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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있는 세계’로 가는 日… 방향 틀었지만 속도조절 관측 [日 17년 만에 금리 인상]

입력 : 2024-03-19 19:04:18 수정 : 2024-03-19 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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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 정책 해제

장기 경제 침체 속 디플레이션에 허덕
33년 만에 5%대 임금 인상률 기록해
소비자물가 상승도 22개월째 2% 이상
물가·임금 상승 선순환 시작에 자신감

증시에 찬물·부동산 시장 충격파 우려
“당분간 금융완화 정책 환경 유지 방침”

일본은행이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7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하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한 것은 장기간 지속된 저성장, 저물가 탓에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어온 통화정책을 정상화한다는 의미다. 일본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에서 출구를 찾아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다만 일본은행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분간은 추가로 금리를 올리지 않고 국채 매입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현지언론은 전했다.

일본이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19일 도쿄 한 외환거래 중개업체의 직원 위에 설치된 모니터에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표기돼 있다.
도쿄=로이터연합뉴스

◆‘임금·물가상승 선순환’… 장기불황 탈출 기대

자산 거품이 터지면서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려온 장기 경제 침체에 허덕여온 일본은 그동안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에 빠져 있었다. 이에 대응한 대표적인 정책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었다.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은 그간에 전제로 내건 안정적인 임금 인상과 2%대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만족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또 물가에 반영되는 선순환이 시작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일본 최대 노조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15일 발표한 1차 노사교섭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5.28%로, 지난해 1차 집계(임금인상률 3.80%)를 넘어섰다. 5%대 임금인상률은 1991년(5.66%) 이후 33년 만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지난해 2.3%로 목표치인 2%를 넘어섰고, 지난 1월에도 2% 오르며 22개월 연속 2% 이상을 기록했다.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저물가, 저임금, 저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은 2016년 2월부터 단기 정책 금리를 -0.1%로, 장기금리는 연 ±1%를 유지하며 시장을 돈을 풀어 경기부양에 골몰해 왔다.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열리기 전 일본은행 내부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임금인상이 중소기업으로까지 얼마나 확산될지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었지만 물가 상승이 기업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임금 상승이 다시 물가에 반영되는 선순환에 들어섰다고 보는 견해가 강했다.

 

회의에서도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 7명은 찬성하고 2명은 반대하는 등 소수의견이 나왔다.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없다는 점도 일본은행이 판단을 더는 늦추지 못한 요인으로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최근 국회에 출석해 “일본 경제 변혁의 발소리에 시장 관계자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한다”고 경제회복에 자신감을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대응을 지속해온 일본 금융정책의 대전환”이라고 평가했다.

◆시장 충격 최소화 위해 금리인상 속도 조절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을 예상해 온 시장의 시선은 이미 마이너스 금리 해제 이후에 쏠려 있다.

우선 주목되는 게 환율이다. 최근 엔화는 달러당 150엔 안팎에서 거래되며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엔저현상에 큰 변화가 없었다. 금리가 낮은 엔을 팔고,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들이는 자금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은행의 이날 결정으로 이런 기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를 인하할 경우 금리 격차가 줄어들게 되고 엔화 가치도 끌어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연준은 19∼20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현재 5.25∼5.50% 기준금리를 5회 연속 동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올해 내 2차례의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 결정을 더 늦추지 않은 배경에도 정책 전환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NHK는 “시장에서 일본 금리가 재차 오를 것으로 예측이 커지면 엔고로 전환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엔저로 확보한 수출품 가격경쟁력의 훼손으로 이어져 일본 기업의 수익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사상 최고치 경신하며 상승세가 현저한 일본 증시에 찬물을 끼얹을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정책 수정 이후 민간은행이 단기간에 금리를 인상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은 금리인상론이 대두되고서 주택 대출, 예금금리 등 실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려주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금리 있는 세계로’라는 시리즈 기사에서 “40대 이하는 금리 상승의 감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주택론 이용자나 은행 자금을 빌린 중소기업에 새로운 부담이 가해질 것이라고 소개했다.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리 방향을 틀었으나 시장 충격을 감안해 상승 속도는 느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은행이 연내 단기 금리를 0.25%까지 올린 뒤 내년에서야 0.5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NHK방송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해제했지만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고 당분간은 금융완화 정책 환경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도쿄·워싱턴=강구열·박영준 특파원, 서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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