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방지·근로자 보호 취지 도입
中企 “나이 많으면 사고 위험” 외면
“고령 직원들은 순발력이 떨어지잖아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마음 졸일 일이 더 많죠. 올해 고령자를 뽑을 계획은 없습니다.”
불도저·굴착기 같은 특수차량을 정비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김창웅(70) 카라인종합정비 대표는 올해 고령자 채용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인천 서구에 있는 정비공장에는 18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 50대 2명, 60대가 2명이다. 김 대표는 “건설 현장에 쓰이는 특수차량을 정비하는 현장 특성상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을 해야 한다”며 “기본 3m, 더 높은 곳은 7m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발 한번 삐끗하면 산업재해”라고 고령자 채용을 꺼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19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리스크’로 산업 현장에서 고령자 채용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사고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2022년 1월 시행됐다. 올해 1월27일부터는 50인 미만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법에 따르면 기업 경영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중대재해법 시행 뒤 고령 직원을 내보낼 고민을 하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전남 화순군에서 35년째 소규모 종합건설업체를 운영하는 박경재(65) 상산건설 대표는 “중대재해법 시행 뒤 고령자들이 다칠까 항상 불안한 마음”이라며 “건설업을 접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원 17명인 상산건설은 현장 인력을 주로 계약직이나 일용직으로 고용하는데 이 중 3분의 2가 60세 이상 고령자다. 박 대표는 “고령자는 기민함이 떨어지고, 기존에 앓던 질병 영향으로 현장에서 다칠 가능성도 크다”며 “저혈당이 있는 직원이 현장에서 상태가 악화해서 다치거나 사망하면 그게 다 사업주 책임 아니냐”고 했다. 이어 “젊은 사람은 지원을 안 하고, 외국인 노동자는 배정받는 데 오래 걸려 고령자를 쓰고 있지만 고민이 크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의 말처럼 청년층 유입이 원활하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고령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고령자 노동시장의 수요자 측 분석’ 보고서에서 따르면, 사업체 763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고령 근로자 고용 이유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응답이 44.20%로 가장 높았고, ‘주요 업무의 특성상 고령자가 주로 지원해서’라는 응답이 33.5%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한국건설기계정비협회 명예회장인 김 대표도 회원사들이 고령자 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협회 회원사들을 보면 용접이나 특수 기술자들 경우 80세 직원들도 적지 않다”며 “중대재해법 시행 뒤 고령 직원을 줄이겠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산업안전대진단’ 등 중대재해 예방에 필요한 업무가 부가로 늘었는데 고령 근로자들이 이를 새로 익혀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부산 강서구에서 전문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안병호(56) 창성공영 대표는 “작업 전 안전교육, 작업자 명단 제출 등 서류 작업이 늘었는데 일평균 1시간은 걸리는 일”이라며 “복잡한 서류 작업을 고령의 근로자들이 일일이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창성공영은 전체 직원 7명 중 2명이 60대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중대재해법이 산재를 막고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이지만 결국은 근로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사업주 처벌만을 위한 법이며, 대표가 구속되면 운영이 불가능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회사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라고 했고, 박 대표는 “사업주를 처벌할 게 아니라 자동차 사고처럼 보험사가 과실을 따져 책임을 묻는 쪽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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