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그는 18세기 중반에 태어나서 19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다. 1789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4세에 의해 궁정(宮廷)화가로 임명됐다. 궁정화가란 스페인의 왕실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고야는 왕실을 그린 작품보다는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 등 미술 교과서에 실린 작품으로 더 알려져 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궁정화가는 왕과 왕비, 그 가족들을 그렸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기록사 또는 기록비서관 정도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직업이었다. 이들은 스페인에서 선망받던 직업이었다. 무명의 화가도 궁정화가로 임명받으면 부와 명예가 한꺼번에 보장됐다.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왕실 작품을 그렸지만, 그밖에 다른 서민들을 묘사하는 작품도 많이 남겼다는 점에서 다른 궁정화가와 대비된다.
유럽 여행을 하던 중에 한 박물관 컬렉션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 없는 고야의 그림을 발견하고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궁정화가로서 그의 화풍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작품 <마누엘라 카마스와 데 라스 헤라스(Manuela Camas y de las Heras)>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마누엘라 까마스 부인이다. 그녀는 바로 고야의 친구이자 조언자였던 후안 아구스틴 세안 베르무데스의 배우자였다. 그녀의 드레스와 머리 장식을 묘사한 섬세한 붓 터치는 부인의 우아함을 잘 나타낸다. 고야가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익힌 로코코 화풍을 아낌없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야는 유명한 궁정화가였지만 기록 화가이기도 했다. 기록 화가로서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그림은 바로 <칼을 가는 남자(El Afilador)>이다. 서민적인 거친 화풍이지만 세밀하다. 작품의 주인공인 남자의 얼굴은 피로에 찌든 것처럼 보인다. 그림을 잘 보면 칼을 가는 남자의 옆으로 기계의 열을 내리기 위해 떨어지는 미세한 물줄기까지 묘사하였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했던 시절에 이에 대항한 민중들이 유일한 무기였던 칼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기록 화가로서의 또 다른 작품은 <전쟁 장면(Escena de guerra)>이다. 나폴레옹 점령 시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회색 하늘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 황량한 풍경 속에서 도적 떼가 몇몇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흰옷을 입은 사람이 두 팔을 들고 저항하는데 아마도 자신의 결백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작품과 비슷한 <1808년 5월 3일 또는 “처형”(El 3 de mayo en Madrid o “Los fusilamientos”)>이라는 작품은 더 유명하다. 스페인 독립전쟁 시절 나폴레옹 군인들이 스페인 민중들의 봉기를 진압하던 장면을 묘사한다. <전쟁 장면(Escena de guerra)>과 완전히 같은 구도로 그렸다. 오른쪽에는 총을 쏘는 사람을, 왼쪽에는 처형당하는 사람을 배치했다. 비슷한 시기에 그렸지만, 화풍은 사뭇 다르다. <전쟁 장면(Escena de guerra)>이라는 그림은 마치 급하게 스케치 화풍으로 그린 듯하지만, <1808년 5월 3일 또는 “처형”(El 3 de mayo en Madrid o “Los fusilamientos”)>이라는 작품은 프랑스 군인들과 겁에 질린 스페인 민중들의 표정까지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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