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유럽의 봉우리’인 피코스 데 에우로파 산맥 자락에 스페인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곳이 있다. 작은 마을인 코바동가이다. 코바동가의 주변 지역은 전체가 종교적인 성역이다. 8세기 무렵 이곳에서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세워졌고, 스페인 천년왕국이 시작됐다.
험준한 산과 협곡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왜 스페인 사람들의 정신적인 기원이 되었을까? 코바동가에 깃든 역사와 전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스페인의 모태가 된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운 펠라요(Pelayo) 왕은 718년 무어인들의 통치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킨다. 과도한 조공이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와 코르도바의 이슬람 왕인 무누사가 펠라요 왕의 여동생에게 흑심을 품어 결혼을 요구해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
반란의 동기가 어쨌든 간에 펠라요 왕은 722년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코바동가에서 무어인들을 처음으로 격파한다. 코바동가 전투의 승리에 대한 전설은 흥미롭다. 펠라요 왕이 무어인들과의 전투 과정에서 이 코바동가의 동굴로 피신했다. 그 안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성모 마리아가 강림했다. 성모의 도움으로 이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코바동가 전투가 스페인 국토수복전쟁인 레콩키스타의 시작이라고 본다.
성모의 전설을 품고 있는 코바동가의 신성한 동굴은 바위산 중턱에 있다. 바위산 한가운데를 파서 조그만 성당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성모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103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약속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숨이 차오를 때쯤 동굴 안에서 아스투리아스의 수호성인이자 성모인 코바동가 비르겐(Virgen de Covadonga)을 만나게 된다. 지금도 성모상이 있는 조그만 제단에서 매일 미사가 열린다. 성모상 옆쪽에는 펠라요 왕과 왕비의 무덤도 있다.
동굴을 지나면 또 다른 장엄한 풍경이 나타난다. 협곡 사이에 두 개의 높은 첨탑을 가진 코바동가 대성당이다. 코바동가 산에서 추출한 분홍빛이 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눈에 띈다. 대성당 제단 뒤에는 펠라요 왕이 만들어 내걸었다는 ‘승리의 십자가’ 복제품이 있다.
코바동가는 스페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청정지역이다. 파라도르를 만들었던 알폰소 13세가 1918년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종교적 영성과 함께 스페인에서 손꼽히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은 관광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성스러운 동굴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이는 아래쪽 저수지의 왼쪽에 분수가 있다. ‘결혼 분수’로 불린다. 아스투리아스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코바동가의 성모님이 내려주는 이 분수를 마시는 여성은 1년 안에 결혼한다고 한다. 그래서 짝을 찾고 싶은 이들이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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