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동양 악기로 서양 음악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동양 음악가와 서양 음악가의 협업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야금 전공자인 저와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등 서양음악을 전공한 팀원들이 함께하는 음악, 그게 바로 ‘닮음’의 음악입니다.”
25현 가야금 연주자 장희영은 크로스오버 앙상블 그룹 ‘닮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숙명여대 음대 석사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가스파레 스폰티니(Gaspare Spontini) 공립음악원에서 모던 작곡 박사 학위를 받았다. 9살부터 가야금을 배웠던 그가 갑자기 이탈리아로 간 이유는 뭘까. 그리고 그가 서양 음악가들과 함께 그룹을 만든 이유는 뭘까.
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 대표는 “그동안 국내 국악인이 외국의 대중음악을 기계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에 불과했다”며 “외국에 통할 수 있는 진짜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닮음’은 지난 7월에 결성됐고 9월 강원도 평창 메밀꽃 치유음악회에서 첫 공연을 했어요. 우리 전통 악기인 가야금과 성악가들이 함께 하는 공연을 보고 ‘신선하다’ ‘이색적이다’ ‘가야금의 소리가 세련됐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그런 반응이 나오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닮음’은 장 대표를 필두로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성악가들과, 그리고 객원 단원들로 구성돼 있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를 비롯해 일부 단원은 장 대표가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 인연이 됐던 사람들이다.
“가야금을 전문적으로 배웠다보니 이탈리아에서 배울 수 있는 박사과정 전공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던 작곡으로 지원했어요. 재즈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었거든요. 거기서 작곡도 했지만 편곡도 했고, 그때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서양 음악 전공자들과 함께 공연도 선보였습니다.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의 ‘닮음’이 나올 수 있었어요.”
가야금은 원래 12현이 전통이다. 12현은 민속악과 산조들을 연주하는 악기다. 현대곡들도 연주하지만 현이 12개라서 음역대가 넓지 않다. 반면 25현 가야금은 개량 가야금으로 3옥타브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 넒은 음역대 덕분에 클래식을 비롯해 현대 음악도 연주할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대 25현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12현 가야금을 했지만 활용도가 25현 가야금이 더 많다는 점에서 더 끌렸죠. 그래서 과감하게 도전을 했어요.”
“외국 무대에서도 통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클래식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가서 공부를 했다”던 장 대표는 ‘닮음’을 통해 국악과 클래식이 접목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고유 음악인 국악에 외국의 클래식을 비롯해 팝까지 가미해 국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싶어요. 이탈리에서의 유학과 활동 경험을 살려서 세련된 감각으로 좁은 국내시장을 벗어나 드넓은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악과 클래식이 함께하는 ‘닮음’을 통해 세계 음악계를 정복하고 싶어요.”
그렇기 위해 장 대표는 지금도 ‘닮음’의 변화를 시도 중이다. 기존 3명 멤버에서 15명까지 단원을 확장했다. 단순히 서양 성악가들이 아니라 바이올린·피아노 등 서양 악기 연주자와 대금·해금·아쟁 등 국악 악기 연주자들까지 다양하다.
“국악과 클래식, 재즈, 일렉트로닉 뮤직까지 다양한 장르가 섞이고 다양한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년 봄에는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서 클래식과 국악, 가곡, 현대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지난 11일에는 서울 중구에 있는 VA 갤러리에서 미술과 함께하는 공연도 선보였다. ‘코시의 라이브 페인팅 인 서울’ 행사로, 장 대표는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는 “코시(KOSH·본명 고서희) 작가의 ‘에너지 페인팅’ 방식에 맞춰 저음 가야금과 25현 가야금을 활용해 합동 공연을 선보였다”며 “일정한 틀에 국한되지 않고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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