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지친 국민들에 소나기 같은 시원한 메달 소식을 전해주던 2024 파리 올림픽 열기도 잦아들었다. 저마다 기억하는 올림픽 명장면은 다를 것이다. 심장을 쫄깃하게 한 양궁 김우진 선수의 개인 결승전 슛오프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고, 믿고 보는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금메달 확정전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손흥민 선수가 왜 그렇게 자주 우는지 알겠다”며 메달을 놓친 뒤 눈물을 펑펑 쏟던 골프 김주형 선수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선수들의 빠른 몸놀림이 경이로운 탁구 경기를 즐겼다. 오롯이 혼자서 경기장의 긴장을 이겨내야하는 개인전보다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승패의 기쁨, 슬픔을 나누는 단체전이 더 짜릿했다.
파리 올림픽 기간 가장 많이 회자된 열쇳말은 ‘활·총·칼’ 이었다. 양궁과 사격, 펜싱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딴 금메달 13개 가운데 10개가 쏟아졌다. 금메달을 따낸 뒤 울분을 쏟아낸 안세영 선수 파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답게” Z세대 빛났다’(8월12일자·남정훈 기자) ‘‘성과주의·꼰대문화’고질병...과감히 메스대라’(8월13일자·장한서·정필재 기자) ‘생활체육의 힘 보여준 태극전사...“꿈나무 육성 속도내야”’(8월14일자·정필재 기자) 시리즈는 17일간 열전을 펼친 파리 올림픽이 남긴 명암을 담았다.
◆“Z세대는 달랐다”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아니다.”
우리나라 하계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 주인공은 2007년생 반효진(대구체고) 선수였다. 사격 시작한 지 3년만에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놀랍지만 앳된 얼굴로 “마라탕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킨 태권도의 박태준 선수는 결승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난 된다. 난 될 수밖에 없다”고 휴대 전화 배경화면에 적힌 글귀를 되뇌었다. 이번 금메달 13개 가운데 10개가 2000년생 Z세대가 따낸 것으로 집계된 데서 알 수 있듯 국제 무대 경험이 적은 뉴페이스들의 활약이 대한민국 올림픽 성적 순위를 끌어올렸다. 은,동메달 단체전까지 포함하면 2000년대생들이 따낸 메달은 전체의 73.3%에 달한다.
올림픽 무대 경험이 전무한데도 이런 깜짝 성과를 낸 원동력은 뭘까. 자율과 개성을 앞세워 훈련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해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한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감독이나 코치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면서 ‘맞춤형’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성 세대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안세영 파문이 남긴 숙제
금메달을 딴 뒤 “대표팀과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폭탄 발언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은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는 귀국 후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16일에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입장문을 올려 “아직 부족한 것 투성이고 모자란 것이 많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지만 나서게 됐다”며 “제가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하지만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바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동료 선수들을 헤아리지못했다’, ‘잔치상에 재뿌린 격이 됐다’ 등의 비판을 의식한 듯 안세영은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매순간 ‘아니다 ‘나쁘다’ ‘틀렸다’가 아니라 이런 부분들이 바뀌어야 다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서 “이번 일로 배드민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체부에서 안 선수 주장에 대해 실태 조사를 벌이고 체육 정책 개혁의 계기로 삼겠다고 한만큼 선수들 입장에서 부당한 관행, 규정은 어느정도 시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수는 지도자 지시에 복종해야한다’는 식의 강압적인 문화는 차제에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Z세대 선전이 보여주듯 세대교체와 함께 지나치게 경직된 체육계 문화, 획일적인 성과·보상 체계 등도 도마에 올랐다.
황정미 편집인
P.S. 파리 현지에서 취재한 남정훈 기자에 물었습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당초 전망과 달리 Z세대가 선전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메달을 딴 Z세대 선수들의 믹스트존 인터뷰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궁 여자 개인전 금메달로 올림픽 3관왕을 이룬 임시현 선수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은메달을 따고도 ‘국가와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울던 선수들을 볼 수 있었지만 Z세대 선수들은 메달이라는 결과보다 이를 따기 위한 과정을 더 중시하다 보니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자기 기량을 발휘하는 것 같다. 과거 올림픽 금메달을 전망할 때 기준으로 삼던 세계랭킹, 국제무대 성적도 Z세대에겐 통하지 않았다. 세계랭킹 24위였던 태권도 김유진이 대표적이다. 대륙 선발전을 통해 가까스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지만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한 훈련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올림픽에서 세계랭킹 5위, 4위, 1위, 2위를 차례로 잡고 금메달을 따냈다.”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폭로 이후 안 선수 주장과 대한배드민턴협회측 주장이 엇갈리면서 찬반 논란도 뜨겁다.
“파리 올림픽 D-30 미디어데이 때부터 안세영이 ‘모든 건 올림픽이 끝나고 말씀드리겠다’고 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폭로일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안세영이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의 무릎 부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서운하게 처신했고, ‘수정쌤’이라 지칭한 한수정 트레이너를 파리 올림픽에 데려오지 않은 것에 대한 인간적인 서운함이 작심 발언의 배경이 아닌가 생각됐다. 하지만 안세영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내용을 보면 결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있기 보다는 ‘안세영 전담팀’을 꾸려 자유롭게 후원받고 돈을 더 많이 벌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안세영은 ‘절대 선’, 협회는 ‘절대 악’이라는 식으로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파리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대회 막판 에펠탑 아래 특설 경기장에서 치러진 비치발리볼 결승을 직관했을 때다. 이번 올림픽 기간 유일하게 취재가 아닌 관람을 위해 찾은 경기장이었다. 조명이 켜진 에펠탑을 보면서 앵발리드나 베르사유궁, 그랑 팔레 등 파리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을 스포츠 경기장으로 재활용한 파리 올림픽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비치발리볼 결승에 오른 브라질과 캐나다 팬들이 선수들 플레이에 몰입하며 환호하는 장면들을 보니 이번 올림픽에 우리의 구기 종목이 부진했던 점이 아쉬웠다. 핸드볼만 본선에 진출했는데 대표적으로 축구 등 구기 종목이 부진하지않았다면 올림픽에 대한 국민 관심이 더 컸을 것이다.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한국도 다양한 구기 종목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답게” Z세대 빛났다… 17일 열전 파리올림픽 폐막 [파리2024]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811513466?OutUrl=naver
‘성과주의·꼰대문화’ 고질병… 과감히 메스 대라 [심층기획-돌아보는 2024 파리 올림픽]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812518296?OutUrl=naver
‘생활체육의 힘’ 보여준 태극전사… “꿈나무 육성 속도내야” [심층기획-돌아보는 2024 파리 올림픽]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813519086?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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