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사 티켓 인증 강화되자
구매자에 표 넘겨주는 ‘아옮’ 성행
아이디·비밀번호 등 모두 넘겨줘
사기범들 돈만 받고 잠적 잇따라
“예매 대행” 가짜 플랫폼 유도도
피해자만 총 5183명에 이르러
고등학생 민모(18)양은 올해 3월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티케팅에 ‘참전’했다가 실패했다. 낙심한 민양의 눈에 띈 것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콘서트 표를 원가에 양도한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이었다. 며칠 뒤 해당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은 민양은 글쓴이에게 티켓 대금과 판매처 아이디, 비밀번호,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 자신의 개인정보를 넘겼다. 그러나 티켓 가격을 입금받은 글쓴이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민양과 같은 수법으로 돈과 개인정보를 뜯긴 사람만 30여명에 달했다.
민양은 “티켓 값으로 넘긴 22만원은 저에게 정말 큰 돈”이라며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죄송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경쟁이 치열한 콘서트 티켓을 개인 간의 거래로 구하려다 티켓 값은 물론 개인정보까지 빼앗기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공연기획사들이 암표 거래와 그에 따른 사기를 막기 위해 도입한 본인인증이 암표 거래를 방지하기는커녕 개인정보를 뜯어내는 사기에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탈취한 개인정보가 2차 중고거래 사기에도 쓰이면서 전체 범죄 피해액만 3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3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암표시장에서 구매자의 계정으로 티켓을 직접 옮기는 이른바 ‘아이디 옮기기(아옮)’ 거래를 빙자한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돈을 주면 판매자가 미리 예매한 좌석을 취소시키고, 신청자의 계정으로 취소된 자리를 재빠르게 예매해주겠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는 10·20대가 이 같은 범행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대학원생 성모(26)씨는 올해 5월 아이돌 NCT 위시의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다가 15만원 사기 피해를 입었다. 성씨는 입금 후 예매대행 업자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환불을 요구했지만, 판매자는 조작된 계좌 오류 화면을 보여주면서 “환불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시간을 끌었다. 판매자에게 환불 의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자신의 중고거래 플랫폼 로그인 인증번호까지 전달한 뒤였다.
사기 거래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옮’을 위해 개인정보를 넘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성씨 역시 “아옮을 위해 어느 정도 개인정보를 넘기는 것은 흔한 일이라 처음에 의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획사들이 본인인증을 강화한다 해도 여전히 공공연하게 아옮 티켓이 팔리고 있고, 업자들은 매크로(자동화된 예매 프로그램)로 좋은 표를 싹 쓸어간다”며 “이럴 바엔 차라리 팬클럽 가입자만 티케팅을 허용하거나, 응모자에게 랜덤으로 표를 배정하는 방식이 낫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1차적인 티켓 사기와 개인정보 탈취를 당한 뒤에도 ‘티케팅에 실패했으니 환불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고거래 사이트 등의 계정을 빼앗기는 2차 피해 사례도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범들은 이렇게 훔친 피해자의 계정으로 오토바이 등 고가의 물품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뒤 거래를 진행하는 척 선금을 받고 잠적했다.
피해자들이 만든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자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1일 기준 티켓 사기와 2차 중고거래 사기로 피해를 본 사람은 5183명, 피해액은 38억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 상당수는 사기 과정에서 본 가짜 판매자의 계좌번호나 전화번호가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채팅방을 운영하는 A씨는 “한 SNS 계정이 수십 개의 명의와 계좌를 바꿔가며 쓰고 있고, 심지어 사기에 사용된 계좌들끼리 돈이 오고간 내역까지 나왔다”며 “여러 명이 개입된 사기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민양 사건은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성씨 사건은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이 외에도 관련성이 의심되는 사건들이 전남경찰청 등에서 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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