
기준금리 영향 땐 경제 악영향 줄 것”

美 연준 동결 전망 커 인상 압력 줄었지만
긴축 고려 요소 남아있어 불확실성 여전

경북 영천에 사는 허모(65)씨는 최근 김치를 담그려는 생각을 접었다. 겨울철 김장을 하기 전에 조금씩 김치를 담가 먹었지만 최근 배추 등 채소 가격이 너무 비싸져 경제적으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허씨는 “한 달 전과 비교해 배추는 2배 가까이 가격이 오른 것 같다”면서 “상추는 아예 생각도 못 한 가격이라 살 엄두를 낼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박도 3만원이 넘어 가계에 부담이 많이 돼 과일 소비도 확 줄였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대 초반 상승률을 기록하며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에 다시 변수가 늘고 있다. 최근 잇달아 발생한 집중호우와 폭염에 농작물을 중심으로 먹거리 가격이 뛰어 장바구니 물가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다른 품목의 가격 상승으로 전이돼 ‘2차 파급’ 효과를 갖는 유가와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마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고금리에 가계의 소비 여력이 상당 부분 위축된 상황에서 가까스로 잡히던 물가마저 다시 들썩이게 될 경우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내수 회복세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농산물 가격은 지난달 대비 줄줄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지난 11일 배추(상품) 도매가격은 10㎏에 2만5760원으로 한 달 전의 9880원보다 160.7% 올랐다. 지난해 같은 시기(1만9096원)와 비교하면 34.9% 올랐다. 무 도매가격은 20㎏에 2만9320원으로 한 달 전(1만2900원)과 비교해 127.3% 올랐고, 1년 전 가격인 2만7628원보다 6.1% 상승했다. 시금치 도매가격 역시 4㎏에 5만9500원으로 한 달 전(3만9228원)보다 51.7% 올랐다.

 

과일 가격도 심상찮다. 지난 10일 사과(상품) 도매가격은 10㎏에 8만6225원으로 한 달 전(7만4872원) 대비 15.2% 올랐고, 1년 전(5만9720원)보다 44.4% 상승했다. 복숭아(11일 기준·상품)도 4㎏에 3만3160원으로 1년 전(1만9559원) 대비 69.5% 올랐다.

이는 최근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카눈’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라는 점에서 향후 농산물과 과일 가격은 더욱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1일 오후 6시 기준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 농지는 여의도 면적(290㏊)의 5.4배에 달하는 1565.4㏊로 집계됐다. 지난달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2.3%로 25개월 만에 최저 상승폭을 보였지만 먹거리 물가는 최근 들어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기상악화에 따른 공급 불안 외에도 9월 말 추석을 앞두고 수요가 몰리면 먹거리 가격은 더 뛸 수 있다.

 

◆오르는 유가… ℓ당 1700원 넘기도

 

먹거리 외에 물가를 자극하는 복병도 여럿이다. 우선 국제유가가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국내 기름값이 5주째 상승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기준 휘발유 판매 가격은 ℓ당 1695.0원으로 첫째 주 대비 56.2원 올랐다. 이는 5주 연속 상승세로, 주간 평균 가격이 1700원대에 근접했다. 일간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이달 9일 10개월여 만에 17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경유 가격도 5주 연속 상승세다. 같은 기간 경유의 전국 평균 가격은 전주 대비 74.6원 상승한 1526.0원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석유제품도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8월 둘째 주 기준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8.0달러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주 대비 2.2달러 오른 수치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향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발간한 8월 석유 시장 보고서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와 러시아 등 비오펙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감산을 이어간다는 전제하에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유가가 계속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IEA는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1억220만배럴(bpd)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220만bpd 증가분의 70%는 중국에서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유 수요가 늘어나는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공급을 줄이다 보니 유가는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관측했다. IEA는 오펙플러스가 기존 감산 목표를 유지한다면 석유 재고가 줄고 그로 인해 가격이 상승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중교통 요금 줄인상… 하반기 경제 부담

 

서울 등 전국 곳곳의 대중교통 요금도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인상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서울에서는 시내버스 기본요금이 12일 첫차부터 300원 올랐다. 2015년 6월 이후 8년 만의 요금 인상이다. 교통카드 기준 간·지선은 1200원에서 1500원으로, 마을버스는 900원에서 1200원으로 상향됐다. 광역버스는 23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랐다. 지하철 요금도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교통카드를 기준으로 현재 1250원인 지하철 기본요금은 오는 10월7일부터 1400원으로 오른다. 인천시는 10월부터 지하철 기본요금을 1250원에서 1400원으로 올린다. 버스 종류별로 시내버스는 250원, 광역버스는 350원, 청라∼강서 광역간선급행버스(BRT)는 400원 각각 인상한다. 교통카드를 기준으로 간선버스 1500원, 지선버스 1200원, 공항행 좌석버스 1900원이 된다.

경기도 역시 10월부터 도시철도 기본요금을 1250원에서 1400원으로 올린다. 요금인상 대상인 경기 지역 5개 도시철도는 의정부경전철, 용인경전철, 김포도시철도, 7호선 부천 구간, 하남선 하남 구간 등이다. 부산시는 성인 기준 시내버스 요금을 400원 인상하고 도시철도와 부산∼김해 경전철 요금을 300∼400원 인상해 9∼10월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며 서울에 있는 회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조모(31)씨는 “좌석버스를 타 한 달에 교통비가 이미 16만원 정도인데 이제 출퇴근에만 6000원, 퇴근 후 약속이라도 있으면 하루에 이동으로만 1만원은 나가게 생겼다”며 “교통비가 점심 한 끼”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장모(30)씨도 “아침마다 걸어서 25분 정도 거리인 체육관에 시내버스를 타고 운동을 가는데 이제는 더 일찍 일어나서 걸어가야 할지 고민된다”며 “업무상 버스로 짧은 거리를 탈 일이 많아 기본요금 인상이 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시내 한 버스에서 시민이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17)양은 “받는 용돈은 그대로인데 버스요금은 한 달에 5000원가량 올랐다”며 “하굣길에는 친구들과 걸어서 귀가해 교통비를 줄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양은 “어른들에게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1000원, 2000원씩 모아 사고 싶은 걸 사는 학생들에겐 큰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물가 상승은 고금리로 위축된 소비를 추가로 제약하는 것은 물론 기준금리에도 영향을 미쳐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물가 불안으로 우리 경제에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소비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2분기 민간소비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고금리 상황에서 물가가 뛴다면 (경제주체들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가 한 번의 웨이브(파도)는 끝났지만 또 다른 웨이브가 시작돼 다시 3%대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대 심리가 올라간다면 금리가 시장이 원하는 만큼 낮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거시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물가·가계부채 부담에 韓銀 금리 고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통방) 결정회의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시장은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달 정책금리(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커지며 한은의 인상 압력도 줄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긴축(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할 요소도 남아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이다.

 

13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5.25%∼5.50%를 유지할 가능성은 90%로 예상됐다. 일주일 전(87%)보다 동결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앞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2%로 시장 전망치(3.3%)를 밑돈 것으로 발표되면서 시장이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는 것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사실상 끝났다는 시각도 확산하고 있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CPI 발표를 통해 연준의 긴축이 7월로 종료됐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오는 24일 통방 회의를 앞둔 한은에도 숨을 돌릴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한·미 기준금리 차가 2%포인트로 역대 최대 폭으로 벌어져 있지만, 추가로 금리 차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우세해지면서 한은도 동결을 유지할 근거가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뉴시스

한은의 동결 결정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요인도 있다. 우선 최근 낮은 수준을 보이던 물가상승률이 8월 이후 변곡점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한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데다, 국제유가도 다시 상승하며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4%에서 3.5%로 0.1%포인트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최근 급증하는 가계부채도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은도 수차례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한 우려를 표해 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가) 예상 밖으로 급격히 늘어나면 금리뿐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등 여러 옵션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김범수·이지안·윤준호·박유빈·이규희·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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