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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화마로부터 집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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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08 23:11:41 수정 : 2024-01-08 23: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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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숭례문 등 옛 건축물
화재 방지 문양·조각 등 담아
현대선 스프링클러 등 설치
防火, 주술서 과학으로 대체

날이 춥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구공탄을 아궁이에 넣고 방을 덥히던 시절 이야기다. 그 시절, 연탄은 그전의 나무 땔감에 비해 작은 부피로 많은 열을 낼 수 있고 다루기도 편리했지만, 일산화탄소를 배출해 안타까운 인명 사고가 신문의 사회면을 채우곤 했다. 요즘은 가스나 기름보일러를 이용한 온수 파이프를 방바닥은 물론 거실과 화장실 바닥까지 깔아 따로 아랫목이 없다.

나무, 연탄, 석유, 도시가스 등 땔감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변했지만, 무엇이 되었건 땔감에 불을 붙여 실내 공기를 데우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처럼 고마운 불이지만 자칫 부주의하면 불은 금방 화마로 돌변해 집과 인명을 삼키려 달려드는 마각을 드러낸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나무로 집 짓고 살던 전통사회에서 화마로부터 집 지키는 일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나무는 산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공하기 쉬우며 가볍고 강해 최적의 건축 재료이지만 화재에 약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1997년, 경복궁 경회루 연못 준설 공사를 위해 물을 뺀 적이 있는데 이때 청동으로 만든 용을 발견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경복궁을 고종 때 중건하면서 공사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에 1865년 용 한 쌍을 만들어 1867년 경회루 연못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1997년 발견된 용은 그중 하나다. 화재로부터 궁궐을 보호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2000년, 나는 경복궁 근정전 수리를 위해 근정전을 해체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근정전 상층 종도리 장여 중앙부에서 상량문과 함께 세 종류의 부적을 발견했다. 붉은 종이에 먹으로 그린 ‘용(龍)’ 그림 부적 한 장과 역시 붉은 종이에 쓴 ‘수(水)’ 자 부적 두 장, 그리고 육각형 은판 ‘수(水)’ 자 부적 다섯 개다. ‘수(水)’ 자 부적은 작은 용(龍) 자 1000자로 구성되어 있고 육각형 은판 ‘수(水)’ 자 부적은 어른 엄지손톱만 한 육각 은판 각 모서리에 음각으로 ‘수(水)’ 자 여섯 개씩을 새겼다. 용은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로 물을 다스린다고 믿었고 육각형 은판을 서로 붙이면 수(水) 자가 세 개 모여 아득할 묘(?) 자가 되는데 이는 한없이 넓은 물의 모양을 뜻하기에 화재 방지를 위한 부적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숭례문의 경우, 현판과 연못에 화재 방지를 위한 바람을 담았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숭례문 남쪽에 있는 관악산은 불의 산이어서 관악산의 불기운이 한양도성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를 위해 숭례문 앞에 연못을 파고 여기에 부적을 넣었다.

이 연못에 대한 그림으로 인조 7년(1629)에 그린 ‘이기룡필남지기로회도(李起龍筆南池耆老會圖)’가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기룡필남지기로회도’는 말 그대로 숭례문 밖 연못 ‘남지’에서 기로회를 갖는 모습을 도화서 화원 이기룡이 그린 그림이다. 당시에는 여러 사람이 계(契) 모임을 가진 뒤 참석한 사람 수만큼 그림을 똑같이 그려 나눠 갖는 일이 흔했다. 여기서 ‘기로회’란 ‘기로’의 모임이고 기로는 정2품 이상 문관 출신 퇴직 관료를 나라에서 예우하기 위한 관청인 ‘기로소’의 구성원이다. 기로회를 요즘 말로 하면 ‘국가원로회’ 정도 될 듯하다.

남지는 그 후 알 수 없는 시점에 메워졌고 1926년 건축공사 중 남지 터에서 몸은 거북이고 머리는 용 모양을 한 청동 동물상이 발견되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동물상은 상하로 분리되어 열 수 있고 그 내부에 그림이 무슨 상징처럼 새겨져 있다. 가운데 불 ‘화(火)’ 자를 두고 물 ‘수(水)’ 자와 팔괘(八卦)가 두 겹으로 빙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불을 물로 에워싸는 것은 물로 불을 제압하고자 하는 표현이고, 팔괘는 음양의 세계관을 토대로 삼라만상을 나타내는 것이니 음양의 조화로 불이 일어나지 말라는 바람이 이 그림에 담겨 있다. 이 그림을 따로 종이에 그려 동물상 내부에 보관한 것도 당시 함께 발견되었다. 남지 안에 별도로 밀봉한 공간을 두어 동물상을 넣어 두었기에 물이 들어가지 않아 종이 부적까지 온전히 그대로였다. 이로써 불에 대한 옛사람의 경계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현판 글씨는 보통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쓰는데, 숭례문 현판 글씨는 위에서 아래로 세로로 썼다. ‘숭(崇)’ 자는 예서체로 쓰면 불이 타오르는 형상이고 ‘예(禮)’ 자는 오행설에 의하면 불을 뜻한다. 그러므로 ‘崇禮’를 위아래로 겹쳐 쓰면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이 된다. 불은 불로써 맞불을 놓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관악산의 화기를 현판 글씨의 형상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니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으려는 장치는 ‘남지’라 불린 연못, 남지 안의 부적 그리고 숭례문 현판 이렇게 삼중이었던 셈이다.

민간에서도 화재 방지 대책은 그 규모만 다를 뿐 매한가지였다. 지금도 한옥을 지으면 대청마루 위를 지나는 마루도리에 상량한 날짜를 쓸 때 흔히 상량문 처음과 끝에 각각 용 ‘용(龍)’ 자와 거북 ‘귀(龜)’ 자를 쓴다. 용과 거북은 모두 물에 사는 동물이니 ‘이들이 있는 곳은 곧 물’이라는 논리로 화재를 억제하고자 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요즘은 화재를 일찍 발견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 연기와 불꽃 감지기 등 각종 감지 장치를 사용하고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한다. 이와 함께 불이 쉽게 붙지 않는 건축자재의 사용,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화재가 다른 곳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화문의 설치, 건축물이 붕괴하는 시간을 늦추어 대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 등을 법제화하고 있다. 화재에 대한 대책이 주술에서 과학으로 바뀐 셈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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