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변호인 중 홀로 남은 안동일 변호사도 출석…‘오욕의 역사’로 되짚기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국가원수 피살 사건으로 사형에 처해졌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심 여부가 이르면 다음 달 결정된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송미경 김슬기 부장판사)는 이날 김재규의 내란목적 살인 등에 대한 재심 사건 심문을 종결했다. 1979~1980년 군법회의 때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던 안동일(84) 변호사는 마지막 심문 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안 변호사는 “김재규 피고의 변론을 7명이 했다”며 “이제 저만 생존해 유일한 증인이 돼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자신은 막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당시의 군법회의는 그야말로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면서, 다른 방에 있는 판사와 검사들이 스피커로 재판 과정을 들으며 쪽지로 진행을 코치하는 등 권력이 쥐어준 시간표에 따라 재판이 진행됐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를 ‘오욕의 역사’이자 뼈아픈 경험으로 되짚은 후에는 “지성인과 지식인, 공직자가 자기 자리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면, 절차적 정의가 무너지고 신군부가 집권하는 시나리오는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통해했다.
법정에서는 1979년 12월 1심 군법회의에서의 김재규 최후 진술 녹음 일부도 재생돼 ‘유신 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종신 대통령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제’, ‘더 이상 국민들이 당하는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중략) 그 원천을 두들긴 것입니다’, ‘10월26일 혁명의 목적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이 나라가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등 생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판부는 “양측(검찰·변호인)이 추가로 낼 자료가 있다면 이달 말까지 내주기를 바란다”며 “모든 것을 종합해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지 6개월 만인 이듬해 5월 사형에 처해졌다. 40년 만인 2020년 5월 김재규의 유족은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논의의 수준이 진화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이후 4년간 개시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김재규의 유족은 지난 4월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뤄진 과정을 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재심 개시를 강력히 촉구했다. 재심이 받아들여지면 김재규에게 내란죄를 확정해 사형을 선고한 재판의 ‘전두환 신군부’ 개입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거라는 관측도 이때 일부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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