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의대 정원 10% 감축 합의가 의료공백 사태 초래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휴진에 이어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까지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후배 의사인 전공의뿐만 아니라 선배 의사인 개원의 단체, 심지어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에는 정부와 대립해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자신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아무나 대신할 수 없는 의료전문인력이기 때문에, 그동안 병원들이 파업으로 인해 진료 차질을 빚으면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던 선례가 자신감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의대 증원을 발표한 이후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발생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혀왔다.
보건복지부는 업무 복귀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 의료진에 대해 의사 면허 취소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법무부는 파업 주도자들에 대해 구속 수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 등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으로 전국 100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1만3800명 중 74.8%가 집단휴진 및 업무중단에 참여하고 있다. 병원을 무단으로 이탈해 출근하지 않고 있는 전공의 수도 8000여 명에 이른다.
의과대학 학생들의 동맹휴학 또한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3일 동안 전국 34개 의과대학에서 재학생 1만1778명이 휴학계를 제출했다. 전국 의과대학 재학생의 62.7%에 해당하는 1만8793명이 참여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강경하게 나오자 오히려 반발하는 분위기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전 회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라고 적었다. 그는 “의사들이 겁을 먹고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라며 “의료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그가 예언한 대로 의료대란이 일어났다.
의과대학 학생들의 동맹휴학에 대해 교육부는 “동맹휴학은 대학 학칙상 휴학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학사 관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곱지 않다.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을 다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롱하는 글들이 연이어 게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대생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은 “휴학계를 제출하더라도 실제로 1년 유급되는 경우는 없다. 인턴 기간 동안 결원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휴학계를 낸 학생들도 모두 다음 학기에 복학하게 되어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휴학하면 결국엔 다 같이 복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동조했다.
의사들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그동안 파업 등 단체행동을 통해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2000년 의약분업 제도가 도입되면서 병원에서 약을 조제할 수 없게 되자 의사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집단휴진에 들어가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이 발생하자 정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시했다.
의료수가 인상, 전공의 처우 개선 등과 함께 의대 정원을 10% 감축하기로 합의했는데 이 때 시행된 정원 감축 정책은 훗날 의료 인력의 부족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2014년에는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했지만, 이에 반대한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선언하며 집단휴진을 강행했고, 결국 정부는 이를 철회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을 때,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강행했다.
정부와 여당은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즉시 총파업을 결정했으며, 전공의들은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
이들이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분만실, 수술실, 투석실, 응급실 등 필수적인 의료 인력까지 모두 참여하는 전면 파업에 돌입하면서 ‘의료 대란’이 발생했다. 정부는 다시 한번 협상을 시도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반발해 파업 등 집단행동으로 맞섰고, 그 결과 지난 9월 의료계와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 당시 의과대학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의사 국가시험도 집단으로 거부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철회한 이후에도 “국가시험 재응시는 불가하다”고 밝혔으나, 의료계의 지속적인 요청 끝에 국가고시 응시 기회를 다시 부여했다.
재시험의 기회를 얻어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한 학생들은 합격하여 의료인 자격을 얻었다.
그때 동맹 휴업에 나섰던 의대생들과 집단 휴진을 했던 전공의들도 모두 학업과 업무에 복귀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한 고발 조치를 철회했다.
이렇게 매번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지 못하다보니 ‘의사불패’라는 말까지 생겨났고, 이것이 바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이유로 의료계도 ‘이번에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파업 등 단체행동에 나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부가 버티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현재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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