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탈원전으로 ‘신뢰’ 상실
기업, 투자해도 될지 정부 못 믿어
무너진 원전생태계 복원 10% 안돼
정책 일관성 유지해야 경쟁력↑
지원 특별법 등 국회 함께 나서야
尹대통령, 체코에 특사 파견 검토
정부, 원전 협력체계 구축에 나서
한수원, TF 발족… 협상 본격 준비
“무너진 원전 생태계 복원은 10%도 안 됐습니다. 기업들이 투자해도 될지 정부를 못 믿고 있어서죠.”
한국원자력학회장을 맡은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 원전 생태계의 현재 모습을 이렇게 냉정하게 평가했다.
한국 ‘팀코리아’는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K원전’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체코를 교두보로 폴란드, 네덜란드, 루마니아 등 유럽 원전 시장 진출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탈(脫)원전의 그늘에서 벗어나 원전 정책 지속성 확보라는 과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전문가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 정부 5년간의 탈원전 정책으로 ‘신뢰’를 잃은 점을 가장 큰 손해로 꼽았다. 윤석열정부 들어 원전 생태계 복원을 선언했지만 다시 원전 정책이 중단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하지 않고, 원자력업계 종사자들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들은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에 소극적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브리핑에서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탈원전 추진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원전 정책이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범진 교수는 “탈원전 때 공장·설비를 처분한 기업들이 지금 원전 몇 기 수출한다고 공장·설비를 다시 짓지 않는다”며 “장기적 물량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원전 생태계는 복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도 “원전 사업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사업이다. 참여하려면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데 5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산업계만 뛰어서는 못한다. 정부와 혼연일체가 돼야 하고, 국회도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권에 따라 원전 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22대 국회에서 이 법안이 논의될지 주목된다.
전 세계적으로 커지는 원전 시장을 겨냥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선 원자력 설비용량을 현재 374기가와트(GW)의 약 3배인 1160GW까지 늘려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원전 대략 1000기가 추가로 필요한 규모다.
정범진 교수는 “한두 개 짓는 시스템과 10개, 20개 짓는 시스템은 달라야 한다”며 “사업 추진 기관의 규모 확대, 정부의 수출 지원 강화 등 대규모 수출을 위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도 체코 원전 문제가 비중 있게 논의됐다. 윤 대통령은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해 “관계 부처가 원전 생태계 강화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다고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이 밝혔다. 정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체코에 원전 수출 후속 협의를 위한 특사 파견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안덕근 장관도 이날 이반 얀차렉 주한 체코대사와 면담하고 신규 원전 사업 성공을 위한 양국 간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을 약속했다. 안 장관은 “원전 건설과 인력양성, 기술개발, 제3국 공동진출 등 원전 분야뿐 아니라 첨단 산업·기술, 교통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얀차렉 대사는 “체코의 최대 투자 프로젝트인 이번 사업의 수주는 양국이 협력을 통해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화답했다. 이날 면담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도 참석해 협력 확대방안을 논의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내년 3월 최종 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협상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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