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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의 성공가도와 ‘문신돼지’ 딜레마 [김범수의 소비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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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02 20:00:00 수정 : 2023-11-15 13: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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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시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 ‘롤렉스’(Rolex).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롤렉스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장 비싼 시계 브랜드로 ‘파텍 필립’(Patek Philippe),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등을 꼽을 순 있어도, 가장 유명한 시계 브랜드는 롤렉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최근들어 국내에서 롤렉스는 제값주고 사기 힘든 브랜드가 됐다. 매장에 방문하려 해도 미리 방문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조차 어려운데다가, 웃돈을 주고 정가보다 더 비싸게 사고 파는 시계가 됐다. 

 

이처럼 최근 몇년사이 롤렉스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롤렉스는 호황을 맞았으나, 동시에 비호감 인구의 브랜드 소비로 이미지가 떨어지기도 하는 그림자도 커진 상황이다.

롤렉스의 대표 모델.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 순으로 '서브마리너', '데이저스트', '오이스터 퍼페츄얼', '데이토나'. 롤렉스 제공

 

 

◆‘성공한 사람들은 롤렉스를 사랑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롤렉스의 지난해 매출은 93억 스위스프랑으로 한화 기준 13조7700억원 가량이다. 이는 전체 시계 브랜드 매출 순위 중 독보적인 1위로 지난해 2위인 까르띠에(약 4조1250억원)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롤렉스의 사랑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통한다. 전 세계 유명배우나 정치인, 기업인들이 공식 석상에서 롤렉스 시계를 차고 나왔고, 이는 곧바로 ‘성공한 사람은 롤렉스를 찬다’는 공식으로 이어졌다. 

 

영화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배우 숀 코너리가 열연한 첫 번째 제임스 본드도 롤렉스 ‘서브마리너’(Submarniner)를 차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본드걸과 화려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롤렉스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인 브래드 피트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상승시켰다.

 

첫 번째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던 배우 숀 코너리가 작중 롤렉스 '서브마리너' 모델을 착용한 모습. 영화 갈무리 롤렉스의 간판 모델인 브래드 피트.
롤렉스의 간판 모델인 브래드 피트.

롤렉스의 사랑은 정치인도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점은 쿠바 혁명의 주역인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롤렉스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반자본주의를 부르짖은 두 인물이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롤렉스를 선호했다는 점에서 형용모순까지 느낄 수도 있다. 어째서 그들은 롤렉스를 애용했을까.

 

물론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개인적으로 롤렉스를 선호할 수 있지만, 쿠바 혁명이 벌어지던 1950년대만해도 롤렉스는 기능성이 강조된 ‘툴워치’(Tool Watch) 성향이 강했다. 툴워치란 특정 상황에서 사용자를 돕기 위해 제작된 시계를 뜻한다. 쉽게 말해 초시계, 속도측정, 세계시간, 잠수기능, 고도측정, 온도측정 등이 가능한 시계다. 

'쿠바 혁명'의 주역으로 알려진 정치인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애용했던 롤렉스 'GMT-Master' 모델.

전자시계와 스마트워치가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이 같은 기능은 쉽게 접할 수 있고 당연히 있을 법한 옵션이지만, 기계식에 의존했던 당시 시계에서 툴워치는 튼튼하고 기능이 다양한 ‘실용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고 착용했던 롤렉스 GMT-Master는 시침과 분침 이외에 시침이 한개 추가돼 회전 베젤을 통해 다른 나라의 시간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간단히 검색해서 다른 나라 시간대를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 출장이 잦았던 기업인, 비행기 조종사와 승무원, 정치인들 사이에서 GMT 기능은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롤렉스 역시 이 점을 파고 들었다. 롤렉스는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사였던 ‘팬암’(PanAm)과 협업을 통해 ’파일럿은 롤렉스 GMT를 착용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팬암도 부도가 나서 사라졌고, 파일럿들은 롤렉스가 아닌 더 실용적이고 기능이 다양한 시계를 착용하지만, 롤렉스 GMT의 선호 현상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서브마리너’ 모델과 함께 선호도 1·2위를 다투고 있다.

롤렉스가 항공사 '팬암'과 협업한 광고. 롤렉스 제공

◆롤렉스의 기술력과 ‘오픈런’

 

롤렉스의 가치는 단순히 부유한 사람을 위한 시계는 아니다. 롤렉스는 자사의 전 제품에 들어가는 '무브먼트'(Movement, 시계의 엔진에 해당)를 인하우스 시스템으로 구현했다. 쉽게 말해 무브먼트를 외부 업체를 통해 들여오지 않고 자사가 생산과 조립, 연구개발(R&D)까지 모두 진행한다는 의미다. 

롤렉스 데이토나에 들어가는 '인하우스-무브먼트'. 롤렉스의 무브먼트는 심미성은 비교적 떨어지지만, 정확성과 내구성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롤렉스 제공

고급시계 시장에서 자사의 전 모델을 ‘인하우스-무브먼트’로 채운 브랜드는 롤렉스 이외에 거의 없다. 대부분의 시계 제조사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모델은 ETA나 셀리타 같은 무브먼트 전문회사로부터 제품을 받아 조립한다. 그만큼 '인하우스-무브먼트'는 시계회사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롤렉스는 이 같은 자사 기술력과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상승을 통해 명품시계 브랜드로는 파텍필립과 더불어 단일 시계 브랜드로 존속할 수 있었다. 이 외의 고가 시계 브랜드는 쿼츠 시계 출시 이후 불어닥친 위기에 휩쓸려서 LVMH, 리치몬트, 스와치그룹 같은 모(母) 기업에 소속됐다. 

'오픈런'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저 심정을 안다. 사진은 롤렉스와 관련 없음.

이 같은 롤렉스 브랜드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수요가 폭증해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사전에 방문예약을 하는 제도로 바뀌었지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선착순으로 롤렉스 매장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시계를 판매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백화점이 열리지마자 ‘전력으로 달려서’ 롤렉스 매장에 도착해 시계를 구입하는 ‘오픈런’의 대명사로 자리잡기도 했다. 이 같이 구매한 롤렉스 시계는 수 백∼수 천만원 ‘웃돈’을 붙여 되팔이로 나오기도 했다. 

 

 

◆롤렉스와 ‘문신돼지’의 상관관계

영화 <범죄도시3>에서 주목을 받았던 캐릭터 '초롱이'. 흔히 생각되는 '문신돼지'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구현했다. 깨알같은 롤렉스도 포인트. 영화 갈무리

명품시계의 대명사 롤렉스에도 속사정은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호황기와 동시에 찾아온 브랜드 이미지의 하락이다.

 

빚을 내서라도 롤렉스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건달’, ‘사기꾼’, ‘졸부’, ‘허세충’ 같은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롤렉스 시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들이 롤렉스 시계를 구입하는게 잘못은 아니지만, 롤렉스 입장에서는 다소 골치다. 사회적으로 선호되지 않은 이들이 롤렉스를 구입하면 매출 증대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롤렉스의 브랜드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주변에서 문신을 무기 삼아서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덩치 큰 ‘문신돼지’를 떠올리면 된다. 그들의 손목에 있는 시계를 생각하면 롤렉스 특히 서브마리너 ‘청콤’(파란색과 금장 조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상상이 잘 안된다면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범죄도시3에 나오는 ‘초롱이’ 캐릭터를 생각하면 된다. 

 

명품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증오 수준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명품 패션 브랜드인 ‘버버리’(Burberry)가 있다. 영국 버전의 문신돼지인 ‘차브족’(Chav)이 2000년대 들어 버버리 모자나 의류를 대대적으로 착용하면서 한 때 ‘버버리=차브족’이라는 공식이 나돌 정도였다. 게다가 이들은 매장에서 직접 정품을 사기보다는 중고로 사고 팔거나, ‘짝퉁’을 구매하면서 매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은 편이었다.

'버버리'를 포함해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깎는 것으로 유명했던 영국판 문신돼지인 '차브족'. 인터넷 갈무리

결국 버버리는 자사의 제품인 야구모자 생산을 중단하고, 제품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 끝에 2010년대부터 겨우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기도 했다.

 

또한 롤렉스 시계를 선호하는 현상이 커지면서 일각에서는 소위 ‘짝퉁’ 롤렉스도 범람하고 있다. 가짜시계의 범람은 다른 시계 브랜드도 마찬가지지만, 수요가 가장 큰 롤렉스의 경우 가장 심각한 편이다. 이 같은 짝퉁은 주로 중국에서 제조되는데, 십 여년전만 해도 육안 상으로 어느정도 구분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일반인은 구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퀄리티(?)’가 상승했다.

 

‘호황 속에 그늘이 있다’는 말 처럼 롤렉스가 문신돼지 이미지, 짝퉁의 범람이라는 악재를 이겨내기 위해 어떠한 브랜드 마케팅 정책을 펼칠 지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선 끊임없는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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