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시간 주권 확대’ 공감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 무분별 확산은 경계
기본 소득 차이도 유럽식 적용 걸림돌
한국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의 질 낮은 일자리’로 통용되곤 한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인 시간제 일자리를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기 어려운 이유다.
17일 노동계에 따르면 ‘노동자 시간 주권 확대’는 노동계에서도 필요성이 높다고 보는 의제다. 일·생활 균형을 위해 재택근무, 시차출근제 등 다양한 근무형태가 선택지로 놓여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영계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더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계에서 보는 ‘유연성’과 경영계가 주장하는 ‘유연성’은 차이가 있다. 노동계는 경영계에서 원하는 대로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운영하면 결국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정엽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1 본부장은 유연화를 이야기할 때 실노동시간 단축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동자들이 원하는 시기에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확대하는 중요하며, 그것이 세계적 추세이자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강조하는 노동자 시간 주권의 확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제 일자리의 무분별한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 전환은 꿈꿀 수 없는 나쁜 일자리로 자리 잡은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2013년 박근혜정부 시절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이 비판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당시 정부는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겪지 않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정책으로 ‘시간제 일자리 확산’을 내놨다. 구체적으로 2017년까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93만개를 새로 만들어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단 계획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4월 발표한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2만4799원으로 비정규직(1만7586원)의 1.4배다. 박근혜정부가 정책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정규직 대비 시간제 일자리의 시간당 임금은 2012년 기준 50.7%였다. 이 때문에 당시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질 낮은 일자리 양산 정책’이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유럽 선진국은 기본 소득이 높아 시간제로 일해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단 점도 한국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 선진국은 성별, 직업, 소득 등에 따른 기본 격차가 적고, 소득이 높을수록 세율이 높아 굳이 장시간 근로를 할 필요가 없다”고 짚었다.
‘유연한 근로 제도’에 더해 ‘유연한 육아휴직 사용’도 국내에는 적용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은 육아휴직을 한 번 쓸 때 30일 이상, 2회로 나눠 쓸 수 있는데, 네덜란드는 육아휴직을 시간 단위로 쪼개 쓸 수 있다. 저출생 문제가 국내에서 심각하자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런 유럽 국가들의 선례를 본떠 제도를 유연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네덜란드는 이미 시간 단위로 일하고, 시간 단위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 완전히 자리가 잡힌 나라”라며 “한국은 육아휴직을 시간 단위로 쓸 정도로 인사관리 체계 등이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용 시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입됐을 때 인사관리 체계가 잘 잡힌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 격차, 그에 따른 박탈감 등도 부작용으로 거론된다. 정 연구위원은 “육아휴직을 시간제로 쓴다는 게 듣기에는 좋고, 근로자들도 원할 순 있지만 현장 혼란은 다른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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