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주식 매매 앱으로 눈속임…유명 투자 전문가 사칭도
철저한 점조직 형태 운영…총책은 오리무중
지난 6월13일 오후 2시15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법 제301호 법정에 피고인 이모(27)씨가 수인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씨는 선고를 앞두고 “저로 인해 피해를 보신 분들, 여자친구와 가족에 죄송하다”고 말했다. 초조하고 긴장된 얼굴이었다. 잠깐의 정적 후 판사가 입을 열었다.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검사가 구형한 징역 3년보다 많은 형량이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 20명가량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130건. 이씨가 가담한 사건의 피해자들이 엄벌을 촉구한다며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 수다. 재판부는 이씨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작지 않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과 피해구제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점을 양형에 불리한 사유로 설명했다. 평범한 20대 남성의 모습을 한 이씨는 무슨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을까?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씨는 무직이었다. 돈벌이를 궁리하던 중 ‘고액수익 아르바이트’라는 문구의 인터넷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간단해 보이는 일이었다. 이씨 계좌로 돈을 송금받고 이를 인출한 뒤 수표 또는 상품권으로 돌려주면 됐다.
문제는 이 돈이 주식리딩사기 조직의 범죄수익금이라는 점이었다. 검찰은 이씨가 인출책이자 범죄수익 세탁책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봤다. 이 조직은 지난해 8월부터 ‘경제지표를 통해서 투자한다’ ‘고수익이 보장된다’ ‘투자기법 책을 선물해주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치밀하게 접근했다. 광고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들을 텔레그램과 네이버 밴드 단체 채팅방에 초대하고 첫 2∼3주 동안은 투자 스터디를 진행하는가 하면, 투자 전문가로 유명한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가 저술한 투자기법 관련 책을 보내주기도 했다.
◆불어나는 수익 보여줬지만…가상 주식 매매 앱으로 만든 가짜 수익
피해자들의 의심이 누그러졌을 때쯤, 이들은 외국인 투자 자금과 함께 운용되는 ‘100억 프로젝트’에 투자를 권한 것으로 조사됐다. 개인은 몇 주 배정받지 못하는 유망 공모주를 확보해 놨다며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고 현혹했다.
이어 피해자들에게 ‘MQABS’나 ‘MQAM’이라는 이름의 미리 제작한 가상의 주식 매매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게 하고, 주식을 매수·매도하며 수익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여줬다. 눈앞에서 투자 수익이 불어나는 걸 보며 피해자들은 없는 돈까지 끌어와 투자했다. 실은 그 돈은 모두 조직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이씨는 지난해 9월부터 피해자들로부터 대포통장으로 송금받은 돈을 조직원이 보내주면 이를 자기 계좌로 받아 수표로 인출하고, 서울 명동에 있는 환전소에서 상품권으로 세탁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조직원에게 전달했다. 이씨가 그해 10월까지 약 한달간 인출·세탁한 돈은 133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파악한 이 주식리딩사기 사건의 피해자는 총 86명, 피해 금액은 186억여원이다.
◆조직원 검거에도 총책은 버젓이 범행…“재판 중에도 사기 문자 받아”
이들은 같은 총책의 지시를 받으면서도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을 정도로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범죄를 저질렀다. 말단 조직원들을 잡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닌 셈이다.
‘총책’은 범행 전체를 계획하고 지시한다. 여기에 캄보디아 범죄 조직 사무실에서 조직원을 관리하고 범행을 총괄하는 ‘관리총책’, 한국에서 조직원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국내총책’도 있다. 조직은 그 밑에 실제 투자가 이뤄지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한 앱을 관리하거나 SNS를 통해 직접 피해자에게 투자를 유도하는 ‘관리책’, 관리책의 채팅을 한국어로 통역하는 ‘통역책’, 범죄에 이용할 대포통장을 마련하는 ‘대포통장 공급책’, 대포통장에 피해금이 입금되면 범죄수익금을 연계 계좌로 분산 이체해 인출하고 상품권 구매 등으로 자금 출처를 조작해 다시 조직에 전달하는 ‘인출책’, ‘자금 세탁책’ ‘전달책’으로 분업화 세분화 돼 있다.
피해자 양모(58)씨는 재판이 진행 중인 지금도 주식리딩사기 문자를 받는다고 했다. 양씨는 “나를 똑같은 수법에 두 번 속는 바보로 보는 건지 싶어 분통이 터진다”며 문자를 보여줬다. 피해자 전영복(52)씨는 “피해자 대부분 나이가 은퇴를 앞둔 50∼60대”이라며 “아직 피해복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들은 범죄수익을 숨겨두고 징역형을 살고 나와도 연봉으로 따지면 적잖은 돈이라 붙잡히는 것에 큰 걱정이 없는 것 같아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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