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6개 국어로 자료 내놨지만
중소업체선 교육 안 돼 ‘유명무실’
안전 ‘예방규정’ 제출 명문화에도
아리셀 등은 규모 미달 점검 제외
유족, 안전교육 미이행 처벌 촉구
경찰 ‘아리셀 교육 미비’ 진술 확보
경기 화성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의 A(31)씨는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타이어 제조공장과 화학약품 처리공장을 거쳐 석재가공 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안전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일용직 근로자나 근로계약 일주일 이하의 기간제근로자에게도 1시간 이상의 안전교육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A씨는 “아침에 출근하면 ‘안전모 잘 써라’,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라며 “위험하고 고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 참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의 근로자들이 ‘사측으로부터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산업현장의 안전교육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이번 참사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희생자가 큰 비중을 차지한 만큼, 외국인 근로자 유치에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도 보다 세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일보가 참사 이후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경기 화성과 안산 일대의 근로자들과 만나 취재한 결과 대다수의 근로자는 안전교육이 형식적이거나 부실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30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산업재해 사망자 중 외국인 근로자의 비율은 11.2%(213명 중 24명)에 달했다.
특히 한국어가 서툰 경우 현장의 경고문이나 안전교육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E-9 비자로 국내에 들어오는 16개국의 언어로 교육 자료를 배포하는데, 중소업체에선 유명무실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캄보디아 출신의 근로자 B(35)씨는 “캄보디아어로 교육받거나 동영상을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캄보디아 출신의 C씨도 “한국어를 잘 몰라서 교육이 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리셀을 비롯한 영세 세업장이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화성소방서에 따르면 아리셀은 사내 안전관리를 망라한 내용을 담아 소방당국과 지자체의 점검을 받는 ‘예방규정’ 제출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위험물 제조·취급소는 사내 안전수칙, 구역별 담당자, 점검 계획 등이 담긴 문서를 지역 소방서에 제출해야 한다. 예방규정이 적절치 않다면 당국은 이를 반려하거나 변경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990㎏·1000㎏짜리 옥내 리튬저장소 2곳을 운영한 아리셀은 ‘지정수량(리튬은 10㎏)의 150배를 저장하는 옥내저장소’에 해당하지 않아 예방규정을 제출할 의무가 없었다.
유족과 아리셀 공장 근로자들은 이날 경기 화성시청 추모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안전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아리셀 공장에서 이틀 동안 근무한 적 있다는 한 유족은 비상구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걸 아예 몰랐다. 얘기를 안 해줬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아리셀에서는 제품을 출구 쪽에 있는 팰릿에 다 올려놔 막아두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서 출구를 찾기가 더 어려운 것”이라며 “안전교육을 받은 것도 없다. 출근할 때부터 앉아서 일만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화재 사고 후 일주일째인 이날까지 20여명의 참고인을 불러 화재 당시 상황 및 평소 아리셀의 근로 체계, 안전관리 등 전반을 조사하고 있다.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도 아리셀 측의 안전교육이 미비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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