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원인 찬물 마신 시간 달라질 수 있어”
추가심리 요청…변호인 “무죄” 보석 청구
2년 전 남편에게 3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먹도록 해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30대 여성의 파기환송심에서 남편이 죽기 전 흰죽을 먹은 시점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화성 니코틴 중독 살인’의 범인으로 몰렸던 이 여성의 무죄 여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은 다시 치열한 법리 공방에 들어갔다.
15일 수원고법 형사1부(고법 판사 박선준 정현식 배윤경) 심리로 열린 A(38·여)씨에 대한 살인 혐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검찰은 “기록을 다시 검토해보니 피해자 부검 결과 위 내용물에서 흰죽이 그대로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피해자가 사망 직전 그동안 알려졌던 음식물 음용 횟수와 달리 흰죽을 추가로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 진술에 근거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해자가 사망 전날 오후 8시에 먹은 흰죽이 (피해자가 사망한) 다음날 오전 3시에 위에 남았다는 건데, 위에서 30분이면 (음식물이) 배출된다는 경험칙과 의학적 소견으로 보면, 부검에서 나온 흰죽은 전날 오후 8시에 먹은 거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2021년 5월 26∼27일 남편인 B씨에게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이 든 음식물과 물을 먹도록 해 B씨가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사망한 B씨는 26일 A씨가 건넨 미숫가루와 흰죽을 먹고 속 쓰림과 흉통 등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다녀왔다. 귀가 후인 27일 오전 1시30분∼2시쯤 A씨는 남편에게 재차 찬물을 건넸고, 이를 받아마신 남편은 1시간∼1시간30분 뒤인 오전 3시쯤 사망했다.
1심은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통한 범행을 모두 인정했고, 2심은 찬물을 통한 범행만 유죄로 인정했다. 반면 지난 7월 대법원은 “추가심리가 필요하다”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내며 “유죄 부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쟁점은 B씨가 니코틴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물을 마시고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하는 등 정상적 움직임을 보였다는 데 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준 물을 마신 시각을 피고인의 진술(오전 1시 30분∼2시 사이)과 달리 인정할 수 있는 정황이 있는지 등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통상 니코틴을 경구 투여하면 30분∼66분 안에 체내 니코틴이 최고 농도에 이르고 이후 빠르게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B씨의 휴대전화에선 최고 농도에 이르렀을 시간대에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한 기록이 발견됐다.
이처럼 오전 1시 30분∼2시 사이에 치사량의 니코틴 용액을 먹은 피해자가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2시45분 휴대전화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 모순된다는 점을 대법원은 지적했다.
이에 검찰 측은 이날 “피해자가 사망 직전 찬물을 먹기 전에 흰죽을 먹었을 가능성이 높기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전문심리위원인 법의학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해자의 휴대전화 로그 기록을 분석한 포렌식 수사관과 피고인이 니코틴 원액을 구매한 판매자 등 2명에 대해서도 증인 신청을 하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앞서 검찰은 A씨가 B씨와 결혼한 뒤 2018년 한 봉사단체에서 만난 남성과 관계를 맺으며 대출과 다단계 채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중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A씨가 집 인근 전자담배 판매업소에서 니코틴 용액을 구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 이후인 지난해 6월 B씨의 계좌에 접속해 300만원 대출을 받아 이득을 취득한 혐의도 제기했다.
반면 변호인 측은 “컴퓨터 등 이용 사기 혐의는 인정한다”면서도 “(검찰이) 살해 시점을 특정하지 못해 여러 사실관계를 모두 집어넣어 기소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니코틴 원액은 입에 대자마자 구토를 하게 되고, 과하게 마실 경우 구토 없이 1시간 안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점도 강조해왔다.
이날 재판에선 “이미 파기환송 전에 전문심리위원들이 법정에 나와 진술했기에 다시 부를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맞섰다. 이어 “피고인이 1년 6개월 정도 수감생활 하는 입장을 고려해 최소한의 신문을 해주시길 요청한다”며 보석 신청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변호인은 ‘한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문장을 인용하며 “피고인이 무죄 가능성이 훨씬 높음에도 구속 기간이 계속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고 법의 기본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증인 신청 및 의견서와 변호인 측의 의견을 검토한 뒤 증인 채택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A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다음 달 27일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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