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군 이슈는 단연 ‘집게손 집단 광기’ 사태였다. 2년 전 처음 등장한 ‘집게손=남성혐오 표식’ 주장과 그에 따른 여성 노동자의 피해를 어물쩍 넘어간 대가는 컸다. ‘그 손모양’만 있으면 기업이나 기관의 고개를 조아리게 할 수 있을뿐 아니라 관련된 여성을 페미니스트로 몰아 사이버 폭력을 가하고, 직장을 잃게 만드는 등 여성 집단에 겁을 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걸 학습해버린 것이다. 문제의 손가락을 찾는 이들은 이제 영상을 1초보다 짧게 끊어서 보는 열정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촉발된 이 논란은 오프라인에서 실제 피해자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처음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의 평등 의식과 혐오 감수성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드러내는 사례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조금 불편할 수 있는 한 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손가락 논란을 둘러싼 남초 커뮤니티의 게시물과 댓글 등을 바탕으로 이들의 관점에서 이번 일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일부 남성이 ‘집게손 대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
게임 캐릭터가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프레임 단위로 끊어 재생한다. 캐릭터의 손 모양이 펼쳐지는 장면에서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0.1초 만에 지나가는 문제의 ‘그 손 모양’을 찾아낸다. 엄지와 검지가 벌어져 무언가 집는듯한 혹은 ‘작다’(small)는 의미를 뜻하는 전 세계 공통 기호, 집게손이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이 ‘표식’을 발견해내고야 만다. 집념과 끈기의 승리다.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역시 반응이 뜨겁다. 커뮤니티 댓글창에 가득한 경탄과 희열에 뿌듯해지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댓글 한 마디씩 보탠 동지들도 비슷해 보인다. 이런 기분, 얼마만인가. 오랜만에 재밌는 놀이 한 판이 제대로 시작될 것 같다. 마구 도파민이 돈다.
집게손이 뭐가 어쨌느냐고? 이걸 아직도 설명해야 하다니 답답하다. 이건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물건을 집거나 주먹 쥔 손에서 편 손으로 변할 때 중간 단계에서 반드시 거쳐가는 그런 손동작 같은 게 아니다. 한국에서만큼은 적어도 아니다.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가 요만하다고 조롱하는 여성들이 커뮤니티(메갈리아) 로고로 썼던 바로 그 손 모양이라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이 집게손은 한국 남성에 대한 한국 여성의 ‘남성혐오’를 상징할뿐이다. 아, 모든 한국 여성이 아니라 ‘페미’들 말이다.
통탄할 일이다. 아직도 잡아내야 할 문제의 집게손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2년 전 GS25 포스터에 새겨진 집게손을 처음 발견해 문제를 지적했던 일이 떠오른다. 사실 그냥 한번 던져본 패였는데 기업은 엄중한 사과 메시지 발표와 함께 포스터를 작업한 직원을 해고했다. ‘피드백이 받아들여진다’는 감각, ‘페미 하면 패배한다’는 메시지를 일거에 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권능감이 짜릿했다. GS25에서 절대 멈출 수 없었던 이유다. 비슷하게 여기저기서 사과문을 받아내면서 전에 없던 효능감을 얻었다.
이번에 ‘집게손 2차전’을 치러보니 확실히 난이도가 올라갔다. ‘와, 이렇게까지 남혐을 심는다고?’ 그렇다고 한다. 디씨(인사이드)에서 다들 그러니 아마 그럴 것이다. 겉으로는 페미 아닌 척 하면서 이렇게 은근슬쩍 남혐 기호를 숨겨 놓다니 믿을 수 없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래, 제발 이렇게 티를 내 줘야 거르지.’ ‘아니 근데 얘들은 왜 이렇게 티를 못 내서 안달이지? 꼭 티를 내서 자기 밥줄을 스스로 끊어요.’
아무튼 이번에도 싸움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국 게임업계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넥슨이 초장에 납작 고개를 숙였다. 유튜브 라이브 켜서 간부란 사람이 정중하게 사과하는 걸 보며 ‘역시 우리가 틀린 게 아니었어’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얻었다. 대기업이 이유 없이 저럴 리는 없으니까.
지난해 3월 역대 최소 표차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에 석패한 직후 “그래도 은근슬쩍 계속 페미해줄게”라는 글을 SNS에 올린 이가 문제의 손가락이 들어간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저 집게손이 빼박(빼도박도 못하게) ‘메갈손’인 이유다. 다행히 넥슨의 신속한 대응으로 해당 여성이 즉각 작업에서 배제되는 ‘정의’가 구현됐다. 모든 혐오는 나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참교육’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정도에 만족할 순 없다. 더 많은 메갈손을 찾아내고, 더 많은 사과문을 받아내고, 더 많은 페미들의 밥줄을 끊어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는 페미들을 모두 척결할 때까지, 행여나 ‘페미 할까’ 유혹에 빠지려는 10∼20대 여자들이 ‘절대 페미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더욱 고삐를 죄어야 한다.

◆이번에도 ‘무지성 페미몰이’ 동참한 사회…여성의 피해엔 눈 감아
남초 커뮤니티발 ‘메갈 집게손 음모론’을 2023년에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더 빠르고 뜨겁게 불길이 타오른다. 지난 2년간 우리 사회는 어떤 길을 걸었던 걸까. 적어도 앞으로 나아간 건 아닌듯하다. 어느 모로 봐도 실소만 터져나올 뿐인 의혹으로 하루 아침에 일터를 잃고 신상털기 마녀사냥을 당하는 여성 노동자를 여전히 지키지 못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제가 된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여성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엔버)의 집게손 포즈는 알고 보니 SNS에 ‘페미글’ 썼던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다른 장면을 담당했음에도 이름과 사진이 공개된 채 계속해서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원청사인 넥슨은 정확한 조사 없이 하청사를 압박한 끝에 사과문이 나오게 만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남초 커뮤발 ‘무지성 페미몰이’에 제대로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40대 남성이 그린 ‘메갈손’은 엔버가 왼쪽 손가락으로 만든 ‘반쪽짜리 하트’ 제스처였다. 넥슨은, 하청사는, 남초 커뮤 유저들은,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두 정치인(류호정·황희두)은 이게 ‘남성혐오’라고 인정하며 이 손가락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모두 진심으로 ‘남혐 손가락’을 믿는지 여부는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들의 거들기 탓에 현실에서 여성 노동자가 되돌리기 힘든 실제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다. 잘 몰랐다는 변명으로 퉁치기엔 너무 늦다. 어설픈 ‘여혐 편승’이 모이면 이렇게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사회적 책무가 있는 대기업과 지도층이 여기에 책임질 각오가 되어있는지, 실은 ‘극단 페미’로 몰린 여성의 삶 같은 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태도 같은 건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게손이 남혐은 맞다는 식의 논지가 얼렁뚱땅 통용되는 것도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남성의 성기가 작다고 놀리면 남성혐오인가? 이것이 여성혐오처럼 끝없는 여성살해(femicide)·젠더폭력 피해, 채용·임금·승진 차별, 임신·출산·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 등 사회 진출에서의 각종 불이익과 등치될 만한 수준인가?
그보다는 애초에 여성이 남성을 거부하거나 싫다고 하거나 조롱하는 것 자체를 못 받아들이는 유구한 증상에 가깝지 않을까? (여성이 그리면 ‘메갈손’, 남성이 그리면 ‘메갈손으로 오해한 것’이 되는 이유다.) 상대적 약자에게 구조적으로 가해지는 차별과 멸시가 깔려 있음을 뜻하는 ‘혐오’를 여기다 갖다 붙이는 것은 인권·평등·계급 개념의 기초조차 없는 수준이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K-인셀’은 무엇을 먹고 자랐나…사회가 이들을 건들지 않는 이유
음모론에 꽂혀 진지하게 손가락 찾기에 열중하는 이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가상현실에서 남초 커뮤니티 세계관 속에 살며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절대적 진실로 믿는 이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인셀’(Involuntary celibate) 혹은 ‘안티페미니스트’로 칭해지는 무리 말이다.
명문대나 대기업 익명 커뮤니티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이들은 교육 수준이나 직업 같은 걸로도 걸러지지 않는다. 오직 공통점은 사이버 세상에서 만만한 여자 괴롭히기를 오락처럼 삼는다는 것이다. 이를 익히 잘 아는 20∼30대 여성들은 어느덧 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변화의 기대감 같은 건 내려놓은 지 오래다. ‘집게손 광풍’에서도 남초 커뮤의 행보 자체는 놀라울 것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 행보에 장단 맞춰주는 기업이나 기관, 사회지도층에 대해서는 분노와 실망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한 한국의 문제는 이 사회가 ‘유해한 남성성’을 키우는 것을 넘어 교정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탈 행위를 통제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끝판왕급이었던 ‘K-아들 선호 사상’의 잔재인 동시에 기득권 남성 집단의 ‘의도적 회피’가 함께 작동한 결과다.
뿌리 깊은 남아선호 문화는 성별 권력에 따른 발언권 문제와 연결된다. 남성편향적 사회에서는 같은 말을 여성이 할 때보다 남성이 할 때 더 잘 먹히는 현상이 나타난다. 마이크를 쥐고 앞에 나서는 여성에 대한 거부감은 똑같이 그러는 남성에게보다 큰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성평등지수 가운데 ‘의사결정’ 분야에서 유독 점수가 낮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다. 이건 젠더 갈등이나 성 대결이 아니라 ‘젠더 갑질’로 명명해야 한다. 갑질을 통해 만만한 이를 착취하는 식으로 굴러가는 다른 많은 분야처럼 남성이 여성을 검열하고,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을 참지 못하고, 수틀리면 괴롭히기를 일삼으며 결국 체념시키고 길들이려는 방식 말이다.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기득권 집단은 비기득권 남성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같은 성별의 선배로서 이들이 여성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시민성 갖춘 동료 남성으로 키우는 길이 있고, 여성을 그저 먹잇감으로 던져준 채 젠더 갑질이나 하며 온라인에서나마 충족감을 느끼게 두는 길이 있다. 전자는 지난한 여정처럼 보이고 자칫하면 내 위치를 흔들 시민으로 성장해버릴 위험이 있다. 후자는 훨씬 간단한 데다 기득권에 대한 본질적인 도전이나 물음을 차단해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집게손 광풍에 짐짓 모르는 척 고개숙인 기득권 남성 사회는 한편으로는 그저 무지했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속내를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여성의 안전 같은 건 최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행태다. 진실 같은 건 어찌되어도 좋다는 기득권 특유의 한가함과 자신의 안위만을 앞세운 비겁함의 결합이다. 기업 역시 남성들을 주 소비자로 상정한 채 그냥 그 말을 들어주는 쪽을 택함으로써 대충 사태를 무마하고 넘어가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남성을 조롱?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운데…번지수 잘못 찾은 트집
유해한 남성성에 대해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누구도 교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은 여성들에게 동시대를 사는 남성과의 동행을 ‘절망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성을 샌드백 삼는 사회에서 펀치를 때리는 주체가 다름 아닌 남성이라면, 게다가 이를 보고만 있는 시스템이라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깨달음이다.
그 결과는 세계 최저 수준, 합계출산율 0.6대로 떨어지기 직전인 초저출산과 비혼 트렌드로 나타났다.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웬만해서는 결혼하거나 아이 낳을 결심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자리를 채운 건 ‘오직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는 신조 아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커리어·자기계발 열풍, 비슷한 길을 걷는 여성 동료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 등이다.
물론 일부 여성은 이 와중에 굳이 ‘페미니즘 반대’ 선언을 하는 식으로 극도의 자기방어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타깃이 되었을 때의 공격이 너무 극심하고 이를 지켜줄 시스템도 부재한 마당이니 일단 생존부터 하자는 입장일 것이다. 여러 단계로 내려찍힌 갑질에 의한 협박과 압박에 굴복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된 일이든 같은 여성들로선 모욕적이면서도 동시에 슬픈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23년에 소위 ‘페미’를 한다는 여성들이 프레임 단위로 ‘남혐 표식’을 심어넣을 만큼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 놀리기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싫어하는 것도 다 관심이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이들은 한국 남성에 대한 생각을 최소화한 채 ‘충족감 있게 독립적인 자기 삶을 사는 것이 먼저인’ 첫번째 여성 세대다.
메갈리아 로고가 남성을 향해 ‘악플’을 단 것이었다면 이 시대 극단적 페미니스트의 남성에 대한 관점은 ‘무플’에 가까워 보인다. 남성과 엮이지 않고, 탈(脫)가부장제를 통해서도 잘 살 수 있음을 증명하기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이들에게 고작 손가락 모양으로 남혐을 하려고 들었느냐는 트집이라니. 대체 언제적 얘기에 머물러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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