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부터 전국 곳곳 집단행동
서울서만 1000여명 사직행렬
尹 “전 정부처럼 넘기지 않아”
의협 집행부 2명에 면허정지
전국서 ‘전공의 사직서’ 수천장 쌓여
“현장 과부하 초읽기”
“암환자 언제 나빠질지 모르는데”
“의사들 이래선 안돼” 환자들 호소
세브란스 600명 등 ‘집단 사직’
경남 350명… 인천도 270명 넘어
“교수가 당직 떠맡아” 병원도 비상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 수천명이 집단 사직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600명이 넘는 전공의가 사직서를 쓰는 등 서울에서만 1000명 이상, 전국적으론 수천명이 사직 행렬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20일부터 자리를 비우기로 함에 따라 의료 대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도 강경 대응 방침을 꺾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본격화하는 것과 관련해 보고를 받은 뒤 “지난 정부처럼 지나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대한의사협회 집행부 2명에게 면허정지 행정처분에 관한 사전통지서를 발송하며 양측의 대립은 격화할 전망이다.
의료대란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19일 이미 전공의 일부가 자리를 비운 서울 세브란스병원. 겉으론 여느 때처럼 병원 안은 환자들로 가득했고, 대부분의 환자는 이전과 다름없이 진료를 받았지만,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선 전공의 파업 장기화에 따른 진료·수술 차질에 대한 두려움이 감지됐다.
혈액암을 앓는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박윤경(43)씨는 “당장 수술이나 치료가 밀린 건 없다”면서도 “의료 파업이 몇 주 동안 지속되면 수술·치료가 지체될까 걱정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취재진이 이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의료진들은 전공의 파업에 따른 불확실성에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위험군과 난치 질환자들은 치료 기간이 밀리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 걱정이 더 컸다. 박씨는 “(환자들) 항암 순서가 있는데 치료가 늦어지면 전이 위험도 있고 암이 재발할까 두렵다”며 “항암으로 아기나 보호자는 안정감이 생기는데 기약 없이 (정부와 의사가) 싸우고 있으니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에서 온 A(34)씨도 전공의 파업으로 다섯 살 된 딸의 검사가 취소되자 막막해했다. A씨 딸은 희귀질환인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을 앓고 있다. A씨는 “오늘 척수 검사하는 날이어서 새벽 일찍 집에서 왔다”며 “8시쯤에 ‘척수 검사를 전공의가 하는데 파업 때문에 예정된 척수 검사를 못 할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다음 주쯤에 하더라도 기존 담당이 아니라 다른 분께 받아야 할 텐데 앞으로 일정을 안내받지 못해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1년 치료 주기가 있고 치료가 막바지 단계여서 병원이나 의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뼈암을 앓는 B씨도 “암 환자는 언제 증상이 안 좋아질지 모르는데 의사들 파업하는 게 두렵다”며 “주기적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선 치료가 밀릴까 봐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세브란스병원 일부 전공의들은 예고된 파업 일정보다 하루 일찍 근무를 중단했다. 병원 측은 이번 주 수술 일정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등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세브란스병원 소속 한 교수는 “지난주 월요일만 해도 이런 파업 얘기는 전혀 몰랐다”며 “환자들께 위해를 가하려고 한 게 전혀 아닌데 급작스레 이렇게 돼서 너무 안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교수는 “전공의 없이 가능한 수술을 수행하고 인력, 일정 등을 조율하면서 다들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식도암 4기 동생이 있다고 밝힌 C씨는 “환자들 두고 의사들이 이래선 안 된다”며 “동생이 아프면 병원에 와야 하는데 의사들이 없으면 대체 어떻게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불안감은 이제 현실이 됐다. 이날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서울의 병원뿐 아니라 제주 유일 국립병원인 제주대병원에서도 소속 전공의 75명과 ‘빅5’ 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서 파견 온 전공의 20명을 포함해 전체 95명 중 73명(76.8%)이 사직에 동참했다.
경남 지역 대학병원에서는 이날 오후 6시 기준 전공의 479명 가운데 351명이 사직서를 냈다. 양산부산대병원 138명, 진주경상국립대병원 121명,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71명 등의 순이다. 전공의 319명이 근무 중인 전남대병원에선 이날 오후 5시30분 기준 224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조선대병원은 108명, 광주기독병원은 26명이 사직했다.
강원에선 이날 오후 5시 기준 강원대병원 전공의 101명 중 64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오전에는 연세대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전공의 152명 중 97명이 사직했다.
인천에서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지역 전체 전공의 540명 중 273명이 사직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하대병원이 100명으로 가장 많았고 가천대 길병원 71명, 가톨릭대인천성모병원 60명 순이었다. 부산에서도 부산대병원 소속 전공의 100여명과 동아대병원 전공의 10명이 사직서를 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20일 낮 12시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기로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전공의들의 공백이 현실화하면서 병원들도 비상이 걸렸다.
동아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단체행동이 장기화할 경우 의사 보조 인력을 동원해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당장 전공의들이 맡아 오던 당직근무 등의 업무를 전문의 교수들이 떠맡아야 해 과부하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과 부산 등 각 지방자치단체는 비상진료대책 계획 마련에 부산한 분위기다. 서울시는 의료계 전면 파업에 대비해 시립병원 8곳의 내과·외과 등 필수의료 과목 진료를 오후 8시까지 연장하고, 서울의료원·보라매병원·동부병원·서남병원 응급실을 24시간 가동하기로 했다. 부산시도 부산 지역 25개 종합병원에 환자를 분산 입원시켜 계속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20일에는 의대생들의 집단행동도 예고돼 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20일을 기점으로 전국 의대생들이 동맹휴학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행동을 하기로 결의한 상태다. 원광대 의대의 경우 160여명이 17일에 집단 휴학계를 냈다가 이날 철회했는데, 이들은 20일에 다른 대학들과 일정을 맞춰 다시 휴학계를 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20일에 전국 의대에서 대규모 휴학 신청 또는 수업 거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의사들의 집단 반발에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해 온 정부는 이날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114개 공공병원의 진료 시간 확대, 비대면 진료 허용 등 비상상황 대비 계획을 밝혔다. 또 의사 2명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시작했다.
정부는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김택우 위원장과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 등 집행부 2명에게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교사했다는 이유로 의사 면허정지 행정처분에 관한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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