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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모노가타리』 주해 이미숙 “첫사랑을 대신할 사랑 찾아 헤매는 남자들의 이야기”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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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14 07:30:00 수정 : 2024-08-19 14: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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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임지에서 교토로 귀경한 뒤 그녀가 결혼한 남자는 아버지 나이 뻘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로,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교토 근방의 지방관이었다. 서기 998년, 이십대 후반의 그녀는 전처와의 사이에 이미 몇 명의 자식을 둔 남자와 만혼을 했다.

 

결혼 생활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았다. 결혼 이듬해에 딸을 낳았지만, 결혼 3년 만인 1001년 남편은 역병으로 저세상으로 떠났다. 남편과의 사별은 그녀의 가슴에 깊은 슬픔과 끝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의 비수를 꽂았다.

 

“나는 우울하고 혼란스러웠다. 몇 년 동안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왔다.” 당시의 심정을 그녀는 『무라사키시키부 일기』에 적었다.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는 일보다는 조금 더 무언가를 하면서⋯ 계속되는 외로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숙 역자(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시대 상황에 드러내놓고 교양과 문재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녀는 한문 서적을 편하게 읽을 정도의 교양과, 정형시 와카를 창작할 수 있는 문재가 있었다. 헤이안 시대 유력 가문인 후지와라 가문의 지손(支孫)인 후지와라 다메토키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남자 동기가 아버지로부터 한문 서적을 배울 때 옆에서 곁눈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나중에 일기에 적었다. “내 동생이 어렸을 때 한자를 배울 때면 난 항상 옆에서 듣고 있었다. 나는 걔가 이해하고 외우기 힘들어했던 구문을 해독하는데 능숙해졌다.”

 

게다가 이미 10세기에 가나가 보급됐고, 일본 최초의 여성 산문문학 『가게로 일기』를 비롯해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있었다. 과부가 된 그녀는 가나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겐지 모노가타리』 전문 연구자이자 번역가인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이미숙 박사는 스스로에게 묻듯 설명했다.

 

“상당한 수준의 교양과 정형시 와카를 능숙하게 창작할 정도로 문재가 있고, 짧은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을 잃은 여성이라면 글을 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글을 씀으로써 자기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초기 형태 또는 소설 앞부분이 귀족 사회에 퍼지고 읽히면서 큰 히트를 쳤다.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라는 필명의 작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무라사키시키부’의 ‘시키부’는 이름이 아니고 그녀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의례부인 시키부쇼를 가리키고, 보라색을 뜻하는 ‘무라사키’는 『겐지 모노가타리』의 여주인공 무라사키노우에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귀족사회에서 문재를 인정받은 그녀는 1005년경 당시 실력자 후지와라 미치나가에 초빙돼 그의 딸이자 이치조 덴노의 중궁 쇼시에게 출사했다. 그녀는 궁중 나인으로 일하면서 소설을 계속 써나갔다. 자연스럽게 궁정 이야기가 풍부하게 녹아들어가게 됐다.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는 1008년 11월 중순 필사본을 유통시키기 위해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모집하는 등 서사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기술이 『무라사키시키부 일기』에 있다. 정서 작업에 사용된 원본이 있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1008년경에 이미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인공 히카루겐지를 통해서 삶과 사랑, 권력 투쟁, 정치적 영광과 몰락, 종교에의 귀의 등 10세기 헤이안 시대 일본 귀족사회를 그린 무라사키시키부의 장편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의 정편(1~4권)이 전문 연구자 이미숙 박사에 의해 완역됐다.

 

이번 고대 가나 원문 완역은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지원사업과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2012년부터 12년간이 소요된 노고의 결과다. 심지어 1~2권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4권은 소명출판으로 각각 다른 곳에서 출간되는 난산이었다. 소명출판 측은 현대어 중역이 아니라 “저본의 원문에 입각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11세기 성립한 작품은 천년의 세월을 거치며 20세기 이후 세계 각국에 번역돼 소개된,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유분방한 연애와 성 묘사로 음란하다는 편견도 일부 있었지만, 1000년 전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들의 삶과 사랑, 고뇌에 찬 내면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작가가 우선 여성이고 많은 여성들이 등장해 당시 여성들의 삶과 고뇌를 잘 보여준 대표적인 여성문학이자, 일본과 교류하던 중국 및 발해 등 당대 문명 교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히카루겐지(光源氏)는 둘째 황자로 태어났지만 궁중 암투에 희생될 것을 우려한 아버지 기리쓰보 덴노에 의해 신하의 신분이 돼 겐지라는 성을 하사받는다. 그는 좌대신의 딸 아오이노우에와 결혼하지만, 죽은 엄마와 닮은 의붓어머니 후지쓰보 중궁에게 친밀감을 느끼다가 연모한 끝에 밀통해 아들까지 낳는다. 또 교토 북쪽의 산으로 요양을 갔다가 첫사랑 후지쓰보 중궁과 닮은 그녀의 조카 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를 데려와 양육한 뒤 결혼하는 등 여러 계층의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다.

 

여러 곳을 떠돌며 시련을 겪었던 히카루겐지는 이복형인 스자쿠가 덴노를 양위하고 친자식 레이제이가 계승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권력의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상황이 된 이복형 스자쿠의 부탁으로 스자쿠의 셋째 딸 온나산노미야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면서, 무라사키노우에는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진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라고만 생각하며 내 처지에 자부심을 지니고 무심한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싶어 그 일이 심중에서는 계속 생각나시지만, 참으로 느긋하게만 처신하고 계신다.”(4권, 50쪽)

 

무라사키노우에는 결국 슬픔과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다. 히카루겐지는 그녀가 죽자 욕망으로 가득 찼던 자신의 삶과 먼저 떠난 무라사키노우에에 대한 그리움을 곱씹으며 인생의 무상을 절감하고 출가를 준비하게 된다.

 

“⋯이 세상이 허무하고 슬프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부처 등이 마련해 두신 신세일 듯하구나. 그것을 억지로 모른 체하며 살았기에 이렇게 죽을 날이 가까운 말년의 황혼 녘에 가슴 저미는 끝을 보았으니, 내 숙명의 정도도 내 마음속 한계도 남김없이 다 보아 마음이 편안하여 이제 약간의 굴레도 남지 않았구나.”(4권, 501쪽)

 

특히 이번에 번역 출간된 3권과 4권은 히카루겐지가 귀족 사회에 복귀해 권력의 정점에 이르는 과정과, 무라사키노우에가 먼저 죽으면서 허무함을 깨닫고 종교에 귀의하려는 말년을 담고 있다.

 

무라사키시키부가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그린 천 년 전 일본인들의 삶과 사랑, 갈등과 권력투쟁, 죽음과 종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문 연구자이자 번역가 이미숙은 왜 고대 가나 원문을 바탕으로 번역해야 했을까. 앞으로 속편 5권과 6권도 완역 출간을 준비 중인 이 박사를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논문이나 책, 기사마다 무라사키시키부나 히카루겐지 등 고유명사의 띄어쓰기가 다 제각각인데.

 

“무라사키시키부의 ‘시키부’는 남성 혈족의 관직명이고, ‘무라사키’는 여자 주인공 무라사키노우에에서 따온 것으로 『겐지 모노가타리』를 지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것이다. 통칭이기 때문에 띄어 쓰면 안된다. 소설의 주인공 히카루겐지 역시 하나의 통칭이기에 붙여 써야 한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띄어쓰는 게 좋다.”

 

―무라사키시키부는 당시 궁중 나인이었는데, 어떻게 소설을 쓰는 게 가능했을까.

 

“우선 궁중 나인이라고 하면, 대장금처럼 잡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마치 살롱과 같은 덴노의 비들 처소에서 와카를 짓거나 일기나 수필, 모노가타리를 쓰는 등 문화 확산의 역할을 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오히려 나인들의 글쓰기가 장려됐다. 덴노의 각 비들은 교양 있는 나인들과 귀족들을 모아 살롱을 형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살롱에서 문재 있는 나인이 글을 쓰고 인기를 끄는 것은 해당 살롱을 빛내는 일이었다. 교양 있는 여성이 살롱 안에 있다고 하면 귀족들이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무라사키시키부의 시선이 놀랍다.

 

“신의 가호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작품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다(웃음). 헤이안 시대의 문화 풍토와, 무라사키시키부 개인의 교양, 그녀의 경험 등이 합쳐져 나온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십대 후반에 결혼해 3년 만에 남편을 사별한 뒤부터 40대 초반 작고하기 전까지 30대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 사람들은 정신 연령이 높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30대 여성 무라사키시키부의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면 굉장히 깊다. 그녀가 궁에서 일했기 때문에 궁중의 정치적인 다툼도 나오는데 관조하는 시선이 깊다.”

 

―작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10세기 일본 교토가 주요 무대이다. 견당사 파견이 폐지되고, 일본 와카와 국풍 문화가 활발했던 시기였고, 덴노와 결혼을 통해 외척이 권력을 장악했던 섭관정치의 시대였다. 법적으로 일부일처제였지만, 실질적으로 일부다처제 사회였다.(소설 무대가 되는 황실에서 여성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덴노가의 여성들은 친정 집안이나 후견인이 중요했다. 친정이나 후견인이 별 볼 일 없으면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이번에 번역한 3권과 4권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정치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은 히카루겐지가 여러 과정을 거쳐서 최고의 지위에 올라가는 과정을 주목하겠지만, 저의 경우 히카루겐지가 온나산노미아와 결혼하면서 무라사키노우에가 슬픔에 빠졌다가 죽는 것을 주목한다. 히카루겐지는 무라사키노우에의 죽음을 통해서 인생의 무상함을 절절하게 느끼고 종교적 귀의를 결심한다.”

이미숙 역자(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주인공 히카루겐지의 실제 모델이 있는지.

 

“이 사람이라고 할 만한 모델은 없다. 다만, 『후한서』의 ‘청하왕 경’의 일생과 흡사하다는 견해도 있고, 10세기에 창작된 작품 『이세 모노가타리』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아리와라 나리히라가 모델이라는 견해도 있다.(주인공 외에 인상적인 인물은) ‘낙엽(오치바)’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오치바노미야라는 여성이 인상적이었다. 온나산노미아를 연모하던 가시와기는 오치바노미야와 결혼을 했다가 ‘내가 왜 이런 낙엽을 주웠던가’ 하고 탄식한다. 가시와기는 온나산노미아와 밀통한 다음 죄책감으로 죽게 되고, 오치바노미야는 혼자가 된다. ‘낙엽’으로 존재가 규정된 여성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니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끌려 살아가게 된다. 여자라는 게 처신하기 어렵고 살기 어려웠던 시대였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문학사적 의미는.

 

“정편(1~4권)은 히카루겐지, 속편(5~6권)은 히카루겐지의 아들로 알려진 가오루가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첫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천 년 전 일본인들의 삶과 내면이 잘 그려져 있고, 동아시아 문명 교류를 볼 수 있는 문명 텍스트이기도 하다. 특히 이들 남성과 관계를 맺는 여성들의 내면이 아주 많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처음 『겐지 모노가다리』를 읽은 이후 거의 20년이 흘렀다. 독자의 성별이나 나이, 처지에 따라 작품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천 년 전 일본 여성들의 내면은 어떠했는가.

 

“소설에는 천 년 전 여성들의 내면, 심중 사유가 자세히 그려져 있어서 놀랐는데, 소설 속 여성들은 대체로 자의식이 강했다. 후견도 별 볼 일 없지만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한다. 에를 들면, 무라사키노우에는 나중에 죽을 때가 되면 사랑하는 존재로서 히카루겐지를 포용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와레모 히토모(나도 그 사람도)라는 표현은 인상적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문명 교류의 모습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문명 수용일 것이다. 우리가 흥미를 가질 만한 부문은 히카루겐지의 관상을 보는 발해 사신이다. 10세기 발해와 일본이 어떤 교류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려라는 한자를 써서 고마라고 읽는데, 한반도에 근거를 둔 나라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전에 영향을 받았던 중국이나 한반도 문화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자각이 움트는 게 보인다.”

 

―번역 주해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가.

 

“원문 문장이 너무 길고, 와카와 지문이 섞여 있어서 원문 그대로 번역할 수 없고 적절히 분절을 해야 했다. 원문 중시와 가독성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연구자가 아니라면 조금 윤색할 수도 있었겠지만, 연구자이기에 좀더 엄밀성을 유지해야 했다. 선행 와카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와카 부문도 쉽지 않았다.”

 

―앞으로 번역 출간할 속편 5, 6권은 어떤 내용인지.

 

“히카루겐지와 결혼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던 온나산노미야는 그녀를 연모하던 가시와기와 밀통해 가오루를 낳는다. 가오루는 자라면서 자신이 히카루겐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인상 무상을 느끼며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 가오루는 교토 외곽 우지에서 불도를 닦는 하치노미야를 찾았다가 그의 큰딸 오이기미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오이기미는 죽고, 가오루는 이후 오이기미의 여동생들에게 계속 집착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상!” 여름방학 직전, 지도 교수가 말했다. “일기문학을 해도 좋지만, 헤이안 시대 문학을 하려면 『겐지 모노가타리』를 해야지.” 헤이안 시대의 문학을 할 것이라면 가장 대표적인 『겐지 모노가타리』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취지였다.

 

“그러면 제가 방학 때 『겐지 모노가타리』를 통독해 보고 마음에 들면 겐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호쿠대 석사 1학년생 이미숙은 대답했다.

 

그의 삶은 겐지와는 먼 곳에 있었다. ‘이거 재밌다!’ 그는 초등학교 3, 4학년 수업시간에 시를 쓰라는 교사의 지시에 따라 시를 써보고 글쓰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그는 막연히 생각했다. 시나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국어국문학과를 가야겠다고.

 

하지만 국문학과에 진학한 뒤 그는 곧 자신의 현실을 깨달았다. 문재가 없구나, 작가가 되긴 힘들겠구나. 1990년 일본 나고야에 있는 일본어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그는, 일본어 번역을 꿈꾸며 1993년 한국외대 대학원 일본어과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일본 근현대문학을 생각했지만, 머지않아 헤이안 시대 문학으로 바꾸었다. 역사적 관계로 불편한 근현대문학과 달리, 일본 고전문학이 오히려 편했다. 특히 헤이안 시대 문학은 한반도의 문화가 높이 평가됐을 뿐만 아니라 유례없는 여성문학 전성기였다. 다만, 한국의 석사과정에서는 『겐지 모노가타리』에 영향을 준 일기문학 『가게로 일기』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였다. 

 

도호쿠대 석사 1학년생인 그는 1998년 여름방학 내내 『겐지 모노가타리』를 읽었다. 히카루겐지와 무라사키노우에 관계를 중심으로 살폈다. 그 사이 수시로 지도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예상과 달리 작품의 정서는 매우 풍부했다. 바람둥이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도교수에게 말했다. “그럼 겐지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겐지 모노가타리』 전문 연구자이자 번역가 이미숙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1964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이미숙은 일본 도호쿠대 문학연구과에서 『겐지 모노가타리』를 전공으로 차례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에서 『겐지 모노가타리』 연구서를, 한국에선 『가게로 일기』 연구서를 출간했다. 『가게로 일기』, 『겐지 모노가타리』(1~4권) 등을 번역했다. 일본 해석학회상 등을 수상했다.

 

―전문 연구자 또는 번역가로서의 비전은 어떠한가.

 

“일단은 『겐지 모노가타리』 주해의 완결이 가장 중요하다. 내년 6월 5, 6권 심사본을 한국연구재단에 내야 하고 늦어도 2027년까지는 5, 6권을 모두 출간하고 싶다. 저작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한 출판사에서 전체 개정판을 내고 싶다. 번역 기간이 길어서 통일이 안 된 표현이나 문체를 통일하고 싶다. 다음으로 『겐지 모노가타리』에 관한 단행본을 한 권 쓰고 싶다. 올해가 환갑인데, 10년 안에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번역을 하고, 오전 8시엔 어머니 집으로 가서 간병한다. 오전 11시 집으로 돌아와서 일을 한 뒤, 오후 6시부터 다시 어머니 간병을 한다. 밤 9시에 돌아와 한 시간 뒤 취침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6시간. 최근 그의 일상은 번역과 어머니 간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2021년부터 번역과 어머니 간병을 위해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직도 그만뒀다.

 

위안은 의외로 작은 데서 봉긋봉긋 피어난다. 주말에 한 번씩 아차산에 올라서 바위산과 소나무 사이를 걷다보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어떤 행복감이 차오른다. 일하다가 지겨우면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처음 1년은 힘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노고야말로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마다 져야 하는 운명 또는 우연의 십자가. 힘듦과 괴로움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힘 아닐까. 천 년 전 헤이안 시대를 헤쳐간 무라사키노우에처럼.

 

“⋯의지할 데 없는 저에게는 분에 넘친 것이라고 남들은 평가하겠지만, 마음속에 견딜 수 없는 한탄만이 떠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은 저 자신을 위한 기도였습니다.”(4권, 196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최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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