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못 읽어준 아이들에 편지 쓰고
세번 도전끝에 검정고시 합격도
직장인·대학생 등이 자발적 봉사
문학·영어 등 평일 저녁 무료 수업
운영비 빠듯… “지자체 지원 시급”
“처음 시험이란 걸 보았다/청심환이라도 먹을 걸/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올 때도/남편 떠나보낸 하늘을 볼 때도/오남매 결혼시킬 때도/몰랐던 이 두근거림”(자작시 ‘첫 시험’, 박갑순 학생作)
9일 한글날을 맞아 개교 50주년을 앞둔 서울 중랑구 한 작은 상가 2층에 터를 잡은 ‘태청야학’을 찾았다. 1974년 5월3일 첫 문을 연 태청야학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 연필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배움의 기쁨을 선사해 왔다. 한층 쌀쌀해진 가을바람에도 백발 어르신들이 모여 앉은 교실에선 ‘늦깎이 학구열’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곳서 만난 학생회장 최예순(68)씨는 13년째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전북 무주 구천동에서 나고 자란 최씨는 8남매 중 맏딸이다. 학업은 사치였다. 봄엔 나물을 뜯고 겨울엔 땔감을 모으러 산과 들을 헤맸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할 때마다 돌아오는 혹독한 매질은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학교를 떠나 공장으로 향했다.
미싱공장, 도색공장 온갖 일터를 전전하다 어느새 50대 중반이 된 최씨는 2011년 무작정 태청야학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들의 알림장도, 군대 간 아들의 편지도 읽을 수 없는 것이 답답해서였다. 낮에는 마트 직원들 밥 지어주고, 밤에는 12시까지 한글을 익혔다. 잠든 30대 아들을 깨워 맞춤법 물어 보다 한소리 듣기도 했다.
2021년 여름, 최씨는 세 번의 도전 끝에 그는 마침내 초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결과 발표날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를 뚫고 교육청으로 달려가 합격증을 품에 안았다. 그날을 떠올리며 최씨는 “남들은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그러는데, 나는 정말로 기뻤다. 신발이 홀딱 젖는 줄도 몰랐을 정도”라며 웃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3년마다 발표하는 성인문해능력조사(2020)에 따르면 기본적인 한글 읽기·쓰기와 셈하기가 불가능한 성인 비문해자는 200만명이다.
태청야학에는 60대부터 80대까지 30여명의 학생이 매일 평일 저녁 찾아와 기역, 니은, 디귿부터 초등학교 교육과정 수준의 문학, 영어, 과학, 사회 등의 수업을 듣는다. 수업 난이도별로 소망, 배움, 지혜, 심화반이 운영되고, 수업료는 전액 무료이다. 32명의 직장인,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사로 참여해 주 1∼2회 수업을 진행하고, 나아가 교재 연구부터 야학 홍보, 정산까지 모두 도맡는다.
이곳에 와 처음으로 한글을 깨친 학생들은 앞다퉈 달라진 삶을 자랑했다. 지혜반 반장 이영례(64)씨는 “아이들한테 동화책을 못 읽어줘서 미안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속마음을 편지로 써주기도 한다”며 “아직 한글 받침은 어렵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글로 써보고 싶다”며 새로 생긴 꿈도 전했다.
박갑순(77)씨는 “이제 내 이름 석자도 쓸 줄 알고, 냉장고에 음식마다 메모를 딱딱 써서 넣어둔다”며 “손주가 와서 자고 가면 밥 먹으라고 적어두고 나올 때 기분이 좋다”며 미소지었다.
가정 형편상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밍크코트 공장에 들어간 강정자(78)씨는 “한글도 모르는데 영어로 쓰인 라벨을 구분하기 위해 새벽부터 애들(아이들) 아빠랑 애들 도시락 5개 쏴두고 수도학원 가서 영어를 3개월 배웠다”며 “이젠 여기(태청야학)에서 한글을 알려주니 이제 문자도 보내고, 병원도 은행도 갈 수 있다”고 고백했다.
태청야학은 올해부터 스마트폰 교육도 시작했다. 서울시에서 키오스크를 지원받아 실습하는 과정이 포함돼 있다. ‘키오스크‘, ‘터치’, ‘테이크아웃’ 등 늑깎이 학생들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되는 외래어를 가르치는 수업이라 호응도가 좋다.
스마트폰, 맞춤법 과목 등 태청야학의 교사들은 쉬는 날에도 나와 새로운 수업과 운영 방식을 밤새 고민한다. 한 번도 학교를 다녀보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수학여행이나 입학식, 졸업식 등을 기획하기도 한다.
문제는 운영비다. 매달 임대료, 교재, 비품 구입비 등 250만원씩 연 3000만원의 운영비가 든다. 교사들이 내는 월 1만원의 회비와 후원 행사 등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지만 늘상 빠듯하다.
교무부장 김윤성(33)씨는 “중·고등학교 과정 등 다양한 과목을 진행하고 싶어도 공간이 늘 부족해 열지 못하고 있다”며 “상근 관리자라도 있으면 낮에 수업을 열 수 있겠지만 현재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태청야학 바로 앞에 있는 문화체육복합센터가 밤에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대여해주는 등 지역자치단체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청야학은 모두에게 배움의 공간으로 열려 있다. 여가 시간을 자발적으로 어르신들 교육에 쏟는 교사들 역시 한목소리로 자신의 삶이 성장했다고 인식했다.
3년째 태청야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한지현(29)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내 안위만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며 “야학에서 남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며 삶에 대한 배움을 얻으며, 야학은 이제 내 삶의 굳건한 일부”라고 말했다. 윤성씨도 “처음에는 가르치려고 왔는데, 배우는 게 더 많았다”며 “학생분들이 피곤해서 꾸벅꾸벅 조시면서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열정이 생기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고 전했다.
<태청야학 학생들 자작시 작품 모음 일부>
“나 어릴적 살던 무주 구천동/사방에 산이 둘러져 있고/다섯 집이 살았구요/버스 정류장 딱 하나/해만 지면 온 동네가 깜깜해서 옆동네 언니는 그랬지요/아이고 저기는 벌써 요강 들여놨다/내가 목욕하고 고동잡던 맑은 냇물/나물뜯고 다래 머루 따먹던/마을 뒷산 모두 그대로 일까요/산속에서 뭐 할 게 있었나요/그래도 나는 무주 구천동이 그립습니다” (무주구천동의 행복, 최예순 학생作)
“공부를 하고 싶다/옛날에는 남자만 공부시키고/여자들은 공부를 안 시키고/밭일만 시켰습니다/나이가 들고 보니 공부가 하고 싶어서/태청야학에 공부하러 왔습니다/선생님도 잘 가르쳐주시고/같이 공부하는 언니들도 좋습니다/나이가 들어 태청야학/공부하러 오니 즐겁고/한글을 깨우치니 재미있습니다” (태청야학교, 순락례 학생作)
“내 나이 9살 때/풋보리 베다가 홀테에 훑었다/나는 학교를 다닐 생각조차/할 수 없었다/외할머니 큰 이모/두 분이 오셨다/내가 절구 방아 찧는 모습을 보셨다/두 분 이모님께서는/아무 말도 하지 않고/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이제는 태청야학에 다닌다” (보릿고개, 최금례 학생作)
“나는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 얼굴도 모른다/서모 밑에서 자랐다/구박 받으면서 살았어요/우리 아버지는/내가 학교에 보내 달라고 했더니/가시나가 글 배우면/엉덩이 뿔난다고 했다/태청 야학에 와서 공부를 하니/너무 행복하다/바빠서 많이 못 해도 참 재밌다/더 열심히 해야지(그리운 어머니, 현영숙 학생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내 나이 일곱살 돌아가셨다/그래서 할아버지가 못 가게 해서/학교 가고 싶어서 많이 울었습니다/그래서 지금은 공부를 하고 보니/눈을 반쯤 뜨고 보니 행복합니다/태청야학에 감사합니다” (그리운 아버지, 박갑순 학생作)
“매일 매일 학교에 나와 한글 공부를 합니다/가방 가득 담긴 책 공책 필통이 무거워도 힘들지 않습니다/학교로 가는 길/간판에 글자가 보입니다/버스 노선에도 글자가 보입니다/나는 이제 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버스 노선도 읽을 수 있습니다/한글을 배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공부의 즐거움, 유세업 학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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