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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출혈인데 ‘치루 수술’ 받고 사망…유족, ‘오진’ 의사 이례적 구속에도 분통

입력 : 2023-10-11 08:10:00 수정 : 2023-10-11 0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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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의 법정구속에 의료계 반발…의사도 항소
유족 “변론 시작만 2년…왜 환자가 피해 보나”
2018년 의사의 오진으로 70대 환자가 쇼크사한 사고와 관련 환자의 유족이 납골당을 찾아 슬퍼하는 모습. MBC 보도화면 갈무리

 

5년 전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70대 환자가 쇼크로 사망한 사고와 관련 오진을 한 외과 의사가 이례적으로 법정 구속된 가운데, 유족은 기나긴 의료 분쟁에 여전히 고통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의사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대한의사협회도 ‘과잉 사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외과 의사 A(41)씨는 최근 변호인을 통해 인천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1심 재판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A씨는 “법원이 법리를 오해해 부당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18년 6월15일 인천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환자 B(사망 당시 78세)씨의 증상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망 나흘 전 B씨는 병원을 찾아 “최근 대변을 볼 때마다 검은색 핏덩이가 나왔다”고 A씨에게 설명했다. 당시 B씨는 과거에 앓은 뇌경색으로 아스피린 약을 먹고 있었고, A씨는 해당 약이 위나 십이지장에 출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B씨 항문 주변을 손으로 만져본 뒤 급성 항문열창(치루)이라고 오진했고 나흘 뒤 수술을 집도했다. A씨는 이후 B씨가 출혈을 계속하는데도 추가 내시경 검사를 하지 않았다. B씨는 치루 수술을 받은 다음 날 빈혈로 쓰러졌고, 이후 11시간 만에 저혈량 쇼크로 사망했다.

 

검찰은 치루 수술 전 혈액 검사에서 B씨의 혈색소가 정상 수치보다 훨씬 낮아 출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주치의인 A씨가 검사나 처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2019년 그를 재판에 넘겼다. A씨는 법정에서 “업무상 과실이 없다”며 “만약 과실이 있었다고 해도 B씨 사망과 인과관계는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1심 법원은 4년 넘게 이어진 재판 끝에 A씨의 오진으로 인해 조치가 늦어져 B씨가 숨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감정한 다른 의사는 내시경 검사가 제때 진행돼 지혈했다면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며 “의사가 업무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행위에는 엄중한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 피고인의 과실이 가볍지 않은 데다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유족이 엄벌을 탄원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환자 사망 직전 의사 A씨가 급성 항문열창(치루)이라고 진단한 기록. MBC 보도화면 갈무리

 

이에 법조계와 의료계 안팎에서는 오진으로 환자가 숨진 의료사고로 의사가 법정에서 구속된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유사한 의료사고로 법정 구속까지 한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6일 성명을 통해 “도주 우려가 없는 의사를 1심 선고 때 구속한 것은 과잉 사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과오 사건 때 의료진에게 형사 책임을 지우는 판결은 결국 방어 진료를 양산하게 돼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법정 구속까지 한 재판부의 이번 판단은 의료 본질을 무시한 매우 부당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도 결국 사람이어서 상황에 따라 완벽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예기치 못한 다른 원인으로 환자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며 “이 같은 의료행위의 특성을 무시한 판결이 계속 이어질 경우 의료체계의 붕괴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B씨 유족은 5년 가까이 걸린 법정 싸움을 통해 이례적 판결이라는 결과를 받았음에도 A씨의 항소와 더불어 의료계 반발이 이어지자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 가수 신해철씨 사망 이후 환자가 숨지면 병원 동의 없이 의료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지만, 유족은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의료 분쟁을 이어가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유족 측은 “피해자 중심주의 재판이 돼야 하는데 이 의료사고 재판은 피의자, 의사 중심주의 재판이다. 검사는 법을 잘 알고 의사는 병에 대해서 잘 안다”며 “의사 감정서를 받아 변론을 시작하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렸고 길어진 재판에 검사만 8번이나 바뀌었다”고 MBC에 전했다. 수사기관이 의료 기록을 확보해도 잘잘못을 확인하는 것 역시 다른 의사들이며, 동료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인정해 줄 의료인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유족 측은 “의사가 잘못한 걸 의사가 판단해줘야 모든 게 성립된다. 정말 힘들게 2년 반 기다려서 증인이 나왔다”며 “(조정은) 그냥 합의가 목적이지, 피해자가 의사에게 사과받고 이런 건 꿈에도 못 꾼다. 왜 환자로서 아무 잘못한 게 없고 사람이 죽었는데 이런 피해를 봐야 하냐”고 토로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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