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연금개혁 시점 이후 납입되는 모든 보험료를 ‘신연금’ 기금으로 조성해 미래세대도 국민연금을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게 하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안이 나왔다. 개혁 시행 전에 적립된 ‘구연금’의 경우 재정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데 이 부족분은 정부 재정으로 메우자고 KDI는 제안했다. 보험료 인상 등 모수 조정이 한계가 있는 만큼 구조개혁을 통해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완화하고 재정 건전성도 지키자는 취지다.
KDI의 이강구·신승룡 연구위원은 이런 내용의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을 21일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될 경우 적립기금은 2023년 1015조원에서 2039년 최대 규모인 1972조원을 기록한 뒤 감소해 2054년 소진된다. 기금이 소진된 이후 약속된 연금 급여를 주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35%까지 올려야 한다. 또 모수 조정을 통해 보험료율을 18%까지 올리더라도 2080년에는 전체 적립금이 소진될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진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에서 세대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앞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가입자가 낸 보험료와 기금의 기대운용수익의 합에 비해 사망 때까지 받을 것으로 약속된 총급여액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에 ‘기대수익비 1’이 보장되는 완전적립식 신연금 도입을 제안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개혁 시점부터 납입되는 모든 보험료는 신연금의 연금기금으로 적립되고 향후 기대수익비 1의 연금 급여가 지급된다. 개혁 이전에 납입한 보험료는 구연금 계정으로 분리되는데, 연령대에 따라 차등적으로 1이상의 기대수익비가 설정된다. 이런 구조에서 구연금의 경우 적립금이 쌓이지 않아 재정부족분(미적립 충당금)이 발생하게 되는데, 연구진은 이를 정부 재정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개혁이 추진될 경우 1960년대생의 기대수익비는 2를 넘고, 1974년생의 기대수익비는 1.5 내외로 하락하는 가운데 2006년생 이후 기대수익비는 1로 안정된다. 연구진은 당장 이 개혁이 실시되면 구연금 재정 부족분의 현재가치는 올해 기준 609조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모수 개혁과 달리 기대수익비 1을 목표로 하는 신연금을 도입하면 연금재정이 항구적으로 안정된다”면서 “신연금의 보험료율을 15.5% 내외까지만 인상해도 40%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런 방안이 지체돼 2029년 이행될 경우 재정 부족분이 869조원까지 불어난다며 빠른 시일 내에 구조개혁이 단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보험료율을 일시에 올리는 게 쉽지 않은 만큼 ‘9%→12%→15.5%’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나 0.5%포인트씩 13년 동안 인상시키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기대수익비가 1에 그치기 때문에 ‘사적보험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데다 재정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증세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공적연금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다”면서 “노후소득을 전적으로 개인의 자발적인 저축에 의존할 경우 일부 고령층의 노후 소득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다수 국가의 경험이며, 이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강제저축은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해서 연구진은 “(재정부족분을) 국채 발행해서 충당하는 것은 미래세대에 부담시키는 것이지만 세금으로 확보하거나 현재 지출들을 줄여서 마련하는 것은 현재 세대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라면서 “많은 부분 국채로 발행하겠지만 실제적으로는 세금으로 확보하거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서 현재 세대에게도 일부 부담을 시키는 그런 방식으로 구연금의 재정부족분을 충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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