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을 악으로, 집단 이기주의로 여론몰이
의사 수, OECD와 단순 숫자 비교는 ‘왜곡’
저수가, 당연지정제 등 제도 개혁부터 해야
최고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무너지고 있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놓고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의협은 17일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예고하고,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일방적 의대정원 증원 저지 총파업 관련 전회원 대상 설문조사’를 시행중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대로면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의협이 매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통해 협의하고 있지만 양측 의견은 평행선에 가깝다. 대체 의사들 불만은 뭘까. 주수호 전 대한의사협회장을 13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주 전 회장과 일문일답.
-총파업 찬반 투표 두고 의료계 내부 분위기 어떤가.
“지금 내부에서 17일 집회를 앞두고 갈등이 많다. 이필수 현 의협회장 집행부와 최대집 투쟁위원장에 대한 회원들의 반발이 심하다. 특히 최 위원장을 두고 2020년 투쟁 과정에서 독선적이었고, 회장을 그만두고 나서 정치적 행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집회가 열리게 되면 이런 불만에도 다들 참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최 위원장은 14일 사임했다.)
-현 상황에 의료계 가장 큰 불만은 뭔가.
“윤석열 정부 분위기가 바뀌면서 의료계가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 특히 언로가 너무 막혀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이 양측 의견을 대등하게 내보내야 하는데,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서는 의사들 얘기는 거의 제대로 안 실어주고 일방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분들 얘기만 계속 실어주니까 지금 그게 제일 힘들다. 의사들이 이렇게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구나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우리가 꼭 거리를 나갈 필요 없다. 거리로 나가서 투쟁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국민한테 하고 국민이 설득이 돼서 그 이후로 정책들이 바뀌는 걸 원하는 거지 투쟁이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방적이라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데.
“정부가 보건의료 정책 전문가라고 하는 학자들의 의견들을 많이 인용하는데 그건 저쪽 의견이다. 그러면 이쪽 의견도 반 정도는 듣고 판단을 해야 하는데, 정부는 일부 보건의료 정책 학자들의 얘기는 선이고 의사는 악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자주 만나긴 하는데 거기서 괴리가 생기는 것. 의대 정원 문제는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 대한민국 의사가 부족하다는 근거가 있으면 우리 의사들이 당연히 의대 입학정원 늘리는 거에 찬성해야 하는 게 맞지만, 의사가 부족하다는 근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OECD 대비 의사 수가 적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자고 밀어붙이는 거에 대해 동의나 협상해선 안 된다. 그건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다. 또 현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정치적 이슈화하고, 의사들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가서는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그러면 인구대비 의사 수가 적다는 OECD 통계는 무의미한가.
“대한민국 의사가 OECD 국가들과 비교해 인구대비 적은 것은 팩트다. 그러나 부족하지 않다. 대한민국 의사들이 3배 이상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이 의료 혜택을 덜 받거나 제대로 못 받으면 우리나라 건강 지표가 나빠야 한다. 그러나 OECD 대비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통계와 함께 있는 데이터에서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OECD 국가보다 평균 2살 많고, 영아 사망률과 회피가능 사망률은 최저 수준이다.”
“OECD 국가와 우리나라를 직접 비교하는 데 무리가 있는 포인트는 또 있다. OECD 대부분 의사는 국가에서 등록금을 내줘서 의사가 되고, 대부분 공공의료기관에 취직하는 일종의 공무원이다. 이 사람들은 월급 받고, 연금도 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95%가 민간 의료기관이다. 우리는 자기 돈으로 의사가 되고 개업할 때 빚을 내서 개업해서 병원이 망하면 본인 책임이 되는 나라. 그러니 단순 비교를 해서 OECD 대비 의사 숫자가 적다면서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건 왜곡이고 선동이라는 것이다. 우리처럼 대부분 의사가 민간 의료기관을 세워서 근무하는 미국과 일본은 인구대비 의사 숫자가 우리나라랑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OECD 보건통계 2023’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30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적다. 일본은 인구 1000명당 2.6명, 미국은 2.7명이었다. OECD 평균 의사 수는 1000명당 3.7명이다.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평균인 5.9회보다 약 2.6배 많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OECD 평균인 80.3년보다 3.3년 길었다.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2.4명으로, OECD 평균인 4.0명보다 1.6명 적었다.
-대한민국 의사들이 3배 더 일하고 있다면, 의사들을 위해서도 의사 수를 늘리는 게 좋지 않나.
“대한민국 의사들이 왜 많은 수의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느냐는 문제의 핵심은 저수가다. 수가가 낮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많은 환자를 봐야지만 의료기관이 유지가 되는 시스템이란 말이다. 그 시스템은 놔두고 의사 수를 늘리면 당신네 일이 줄어들지 않겠느냐 말하는 거는 모순인 거다. 독일처럼 의사가 공무원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독일 의사들은 더 많은 의사가 공공의료 분야에 충원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근무 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간 자영업자면서 박리다매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의료기관이 유지되는 우리에겐 해당이 안되는 거다.”
-결국 환자 1인당 의사 상담 시간은 적으니 의료서비스 질이 낮은 것 아닌가.
“그건 맞다. 그런데 이를 위해선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 현재 대한민국의 획일적인 의료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환자와 의사 간의 계약으로 환자가 다른 환자 5명 내지 10명을 못 보더라도 나한테 시간을 할애해주면 내가 5명이나 10명분의 진료비를 내겠다고 하면 불법이다. 1시간 진료하던 3분 진료하던 동일한 수가를 받아야 되는 게 우리 의료시스템이다. 변호사 같은 경우에는 시간당 상담료를 받지 않느냐. 이런 상황에서 왜 의사들한테 환자 진찰하는 시간이 짧으냐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보나.
“어느 병원이나 똑같은 진찰료를 받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병원이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다 그 병원에 간다. 몰리는 병원이 있고, 또 몰리는 시간이 있는 거다. 예를 들어보면 영국 등에선 만약 애가 아프다? 주변에 있는 주치의가 있는 병원에 예약하는 게 순서다. 주치의가 필요하다 싶으면 상급병원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인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애가 아프다하면 동네병원에 예약하는 게 아니라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간다. 의료기관을 대하는 문화가 이렇게 다른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응급실에 경증 환자, 중증 환자 다 몰려 있고 실제로 응급실에서 봐야 될 중환자들에 대한 처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실손보험 설계자부터 처벌하라는 주장도 하던데.
“왜 중증 환자도 아닌 사람들이 응급실로 몰리는가. 실손보험이 응급실의 허들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실손보험에 가입돼있지 않은데 일요일에 대학병원 응급실 진료를 받으려면 수십만원이 든다. 그러면 포기하고 동네병원을 예약하게 되는 것. 그런데 실손보험이 이를 다 커버해주니 누구나 열만 나도 부담 없이 응급실에 방문하는 거다. 의료재정이라는 게 제한돼있고 이를 효율적으로 쓰도록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지금은 국민이 닥터 쇼핑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놨다. 그러니 소위 ‘빅5’ 병원에 다 몰려드는 거고, 이를 고치려면 정부가 제도를 고쳐야 한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늘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것 같은데.
“의대 정원 늘렸을 때 그 사람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은 돼 있느냐도 문제다. 시설만이 아니라 충분한 교수진들이 있어야 하는데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지금도 부족하다. 그래서 일부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는 기초의학 전임 교수가 없어서 서울에 있는 교수들이 가서 2박3일 동안 한 학기 강의를 하고 오기도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려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배출되기 어렵다. 또 의대 정원 늘리는 순간 필수 의료하는 의사들은 앞다퉈 피부, 비만, 성형 쪽으로 튀어나올 거다. 왜냐하면 의사 수가 더 늘어나기 전에 자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테니까. 정부 측에서는 의사수가 늘어나면 인기과 경쟁에서 밀려난 의사들이 필수의료쪽으로 넘어 올거라는 소위 ’낙수론’을 주장하는 데 2024년도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지원현황을 보면 전체 798명 모집에 1002명이 경쟁 지원하였으나 필수의료과는 미달하였다. 즉 인기과 경쟁에서 탈락하여 재수를 각오하고 지원이 합격인 필수의료과는 외면한 것이다.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의 논리인 낙수론이라는 게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지 밝혀진거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수련병원 140곳에서 20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를 모집한 결과, 소아청소년과는 정원 205명에 53명이 지원했다. 지원율은 25.9%에 불과하다. 소위 ‘빅5’라고 불리는 상급종합병원마저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만 정원을 채웠고, 세브란스병원은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필수 의료 붕괴 해결을 위한 대안은.
“첫 번째가 법적 문제다. 필수 의료과 의사들은 환자를 살린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진료 과정에서 결과가 안좋다는 이유로 십몇억 배상금을 매기거나 형사 구속하는 일들이 반복되니까 못 견딘다. 우리나라는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의사가 형사 기소되는 경우가 연간 1000건에 가깝다. 일본은 1년에 50∼100건, 영국, 미국, 캐나다 등은 1년에 두자릿수 혹은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그것도 보통 진료 결과가 아니라 금품 수수 및 성범죄 등 악의적 행동만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다. 의료는 선의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최선을 다해도 안좋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나라는 민사 소송을 하지 않나.
“민사 손해배상도 유럽 같은 곳은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공단이 해주는 거다. 그렇기에 배상액도 낮다. 우리는 맹장 수술을 예로 들어보면 수가에 위험도가 1만여원 포함돼 있다. 그런데 만약 맹장 수술하다 환자가 죽었다 그러면 십여억원을 물어내야 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주장한다. 위험도 수가 안받는 대신 공단에서 가져가고, 대신 문제가 생기면 너희들이 배상해달라. 이런 합리적인 요구는 왜 안받아주나.”
-복지부 장관과 일대일 공개토론 요청했었는데, 답변은 왔나.
“거의 두달이 돼가는데도 전혀 답이 없다. 처음에 용산 대통령실에 제안했었다. 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후에 복지부에서는 응답하지 않는다. 못한다, 안된다는 답이라도 줘야 하지 않나. 언제든 좋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응한다면 공개토론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의사들이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건 자신들의 불이익이 생길까 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의사이기 전에 환자와 국민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무너질 것을 걱정해서다. 이쯤에서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현재 의대 정원 문제만 아니라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의 위기 상황이 오게 된 근본적인 문제인 모든 의료기관을 국민건강보험 요양기관에 강제 편입하는 ‘당연지정제’ 등 규제 일변도 정책을 개혁할 각오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의료시스템이다. 외국에 있는 교포들도 아프면 국내로 돌아온다. 우리도 아프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치료받지 해외로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면 이럴 수 있을까. 우리가 볼 때는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다. 그러니 제도를 다시 세우는 게 우선이다라는 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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