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팀장급 공무원 횡령금액 최소 20억원
서울 강동구청선 115억 가로채 실형 선고
전산 조작·뒷돈·세입 누락 등 수법도 다양
공직사회 대대적 의식 개혁 필요성 커져
수십 차례 횡령하거나 금액도 천차만별
‘공직사회 기강 무너졌나’ 우려 목소리
“모니터링·감사시스템 등 대폭 강화해야”
“무사안일 등 공무원 인식도 큰 문제
재발 방지 엄정한 처벌도 뒷받침돼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됐네요.”
최근 공직사회에서 공금에 손을 대는 공금횡령 사건이 하루가 멀다고 불거지면서 이런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북 포항에서는 최근 감사에서 팀장급 공무원이 시유재산 매각과정서 20여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 공금 1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은 올해 초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실제 해마다 공금횡령 사건은 100건이 넘게 적발되고 있다. 공직사회의 대대적인 의식 개혁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포항 공무원 공금횡령 사건, 일파만파
22일 포항시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시유재산 횡령 혐의로 구속된 경북 포항시 팀장급 공무원 A씨가 빼돌린 공금은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횡령금액이 50여억원이 넘어설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포항남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A씨가 시유지 매각 과정에 가로챈 공금은 20여억원이다. 이는 경북도가 감사에서 적발한 13억1000만원을 훌쩍 상회하는 액수다. A씨는 최근 포항시를 상대로 한 경북도 감사에서 2021∼2022년 시유지 27건을 매각하면서 감정평가 금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시에 납입함으로써 13억1000만원을 가로챈 혐의가 드러났다. 경찰은 포항시의 고발에 따라 우선 확인된 1건 약 2억6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달 26일 A씨를 구속했다.
수십억원이 넘는 공금횡령 사건이 일어나자 포항시는 재정관리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긴급 조치에 나섰다. 포항시의회도 공무원의 시유재산 공금 횡령 사건과 관련, 행정사무조사에 착수했다. 시의회는 지난 5일 제308회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포항시 시유재산 매각 과정에서의 비위 등에 관한 행정사무조사 발의안’을 의결했다.
조사위원회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시와 공무원의 업무 추진에 대한 위법성과 책임성 등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비롯해 공유재산 관련 사무 전결사항과 재무회계 시스템 현황, 업무처리 프로세스, 향후 대응 방안 등 시 공유재산 관리 전반에 대해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경북도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포항 공금횡령 사건의 경우 오랫동안 발생하지 않은 이례적인 사건으로 횡령금액이 수십억원에 이르러 매우 당혹스럽다”며 “앞으로 도내 23개 시군을 상대로 횡령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감사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지자체 공금횡령사건 우후죽순
공직사회의 공금 횡령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무원이 업무상 횡령 및 점유이탈물 등 횡령 등으로 검거된 규모(송치인원)는 2018년 177명(101명), 2019년 149명(102명), 2020년 118명(47명), 2021년 110명(48명), 2022년 141명(50명)으로 나타났다.
횡령 수법과 횡령액은 다양했다. 공금 11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에게는 실형이 확정됐다. 올해 2월 대법원 2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48)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76억9000만원 추징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원 횡성군청에서는 예산 3억9000만원을 빼돌린 횡성군 소속 8급 공무원 B(40)씨가 지난해 6월 파면됐다. 강원도 인사위원회에 따르면 B씨는 2020년부터 1년간 40여차례에 걸쳐 군청 행사와 공사 관련 예산 3억9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이 돈을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부 신교식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등 손실) 혐의로 B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3억99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강원지역 지방자치단체 산하 농업기술센터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 C(34)씨는 5년간 1억원이 넘는 농·특산물 판매 수익을 빼돌려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C씨는 2017∼2022년 특산물 판매 현금 수익을 센터 명의 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계좌로 이동시키는 등 수십 차례에 걸쳐 총 1억3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형사1부 이영진 부장판사는 올해 8월 29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손실 등) 혐의로 C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1억300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법정에서 C씨는 “쌍둥이 자녀를 키우고 있고 생계 때문에 범행에 이르렀다”며 선처를 호소하고 30차례 넘게 반성문을 냈지만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강릉시청 어르신복지과에 근무하던 30대 공무원은 시청이 발주한 공사에 참여하는 업자들에게 2억원 상당의 돈을 받았다가 지난해 8월 해임됐다. 그는 업자들에게 돈을 빌렸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여수시에서는 2009년 30대 회계과 직원이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허위 작성하는 수법으로 공금 80억7000여만원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직원은 횡령한 돈으로 사채를 갚거나 아파트를 사며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국고 손실)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1년을, 2심에서 징역 9년 형을 선고받았다.
충북에선 30대 보건소 공무원이 공금을 빼돌렸다. 올해 8월 21일 청주지방법원 형사 2단독 안재훈 부장판사는 공전자기록 등 위작과 시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보건소 공무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청주의 한 보건소에서 장비 관리 업무를 맡은 그는 지난해 2월 멀쩡한 차량용 방역기에 결함이 있다는 내용으로 품의서를 작성해 140만원의 수리비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그는 보건소 명의 신용카드로 수리대금을 결제한 뒤 카드수수료를 제외한 현금을 돌려받는 일명 ‘카드깡’ 수법으로 대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청주시는 감찰 과정에서 횡령 사실을 확인하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처분했다.
앞서 2011년엔 충북의 한 지자체 보건소 회계업무를 담당하던 30대 공무원이 재활치료센터 공사비와 의약품 구입비 등 9억8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대전시교육청에서는 2017년 교육부 전산시스템을 조작해 수천만원을 빼돌린 공무원이 파면됐다. 대전지법은 교육부 전산시스템을 조작해 10여년간 수천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공무원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해당 공무원은 파면됐다.
이 공무원은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직원 급여업무를 하면서 2009년 9월쯤 행정실 컴퓨터를 이용해 교육부 전산시스템에 접속한 뒤 급여 조정란에 가계지원비 명목으로 30만원을 허위로 입력하는 등 2017년 하반기까지 10년 동안 모두 55차례에 걸쳐 28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부산시에선 2017년 부산 영도구 문화예술회관 소속 공무원이 적립금 담당 직원이 휴가 간 사이 서랍에서 통장을 몰래 꺼내 2억원을 인출해 말썽이 일었다. 2019년에는 부산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소속 7급 공무원이 체육관 대관료를 개인계좌로 빼돌리다 적발됐다. 이 공무원은 2019년 2∼6월 부산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에서 기장체육관 대관과 공금보관 업무를 맡으면서 대관료 일부를 세입처리 누락하고 개인계좌로 빼돌리는 수법으로 8차례에 걸쳐 2400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 “공직사회 인사·회계·감사시스템 전면 개선 시급”
“포항 공직자 공금횡령의 주요 원인들이 속속 드러난 만큼 적절한 대책을 신속하게 세우고 즉시 집행해야 할 것입니다.”
양만재(사진)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장(사회학 박사)은 22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최근 터진 포항시 공직사회 공금횡령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소장은 “공무원 공금횡령 사건은 잊을 만하면 발생한다. 최근 포항 한 팀장급 공무원의 20여억원 공금 횡령사건이 발생하면서 포항시민은 물론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며 “정부는 제도 개선을 통해 원천적 예방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민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걸로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올해 2월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이 부서 업무용 계좌를 이용해 공금 115억원을 횡령한 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는 등 공금횡령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공금횡령을 사전 차단하는 전산시스템 등 제도 개선을 했는데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지난 8월 발생한 포항시 횡령사례를 근거로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인은 네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인사시스템의 문제”라며 “횡령한 공무원이 한자리에서 5년 이상 근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상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이면 자리이동을 하는데 5년여 이상 근무했다는 것은 한편으로 전문성을 키울 수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그 전문성을 범행에 이용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두 번째는 회계시스템의 문제”라며 “공금 횡령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청백리 시스템’이 운용되고 있는데, 이 전산시스템에 담당자가 수기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재량권의 틈새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바로 자유로운 여러 개의 보통예금 계좌개설이 가능해 이를 범행에 이용했다”고 전했다.
양 소장은 세 번째로 내부 감사 작동 시스템을 문제로 들었다. 그는 “공금횡령사건이 적발된 것은 포항시 자체 감사시스템이 아니라 외부 감사 즉 경북도감사담당관실을 통해서”라며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포항지진과 태풍 힌남노 등 각종 재난사태로 이번 경북도 감사가 7년여 만에 실시된 것도 한 원인이 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무원의 인식을 꼬집었다. 양 소장은 “공금을 횡령하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무사안일식 사고와 통제능력의 부재가 문제”라며 “공금을 횡령하면 반드시 범죄가 밝혀져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청렴 관련 교육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해 공무원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강조했다.
양 소장은 “공직사회의 내부 인사, 회계, 감사시스템을 대폭 개선하고 처벌의 엄격성 등 사법기관은 좀 더 엄정히 법을 집행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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