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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이 캔버스에 담은 ‘노르망디의 진주’ 옹플뢰르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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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21 14:08:08 수정 : 2023-10-21 1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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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센강이 흘러 바다를 만나는 작고 아름다운 항구/풍경 반해 모네·쿠르베 등 인상파 화가들 화폭에 담아/옛건물 다닥다닥 붙은 비외바생 중세 노르망디 풍경 간직/가장 오래된 프랑스 목조 교회 생 카트린도 만나/홍합찜과 시드르 한잔에 여행 낭만 더해

옹플뢰르 전경.

서서히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는 항구. 낮을 찬란하게 밝히던 태양과 눈부시게 파란 하늘은 짙은 다크블루 뒤로 숨어든다. 마치 화가가 덧칠할 때마다 농도가 짙어지는 캔버스처럼.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한다. 섬세하고 부드럽게 붓터치하듯, 따스한 불빛 하나둘 켜져 북유럽풍 건물들을 비추면 낭만항구의 밤이 순식간에 깨어나기에. 클로드 모네가 사랑한 옹플뢰르(Honfleur). 같은 풍경이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감을 담는 항구는 인상파 화가들의 팔레트를 닮았다.

옹플뢰르 전경.
옹플뢰르 전경.

◆센강이 흘러 바다를 만나는 곳

 

프랑스 파리가 낭만적인 이유는 센강 덕분이다. 폭이 그리 넓지 않은 강을 따라 시테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시작으로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뇌프와 퐁데자르 등 아름다운 다리들이 연인들을 유혹한다. 루브르박물관, 튈르리 정원, 오랑주리 미술관, 에펠탑 등 세계문화유산들도 어김없이 센강을 따라 펼쳐진다. 아마 강이 없었더라면 이런 유명한 관광지도 좀 팍팍하게 보일 것 같다. 그런 센강이 서쪽으로 수백㎞를 흘러 대서양 영국해협과 만나는 곳이 ‘노르망디의 진주’이자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의 마을 옹플뢰르다.

옹플뢰르 전경.

옛날 항구를 뜻하는 비외바생(Vieux bassin)으로 들어서자 그림엽서가 따로 없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가슴을 나란히 하고 선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데칼코마니처럼 담는 물과 하얀 돛을 단 요트가 정박한 풍경은 빼어나게 아름답다. 모네와 구스타브 쿠르베 등 대가들이 왜 이곳을 화폭에 담으려 했는지 쉽게 이해된다.

 

자세히 보면 폭은 좁지만 높은 층으로 건물을 다닥다닥 붙여 지은 모양이 좀 특이하다. 특히 1∼2층과 3층 이상의 색이 확연하게 다르다. 사연이 있다. 원래 옹플뢰르 성벽과 해자가 있던 곳으로 도시가 확장되자 성벽을 허물고 그 돌로 집을 지었다. 그런데 땅의 폭이 좁고 길어 귀족들이 관심을 갖지 않자 시민들에게 땅을 팔았다. 이때 루이 14세의 조카 부인이 세금을 더 걷어들기 위해 꾀를 냈다. 스물다섯 발자국, 약 8.5m 길이로 땅을 잘게 쪼개고 건물 뒤쪽 언덕 라인을 기준으로 층을 위, 아래로 나눠서 땅을 팔자고 제안하면서 한 건물에 주인 2명이 있는 건물이 탄생했다.

옹플뢰르 전경.

따라서 건물은 층이 모두 연결되지 않는다. 2층 또는 3층 이상은 뒤로 돌아가야 출입구가 나타난다. 시민의 고혈을 짜낸 꼼수가 지금은 엄청난 관광수입을 벌어들이는 풍경을 만들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던 시절이라 땅을 산 시민들은 베란다를 확장하듯, 2~3층 이상을 1층보다 앞으로 툭 튀어나오게 지어 지금의 독특한 콜롬바주양식 건물이 완성됐다.

도개교.
리외트낭스.
리외트낭스 아치형 통로.
사뮈엘 드 샹플랭.

◆중세 노르망디 풍경 그대로 간직

 

배가 들어올 때마다 들려 오르며 열리는 도개교를 지나면 항구를 드나드는 배를 관리하던 리외트낭스(Lieutenance) 건물을 만난다. 11세기에 도시가 조성된 옹플뢰르는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당시 군사요충지였는데 1789년 방어를 목적으로 리외트낭스를 지었다. 건물 이름은 ‘왕의 부관’이란 뜻. 왕의 부관이 옹플뢰르 출신이라 이런 이름을 얻었다. 아치형 출입구 오른쪽 벽에 조각된 얼굴은 대항해시대 캐나다 퀘벡을 발견한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 프랑스 탐험가인 그는 1604년 앙리 4세의 왕명을 받고 캐나다를 탐험해 지금의 퀘벡시를 건설한 인물이다. 샹플랭의 기념비와 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도 근처에 있다.

리외트낭스 아치형 통로.
갤러리 거리.
기념품점 거리.

대항해시대 때 옹플뢰르는 수많은 탐험가들이 항해에 나서는 거점 항구라 늘 북적거렸다. 하지만 더 이상 도시 확장이 어려워지자 인근 르아브르(Le Havre)에 새 항구가 생겨 거대한 무역항으로 성장하면서 옹플뢰르는 그만 쇠퇴하고 말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때문에 번영을 누린 17~18세기 중세시대 노르망디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여행지가 됐다는 점이다.

생 카트린 교회 종탑.
생 카트린 교회 본관 출입구.
생 카트린 교회 배 바닥 모양 천정.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생 카트린 교회(Eglise Saint Catherine)가 등장한다. 15세기에 완성된 프랑스에 가장 큰 목조 교회다. 보통 중세시대 성당이나 교회는 왕이나 주교가 건설하지만 이 교회는 백년전쟁 종식을 기념해 옹플뢰르 시민들의 재산으로 지었다. 궁핍한 시민들은 비싼 돌을 구할 수 없었기에 나무를 이용해 건축해야 했다. 교회 맞은편에 종탑 건물을 따로 지은 모습이 독특하다. 높은 종탑이 벼락을 맞아 불이 날 것을 대비해 교회 건물과 분리한 지혜가 돋보인다. 항구답게 교회 내부천장은 배의 바닥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자세히 보니 나무기둥 받침돌 크기가 모두 다르다. 당시 시민들은 성당을 짓고 남은 돌을 활용했는데 석공이 없어 모양과 크기가 다른 돌들을 그대로 사용해야 했다.

옹플뢰르 레스토랑 거리.
홍합찜과 시드르.
대구요리.
홍합 캐는 아낙 조형물.
시드르 상점.
시드르.

밖으로 나오니 오후 6시를 알리는 종이 은은하게 항구에 울려 퍼져 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여행자들이 항구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에 하나둘 자리 잡는 시간.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홍합찜 요리다. 가난했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홍합을 캐다 파는 것이 주수입원이었다. 커다란 그릇에 수북하게 담겨 나온 치즈를 녹인 홍합찜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짭조름한 홍합찜에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사과와인, 시드르를 곁들이면 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이 입속으로 밀려든다.

정육점의 길.
정육점 가판대가 남아있는 건물. 

◆노을 내려면 낭만 더하는 중세 골목

 

든든히 배를 채우고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기 시작하는 골목길을 걷는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면 옹플뢰르는 낮과는 또 다른 낭만의 시간을 선사한다. 100∼500년 된 넘은 콜롬바주양식 건물과 바닥을 꾸미는 알록달록한 포석,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즐기러 매년 관광객 400만명이 이곳을 찾는다. 콜롬바주양식 건물은 나무와 진흙으로 지은 집. 프랑스는 산이 많지 않아 돌을 구하기 어려웠고 돌은 대부분 귀족의 성을 짓는 데 사용됐기에 서민들은 흙과 나무로 집을 지어야 했다. 옹플뢰르는 조선소에서 해체한 배의 목재를 주로 사용했는데, 수십년 동안 바닷물에 단련된 덕분에 쉽게 변형되지 않아 단단한 집을 짓기에 아주 적합했다.

감옥의 길 포토존.
감옥의 길.
옹플뢰르 야경.
옹플뢰르 야경.

‘작은 정육점의 길’이 가장 인기가 높다. 정육점 조합인들의 상점이 모여 있던 곳으로, 지금도 덧문을 아래로 내리면 가판대로 바뀌는 건물이 남아 한때 번성했던 시간을 전한다. 옹플뢰르 영주가 살던 건물을 지나면 ‘감옥의 길’로 접어든다. 맞은편 건물이 과거 법원으로 지하에 감옥이 있어 이런 이름을 얻었다. 골목에 무심하게 놓은 작은 벤치는 누구나 화보로 만들어 버리는 옹플뢰르의 인기 포토존이니 놓치지 말기를. 낮에 본 항구는 전혀 낯선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로등 불빛과 조명을 받은 건물들이 거울 같은 바다에 그대로 투영되는 환상적인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다.

리외트낭스 야경.
옹플뢰르 낮.
옹플뢰르 밤.

◆모네, 인상파 화풍에 눈을 뜨다

 

이렇게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옹플뢰르를 인상파 화가들이 그냥 둘 리 없다. 특히 파리에서 태어나 르아브르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모네가 대표적이다. 그는 화가로서 눈을 뜨게 되는 인생의 스승, 외젠 부댕(Eugene Boudin)을 바로 옹플뢰르에서 만난다. 모네가 18살, 부댕이 33살 때 일이다. 옹플뢰르에서 태어난 부댕은 초기 인상파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그는 미술학교에 다니며 캐리커처를 그려 꽤 많은 돈을 벌던 모네에게 어느 날 “야외에 나가 물에 비치는 빛의 움직임과 색을 캔버스에 담자”고 제안하면서 모네는 비로소 인상파 화풍에 눈을 뜨게 된다.

생 카트린 교회 종탑.
외젠 부댕 작품 생 카트린 교회 종탑.

모네는 나중에 “이제 내가 진정한 화가가 됐다면 그것은 부댕 덕분이다”라고 회고했을 정도로 부댕은 모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은 모네는 날씨와 시간,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의 색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훗날 인상파 용어를 탄생시킨 작품 ‘인상, 해돋이’를 완성한다.

모네가 그린 생 카트린 교회 종탑.

모네가 옹플뢰르 풍경을 그린 대표 작품은 1867년 완성된 생 카트린 교회. 종탑과 주변 건물을 자신만의 색감과 붓터치로 담았다. 이 작품은 현재 옹플뢰르의 외젠 부댕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곳에선 부댕,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쿠르베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만난다. 화가들만 옹플뢰르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전위적인 20세기 음악을 탄생시킨 괴짜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도 옹플뢰르 출신이다. 그가 열두살까지 살던 생가 메종 사티는 현재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옹플뢰르(프랑스)=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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